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임진모 “시대를 보여주는 유행가를 뽑았다”
이즘 특집
라디오 프로그램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는 대중들이 오랫동안 흥얼거리고 사랑을 보낸 곡, 바로 '리얼' 유행가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술성보다는 프로그램 타이틀인 '시대'성에 기준을 둔 셈이죠. (2022.01.21)
MBC 창사 60주년 특별 기획 라디오 프로그램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는 임진모 진행으로2021년 1월 1일부터 12월31일까지 매일 한 곡씩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유행가를 소개했다. 총 365곡이다.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유행가 하나를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짚는 의의를 넘어 시대와 세대의 벽을 허물고 원활한 교류를 자아내는 순환의 장 역할을 수행했다.
그와 동행한 많은 청취자들이 감사와 공감을 보냈다. 한국방송협회 주관 '작품상'과 '이달의 PD 상' 부문에서의 수상 소식 역시 임진모만의 다채로운 시각과 해석으로 세대 간 접점을 형성한 결과일 것이다. 어느 쌀쌀한 2022년의 초입,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하게 발자국을 남긴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에 대한 감회를 나눴다.
지난 12월 31일,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가 365회의 대장정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본인이 주체적으로 진행하신 프로그램인 만큼 소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사실 1년 내내 하루에 한 곡씩 한다는 게 재밌겠다 싶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더군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금은 후련한 느낌도 들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뭐랄까, 시원섭섭하다고 할까요.
방송국 측에서 선생님을 진행자로 모신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더 매력적인 인물도 많겠지만, 아무래도 365곡이라는 범위가 굉장히 넓을 뿐더러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노래라는 상당히 광범위한 범주이기 때문에 제가 그나마 적합하겠다고 판단한 것 아닐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일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일까요?
평론가라는 타이틀이 주어진 저에게는 국내 음악사를 한번 정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정리와 관련한 제 롤 모델이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쓴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인데요, 어디를 가도 얘기하지만 대중음악의 덩치를 크게 통사, 작품(싱글과 앨범), 인물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를 통해 그 중 하나인 노래 즉 '작품'이 해결된 거죠. 이렇게 끝맺음하고 나니 부분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뿌듯함이 있습니다.
365곡의 선정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선정위원회를 만들어 볼까도 고려했어요. 하지만 담당자인 MBC라디오 하정민 PD는 진행자인 제 판단에 의한 선곡이 프로그램 제작에 가장 합리적일 거라는 의견을 표했습니다. 5분가량의 짧은 시간이니 부담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어찌 보면 저의 시각과 해석을 존중해 준 셈입니다. 이 대목에서 하PD께 감사드리고 싶은데요. 평면적인 원고를 입체적 라디오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자료를 다 찾아 곡 해설에 다큐적 역사성을 부여해줬습니다.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와 먼저 방향과 관련해 큰 틀을 잡았습니다. 우선 '유행가'라는 프로그램의 타이틀에 집중했어요. 한때 유행가라는 개념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흔히 대중음악과 유사어로 사용되지만 명곡을 포함하는 대중음악이란 용어와 달리 유행가에는 예술적 완성도가 높은 노래가 꼭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예술적으로 미흡하더라도 특정한 시대 속에서 집단이나 대중과의 접점이 이뤄졌다면 유행가 아닐까요.
또 하나 롤링스톤, 빌보드와 같은 음악매체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중음악과 관련된 리스트나 앙케트는 흔히 '100곡'틀에 갇히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365곡은 수적으로도 많지만 오랜, 고정된 틀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보통 어떤 조사이든 간에 평론가와 음악관계자가 주도하거나 참여하게 되면 대부분 예술적으로 뛰어난 명곡과 수작들이 뽑히곤 합니다. 이러한 명곡들 사이에는 '저주받은 걸작'이란 수식이 웅변하듯 대중의 호감을 창출하지 못한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는 가능한 한 그런 명곡보다도 대중들이 오랫동안 흥얼거리고 사랑을 보낸 곡, 바로 '리얼' 유행가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술성보다는 프로그램 타이틀인 '시대'성에 기준을 둔 셈이죠.
그럼에도 365곡은 양이 방대합니다.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전권을 가진 입장에서 부담이 없지는 않았죠. 그럼에도 모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건방졌나요. (웃음) 365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인 만큼 한 해를 기준으로 잡고 방영 날짜와 시점에 부합한 곡을 하나씩 찾아 나갔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고 각각 철에 맞는 노래가 있죠. 여름 시즌 환영 받는 쿨의 '해변의 여인'이나 걸그룹 f(x)의 'Hot summer' 그리고 가을철 하면 떠오르는 김상희의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과 패티김의 '가을을 남기곤 간 사람'이 그렇습니다. 4.19 혁명, 두차례의 오일쇼크, 5.18 광주항쟁, IMF 같은 역사적 사건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겠죠.
