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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호르몬 탓이다, 아니다 내 탓이다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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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완경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 완경이 될 때쯤이면 지금 이 기분이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2022.04.01)

언스플래쉬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럴까',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고민이 시작되고, 오늘 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잠드는 밤이 되면 이제 곧 월경이 시작되겠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안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냥 알기만 한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 뒤 실제로 월경이 시작되면 내가 호르몬에 반응하는 일종의 기계 같다는 생각에 조금 더 괴롭다.

피부도 엉망이 된다. 늘 마스크를 쓰니까 세수만 간신히 한 채 돌아다니다 오랜만에 봤더니 충격이 더 컸다. 나도 모르는 사이 30년쯤 흐른 느낌이다. 뭐든 다 호르몬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데 이 정도면 호르몬 탓을 하는 내 개인적 문제가 아닐까.

사회적 문제인가 개인적 문제인가. 나는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어느 정도는 개인의 문제고 어느 정도는 사회의 문제다. 어느 정도는 몸이 아파서 그런 거고 어느 정도는 내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어느 정도 호르몬 때문이고 어느 정도는 뉴스 때문이며 반쯤은 남 탓, 나머지는 내 탓이다. 이렇게 원인을 나누어보아도 기분이 나아지진 않고 거울속 나는 못생겼다.

어떻게 흩날리는 멘탈을 잡을 것인가. 호르몬과 과로의 태풍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옆에 있는 아무나, 무엇이든 붙잡고 날아가지 않게 용을 쓰는 방법밖에 없을까. 애꿎은 쇼핑과 화풀이를 끝나고 나면 폐허뿐이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인생의 요소가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살아온 대로 살아왔다. 작은 부분은 바뀌겠지만 큰 부분은 바뀌기 힘들다. 인정하고 나니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요새는 월경 전 증상으로 그렇게 눈물이 많아졌다. 첫눈에도 울고 낙엽에도 울고 장마에도 울고 꽃망울에도 운다. 웃자고 만든 영화와 울자고 만든 드라마를 차별하지 않고 틀어놓은 채로 대성통곡을 한다. 저번 주에는 서울에 몇 안 남은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집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취객을 보고 웃었는데, 오늘 그 사람을 다시 보면 같이 부둥켜안고 울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지나보고 나서야 좀 낫다. 그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아니었잖아?  그렇게까지는....? 그리고 삼 주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글이 오히려 월경전증후군을 희화화하거나,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다분히 나만의 경험이며 모든 여성이 다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월경 전에 기뻐 날뛰는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정신과 몸은 분리되어 있고 몸의 상황과 상관없이 정신이 우선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보면 내 여성 호르몬은 나를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적이고 교화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나는 내 호르몬이고 내 뱃살이며 내 정신이다. 어떤 것도 나에게서 분리할 수 없다. 내 상황만 생각하고 남에게 패악을 부리라는 말이 아니다. 못난 부분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가 알게 되는 건,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도 여전히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여전히 그렇게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것은 남의 잘못이 아니다. 내가 화를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다. 그냥 알기만 한다.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낫잖아? 

인생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는 '왜'보다는 '어떻게'에 주로 집중해야 한다. 지금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발동한다. 달콤한 걸 먹고, 부드러운 감촉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최대한 누워 있는다. 삶이 불안하니까 피난 가는 사람처럼 내 삶을 작게 조각내서 한 조각씩 챙긴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잠이 들랑말랑 할라치면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 저 사람은 나한테 왜 저럴까,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이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완경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누군가 완경이 될 때쯤이면 지금 이 기분이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일 년이나 이 년 정도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진짜 너무하네. 

마감은 닥쳐 오고 나는 울면서 이 글을 쓴다. 다 호르몬 탓이다. 호르몬은 나다. 다 내 탓이다. 삼단 논법의 완성. 일주일 후면 나아져있겠지. 그러니까 SNS에 추가로 뭐 올릴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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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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