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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고양이들의 천국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 - <고양이들의 아파트>

정재은의 <고양이들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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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카이빙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도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놀라운 기록이다. (2022.03.17)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대단지 아파트 앞 상가. 나이가 지긋한 약사가 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약사는 가게 앞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삼색 고양이가 참 귀여웠다. 저들끼리의 영역 싸움 때문인지 크게 다쳤을 때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더 정이 들었다. 삼색 고양이는 어딘가 공자처럼 점잖고 부처처럼 공손했다. 그는 고양이에게 ‘공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약사는 고양이를 두고 영영 떠났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헐리게 되면서 약국도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약국 문은 단단히 닫혔고 약사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공순이는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약사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 인간은 언제나 고양이에게 인간의 마음을 대입시키고 마는 존재라, 어쩔 수 없이 공순이의 눈에서 쓸쓸함을 읽게 된다.

한때는 함께였으니 지금은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관객을 ‘이상한 나라’로 초대한다. 길고양이들마다 공순이, 깜이, 뚱이, 반달이 등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 있는 곳, 길고양이가 이상하리만치 인간을 친근하게 여기는 곳, 먹을 것이 풍부해 고양이들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곳, 고양이들의 천국. 그곳이 바로 ‘고양이들의 아파트’, 이제는 사라진 서울 강동구의 둔촌주공아파트 단지다.


인간들의 엑소더스 후, 여전히 그곳엔 생명이 살고 있었다

다큐가 시작되면 단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엑소더스가 한참 진행 중이다. 1980년대 건축된 이곳은 한때 6천 세대에 달했고, 거주하는 인구만 2만 명이 넘는 곳이었다.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아시아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곳에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만이 뽐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푸르른 나무가 단지를 채우고 있고,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리고 수백 마리의 고양이들이 언제부턴가 인간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아파트는 헐렸다. 재건축을 위해서였다.

2017년 중반, 열일곱 가구만 남겨놓고 대부분의 인간들이 빠져나간 후에도 250여 마리의 고양이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인간의 눈에 거대 아파트 단지는 점점 폐허가 되어갔지만, 인간사 따위에는 무심한 듯 여전히 풀은 자라고, 나무는 숨 쉬고, 새는 모이를 쪼고 고양이는 새를 쫓았다. 그래도 인간이 초래한 재난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 고양이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을 피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곧 이곳에 남아 있는 고양이들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진다. ‘둔촌주공아파트 동네 고양이의 행복한 이주를 준비하는 모임’, 줄여서 ‘둔촌 냥이’였다. 일러스트레이터 김포도, 둔촌주공의 오랜 거주자로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시리즈를 출간했던 작가 이인규, ‘동물권행동 카라’의 대표이자 캣맘으로 활동해온 길고양이 전문가 전진경이 모임의 주축이 되었다. 다큐는 ‘둔촌 냥이’가 모임을 준비하던 2017년 5월부터 아파트 부지가 모두 헐린 2019년 11월까지, 2년 반의 시간을 성실하게 따라간다.

처음 ‘둔촌 냥이’가 모였을 때 이들이 원했던 건 단 한 가지였다. 고양이가 안전한 곳에서 편안하게 삶을 이어가는 것. 각기 뚜렷한 개성을 가진 250여 마리의 영역 동물들을 모두 신속하게 이주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였지만, ‘둔촌 냥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반드시 “고양이를 위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들은 일단 고양이 개체수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고양이들을 단지 옆 야산이나 둔촌 늪지로 이주시킬 방법을 고심했고, 그 중에서 사람 손을 타는 고양이들은 입양을 보냈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시도했다. 그러나 어떤 고양이들은 자꾸만 자꾸만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고양이는 이주의 동물이 아니라 정주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도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고양이

‘도시 아카이빙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도시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놀라운 기록이다. 

1980년대 이후 아파트는 줄곧 투자의 대상이자 자산 증식의 수단이었고, 한국인의 욕망을 배태하고 증폭시키는 투명한 인큐베이터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큐에는 동네를 떠나는 것이 사뭇 아쉬워서 눈물을 보이는 한 주민이 등장한다. 그는 “재개발을 기대하고 이사를 들어왔지만, 이곳에 와서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인간-아파트-단지 생태계-고양이와 다른 생명들’이 함께 만드는 공동체 속에서 투자의 대상이었던 콘크리트 덩어리는 ‘우리들의 집’이 되고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소가 되어 간다. 

다큐의 끝, 카메라는 생명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은 거대하고 삭막한 아파트의 무덤을 비춘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공동체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라져버린 장면을 서늘하게 포착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큐는 질문을 던진다. 선한 개인의 마음만으로는 공동체를 지킬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도시 공동체에 대한 일종의 아포리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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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저자)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미디어 연구X영상문화기획 단체 프로젝트38 멤버.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 이론을 전공했다. 『손상된 행성에서 더 나은 파국을 상상하기』, 『페미니즘 리부트』 『성평등』 『다시, 쓰는, 세계』,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등을 썼고, 공저에 『21세기 한국영화』 『대한민국 넷페미사史』 『을들의 당나귀 귀』 『원본 없는 판타지』 등, 역서에 『여성 괴물, 억압과 위반 사이』 『다크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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