아쉽게 빠진 곡이나 사정상 실리지 못한 곡도 많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모든 곡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방송국 관련 문제로 등장하지 못한 아티스트도 있고, 친일전력이 있는 음악가의 곡도 대부분 제외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1960년대까지 맹활약한 작사가 반야월과 톱 가수 남인수는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지만 그들 작품이라고 다 빼면 시대적 유행가를 고르기가 정말 힘들지요.
그러니까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지닌 곡들은 예외로 한 거죠. 그래서 종전 후 부산에서 서울로의 환도라는 시대적 배경을 담은 남인수의 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리스트에 들어갔죠. 방송사에서 금지했거나 사실상 방송을 제한한 빅뱅('거짓말'), 룰라('날개 잃은 천사'), 김건모('핑계', '잘못된 만남'), 휘성('안되나요')의 노래들은 유행가에서 빠졌습니다. 하지만 출판계약이 이뤄진 상태에서 책으로 풀어낼 때는 이들 노래를 살려내려고 합니다.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존재들이니까요.
자료 조사에 있어 힘드신 부분은 없었나요?
물론 지금 정보도 잘만 조합하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테지만, 해외에 비하면 많은 자료들이 유실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전설적인 옛날 뮤지션들이 상당수 돌아가셨어요. 따라서 지금은 기존 남아있던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워낙 부족한 탓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음반에 제작 발표 연도만 표시가 되어있어도 어느 정도 시점이 정리가 되는데 그게 없거든요. 이전과 이후 자료나 가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기억를 조합해 추정해야만 한다는 거죠.
여러 시간대를 번갈아 여행하다가도, 가끔은 옛 음악만 나오는 주간이 있었습니다. 방영 순서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 순서는 다양하게 하려 했지만, 일부러 비슷한 연대의 노래를 겹치게 배치한 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농 시대를 이야기할 때라던가, '전선야곡'과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같은 6.25 전쟁 관련 노래를 다룰 때가 그랬죠. 젊은 친구들에게 재미가 반감될지라도, 창사 특집이라는 명목 상 역사적인 측면도 강조했어요.
짧은 러닝타임이 지닌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의 5분은 생각보다 깁니다. 다만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의 경우, 곡에 대한 설명과 역사적 사료를 포함해 약간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노래가 나갈 시간이 적습니다. 대개 곡의 2절이 시작할 즈음 방송이 끝나곤 하죠. 예를 들어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처럼 90년대 이후 발라드들은 기본적으로 5분이 넘습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청취자들 누구나 완곡을 듣고 싶어 하기에 지적을 많이 받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은 저를 보더니 대뜸 “음악에 관계하시는 분이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잘라요?”라며 호통을 치더군요.
종합적인 수치와 밸런스를 통해 산출된 이 지표에서 우리는 단순한 개별 곡의 나열이 아닌 대중음악사에서의 중요도와 영향력을 일견 엿볼 수 있다. 조사 결과 365개의 곡 가운데 최다 선정된 가수는 조용필('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친구여', '여행을 떠나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Bounce')로 총 6곡이 선정되었다. 다음으로는 서태지와 아이들('Come back home', '하여가', '난 알아요')와 BTS('피땀눈물', '봄날', 'Dynamite'), 현인('신라의 달밤', '럭키 서울', '굳세어라 금순아')이 3곡으로 동률을 이뤘다.
최다 선정 작곡가의 타이틀은 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많은 히트 유행가를 남긴 박춘석(11곡)이 차지했으며 그 뒤를 이은 작곡가는 40년대 후반에서 50년대 초까지 대표적 유행가를 독점적으로 써낸 박시춘이었다. 작사가의 경우 박시춘 시대부터 많은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레전드 유호(8곡)와 가사의 명인 반야월(7곡)의 이름이 차례로 등장했다. 무엇보다 아티스트, 작곡, 작사 세 가지 전 부문에 걸쳐 공히 상위권에 랭크된 인물은 한국 록의 영원한 대부 신중현이었다.
최다 선정자로 조용필이 뽑혔습니다. 조용필이라는 존재를 대중음악의 관점에서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해방 이후의 최고가수죠. 범접할 수 없는 '가왕' 타이틀답게 대중에게 사랑받은 곡이 무척 많습니다. 사실상 안정애의 '대전 블루스'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도 조용필의 지분이 큰 곡입니다. 국내 앨범 예술의 확립은 조용필의 공헌이 큽니다. 과거에는 타이틀 이외의 곡은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가 수록된 1980년 <조용필 1집>은 수록곡 전곡이 히트하면서 대중이 앨범 단위의 가치를 의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구축했습니다.
