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비룡소 동시문학상 수상, 유희윤 시인 인터뷰
『바위 굴 속에서 쿨쿨』 유희윤 시인 인터뷰
외삼촌이 오면 어머니가 보리쌀이나 찹쌀 몇 바가지를 퍼 내리던, 명절에 장만한 과줄이나 다식을 알겨먹느라 코흘리개 동생들이 문턱 닳게 오르내리던 보물창고, 누렇게 뜬 신문지 도배가 나를 마냥 행복하게 하던 천장 낮은 그 다락방이 지금까지 시를 쓰는 힘이요, 스승이 아닐까? 자문해 봅니다. (2022.03.29)
제1회 비룡소 동시문학상 수상작 『바위 굴 속에서 쿨쿨』이 출간되었다. 총 212명의 응모작 중 치열한 논의 끝에 대상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생생한 천진성, 맛깔스러운 표현과 탄력적인 리듬으로 우리말의 맛과 재미를 한껏 끌어 올렸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잘 갈고 닦은 시어의 간결함과 유려함이 시의 여운을 더해 준다. 수상자는 유희윤 시인으로, 79세 소녀 같은 할머니 시인이다.
“손도 쭈글쭈글, 얼굴도 쭈글쭈글 할머니는 쭈글쭈글 친구야.”라는 손녀의 말에 시인은 “마음은 점점 아이가 되어 가서 아이들이랑 놀 때가 가장 즐겁다.”며 아이들에게 따뜻한 우정을 건넨다. 다람쥐네 봄, 여름은 여름답게, 가는 여름이 오는 가을이, 싸락싸락 싸락눈 총 4부로 이어지는 44편의 동시들은 사계절의 흐름을 따라가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담았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당선 시 심사위원과 편집부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2003년 60세 등단 후 79세 현재도 왕성한 시작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비법이 있을까요?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법이란 말에 뜬금없이 어린 시절 시골집 다락방이 생각납니다. 내가 다락방에 올라가 주로 한 일은 다락방을 도배한 신문 읽기였는데, 그 중에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동시가 있지요.
말 탄 양반 끄떡 서울로 가고
소 탄 양반 끄떡 들로 나가고
외삼촌이 오면 어머니가 보리쌀이나 찹쌀 몇 바가지를 퍼 내리던, 명절에 장만한 과줄이나 다식을 알겨먹느라 코흘리개 동생들이 문턱 닳게 오르내리던 보물창고, 누렇게 뜬 신문지 도배가 나를 마냥 행복하게 하던 천장 낮은 그 다락방이 지금까지 시를 쓰는 힘이요, 스승이 아닐까? 자문해 봅니다.
주로 작업을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시의 소재나 내용. 동시를 쓰면서 아이들과의 소통 등)
제 작업실은 침실이요, 책방이요, 컴퓨터방입니다. 참 고맙고 편리한 공간이지요. 시의 소재나 내용은 따로 없어요. 시가 찾아오면 자다가도 일어나 받아 적을 뿐이지요. 첫 동시집은 그랬어요. 내 어린 시절 생각에, 낙도 같은 소외지역 어린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어요. 보내기도 했고요. 지금은 책이 넘쳐나잖아요. 좀 더 맛난 시를 지어 어린이와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바위 굴 속에서 쿨쿨』은 사계절을 다 담고 있는데요. 이 시를 쓰실 때 특히 많이 신경 썼던 부분이 있으세요?
처음부터 사계절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에요. 많은 작품 중에 사계절에 어울리는 시를 골라 묶었습니다. 그중에 “돌울타리”는 작품성을 떠나서 나 개인적으로 바라보기 애잔한 작품이지요.
3년 전 봄이었어요. 산책 코스인 의릉에서 덜렁장이 윤교 할머니가 할미꽃 아기봉오리를 밟을 뻔했지요. 누가 또 밟을지도 모르겠다고, 윤교 할아버지가 크고 작은 돌을 모아 할미꽃네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고요, 그런데 몇 달 후 윤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홉 살 윤교는 우리 할머니 짝꿍 없어져서 어떡하느냐고 닭의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요.
『바위 굴 속에서 쿨쿨』을 통해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지요?
나는 우리 손자손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공부는 잘하면 좋지만 못해도 괜찮아. 무엇보다 네가 좋아하는 일 하나만 잘하면 돼. 그렇습니다. 이 학원 저 학원 돌아치는 어린이들이 안쓰러워하는 말이지요. 『바위 굴 속에서 쿨쿨』이 동시집이 어린이들을 자연 속으로 인도하면 좋겠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자연 속 친구들과 즐겁게 놀면 좋겠다. 하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선생님께 동시란 어떤 의미일까요?
동시는 내 친구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이와 함께 어울려 놀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는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시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동시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글쎄요, 어린이들이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시가 어려운 탓 아닐까요? 쉽고 재미난 시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쓰시고자 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어떤 작품들을 준비 중이신지 궁금합니다.
특별히 계획하고 쓰는 작품은 없습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시를 받아쓰고 다듬을 뿐이지요. 그러다 보면 결이 같은 작품이 생기고 책으로 묶고 싶지요. 지금도 두어 권 준비 된듯하지만 선뜻 묶어낼 자신은 없습니다. 시가 수학처럼 공식이 있고 정담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 재미난 시네! 혹은 이건 아니지! 누가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어요. 그만큼 자신이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이 나이에도 응모나 투고하기를 좋아합니다. 결과도 그래요. 물론 뽑히면 좋지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셈이니까요. 하지만 안 뽑히는 게 더 좋은 일이지요. 못난 내 작품을 예리하게 볼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생기거든요.
*유희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사다리가 당선되었다. 제28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으며, 대산창작지원금, 한국문화예술진흥원창작지원금, 서울문화재단창작지원금,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내가 먼저 웃을게』 『하늘 그리기』 『참, 엄마도 참』 『맛있는 말』 『난 방귀벌레, 난 좀벌레』 『잎이 하나 더 있는 아이』 등이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눈 온 아침」 「봄눈」 「비 오는 날」 「개미」 「고양이 발자국」 「거미의 장난」이 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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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윤> 글/<문명예> 그림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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