물론 조용필은 앨범뿐만이 아니라 단일 곡으로도 최강자였지요. '오빠부대'나 '가왕'이라는 수식은 이후가 아니라 그가 활동할 당시인 1980년대에 이미 완성된 단어인 거죠. 과거 <우리 대중음악의 큰 별들>에서 조용필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영구 결번 1번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솔직히 하다 보니 6곡도 부족했어요. 더 들어가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PD와 공유했으니까요.
또, 조용필 노래는 시기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던데요.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나온 1975년부터 'Bounce'가 유행한 2013년까지 간격이 무려 38년입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히트곡을 창출한 것 자체가 독보적 펀치력 아닐까 싶어요. 심지어 'Bounce'는 가벼운 일렉트로니카, 'Hello'는 힙합을 접목했습니다.
작곡가에서 박춘석과 박시춘이, 그리고 작사가 중에서는 유호와 반야월이 선두에 있습니다. 독보적인 결과만큼이나 이들의 음악이 사랑받을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해방 직후의 음악 시장은 강자가 싹쓸이하는 시대였습니다. 그야말로 빼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적 소수가 모든 작업물을 독점하던 시기였죠. 그런 의미에서 박춘석과 박시춘, 그리고 유호와 반야월을 빼고는 과거 음악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지금이랑 비교해 보면 현재는 굉장히 많은 가수가 활약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박춘석의 작법은 클래식의 영향 하에 있습니다. 그가 작곡한 박재란의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 대중의 감성을 선율로 완벽하게 표현한 작곡가죠. 박시춘은 기타리스트 출신으로 감성적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신라의 달밤', '낭랑 18세', '봄날은 간다'를 비롯해 리스트에 수록되지 않은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 유명한 곡을 많이 남겼습니다.
놀랍게도 모든 분야의 상위에 오른 음악가는 신중현입니다.
한국 록의 대부, 한국 대중음악의 진정한 시작이라는 오랜 수식이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작곡과 작사는 물론, 가수로도(에드포 때의 곡 '빗속의 여인', 신중현과 더 멘 때의 '아름다운 강산', 엽전들 때의 '미인') 상위권에 존재하니 말이죠. 어떤 면에서 보면 대중음악의 기여도가 제일 높은 음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재지요. 1970년대를 맞이해 포크 음악의 태동이 시작하면서 김민기, 이장희, 한대수와 같은 싱어송라이터가 대거 등장했는데요. 이때 전문적인 작사 작곡 집단에서 벗어나 스스로 곡을 만들어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물결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 바로 신중현입니다.
진행하면서 유독 인상 깊었던 곡이 있을까요?
녹음을 하던 도중 '아, 이게 유행가구나!'라는 깨달음을 내려준 곡이 바로 정난이의 '제7광구'입니다. 요즘 친구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과거 1973년과 1979년에 오일 쇼크가 터져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안 나오는 상황이었기에 피해가 막심했죠. 그러던 어느 날 일본과 협조를 맺고 제7광구에서 석유 시추를 하게 되면서 국가적으로 산유국이 될 수도 있다는 부푼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를 담은 노래가 바로 '제7광구'입니다. 유행가란 단순히 유명한 것을 넘어 '시대성'과 관련한다는 선정 기준을 제공해준 곡입니다.
시대성의 예시를 또 하나 들자면 코미디언 서영춘이 불러 전국적인 유행을 가져온 '서울 구경(시골영감 기차놀이)'이라는 번안곡이 있습니다. 오늘날 랩의 효시로 언급되는 곡이기도 하죠.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 / 차표파는 아가씨와 실갱이하네'라는 가사에는 해학이 담겨있지만, 한국이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생긴 충돌을 다루는 곡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새로운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된 거죠.
선정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만화 주제가가 수록되기도 했어요.
실제로 유행가에는 세대적인 차이가 존재합니다. 지코의 '아무노래'가 SNS 시대를 빛낸 빅 히트송임에도 어르신들은 잘 모르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런 경우도 유행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BS에서 방영한 <날아라 슈퍼보드>의 OST인 김수철의 '치키치키 차카차카'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노래입니다. 산울림의 '산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죠. 특히 '산 할아버지'는 가사가 정말 이쁜 곡이죠. 당시 산울림이 아이들을 위한 대중음악이 없는 게 안타까워 동요앨범을 세 장 연속으로 내는데요. 3형제 중 둘째 김창훈이 쓴 곡입니다. 최근에는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가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죠.
그런 의미에서 요즘 유행하는 곡은 세대 간의 교두보 역할보다는 오히려 분리의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음악의 주인은 'Young Generation'이지요. 1950년대의 남인수, 고복수, 황금심이 활약하던 시절 기록을 보면 수요층이 전부 20대들이었어요. 1980년대에는 조용필과 전영록 같은 가수가 틴 마켓을 만들어내고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김승진 박해성 안혜지 이지연과 같은 '틴에이저 가수 집단'이 부상하면서 10대가 위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옛날에는 20대를 중심으로 각각 나이가 많은 어른과 적은 아이로 퍼져나갔다면 지금의 유행가는 세대 간 확대로 이뤄지기는 어려운 시점입니다. 음악 자체가 확장성보다는 특정 세대나 더 정확을 기하자면 팬덤을 겨냥해 만들어지는 추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무엇보다 대중가요도 역사가 오래되면서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들을 음악이 정말 많아졌어요. 옛날에는 민요밖에 없었죠.
그러고 보니 리스트 가운데 번안곡도 굉장히 많습니다.
'산 할아버지'와 '사랑을 했다'가 어린 친구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아무래도 멜로디가 쉽고 개사에 용이하다는 점이죠. 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일명 '노가바'는 옛날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현상입니다.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팝송을 우리말로 바꿔 소화하려는 의도가 컸어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이나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 같은 곡들이 그렇습니다. 사실 365개의 곡 중 외국 원곡이 10곡이나 됩니다. 캔의 '내 생에 봄날은…'과 박효신의 '눈의 꽃'은 일본 곡이 원곡이고,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은 오리지널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입니다.
물론 번안곡과 관련해 1970년대 초반 건전가요 노래 붐을 일으킨 전석환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치 밀러(Mitch Miller)를 모델 삼아 합창의 개념을 가져와 전 국민이 다 부를 수 있는 노래로 번안해 보급하며 '싱어롱(Sing-along)' 즉 '다 함께 노래 부르기' 문화를 전파한 인물이죠. 당시 군사독재 시대에 짓눌려 있는 분위기 속 활기를 불어넣으며 포크 운동으로 연결시키는 데도 공헌하기도 했습니다. 전석환이 번안한 유명한 노래가 바로 교실에서 부른 '그리운 고향'이죠. 비치 보이스가 끄집어내 세계적으로 알린 'Sloop John B'를 번안한 곡입니다. 서수남, 하청일의 '동물농장'도 해리 벨라폰테의 'I do adore her'를 번안한 곡인데 냉정하게 비교해 보면 사실상 반은 창작곡이라 할 정도로 서수남의 아이디어가 빛나지요. 그리고 리스트에 수록되지는 않았지만 번안 곡 중 오정선의 '마음'은 참으로 창의적인데요. 한번 들어 보기를 바랍니다.
번안 곡에 대해 우호적 시선이신데요.
저는 번안 작업을 통해 현재 K팝이 세계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고 규정합니다. 약소국 시절부터 영미 팝과 이탈리아의 칸초네와 프랑스의 샹송 등, 전 세계 각국의 민요와 문화를 흡수하고 받아들인 것이 지금 글로벌 성공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시기적인 배분에 있어서도 신경을 쓰셨나요?
하정민 PD와 합의를 본 부분이 통상적인 앙케트를 보면 옛 음악에 비해 요즘 음악이 홀대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최소화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시대별 비율을 신경 써서 해방 이후 음악부터 오늘날 사랑받는 음악까지 골고루 다루고자 했죠. 40-50년대 곡이 33곡, 60년대 곡이 42곡, 70년대 60곡, 80년대 96곡, 90년대 72곡, 2000년대 43곡, 2010년대 19곡의 분포였습니다. 70년의 세월을 관통한 겁니다. 마치 한 사람의 일생과도 같은 세월 동안 우리 대중음악이 이렇게 길게 호흡해왔구나 싶습니다.
최근 음악을 다룬 이유는 세대 접점의 측면에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리스트를 보면 1980~1990년대 곡이 제일 많은데, 이는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엄청난 장르가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이 활성화되고 음악 산업의 규모가 커진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황금기인 거죠. 그때는 국민 모두가 라디오로 음악을 듣고, 레코드점으로 가서 음반을 구입하던 시기였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재 국내 대중음악에 대한 소견이 궁금합니다.
누구나 다 똑같이 얘기하겠지만 지금의 글로벌 시장에서 K팝이 날갯짓할 수 있던 것은 어떤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 8군 시절부터 등장한 모든 음악이 혼합과 겨루기를 거쳐 이어진 것이 지금의 세계적인 K팝입니다. 한국의 음악적 자산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같이 이제 아이돌만이 아닌 다른 한국적인 음악들도 소개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거죠. 또한 빛과 소금, 김현철의 음악이 시티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소환되어 젊은이들에게 낡은 음악으로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그 당시에도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던 실험의 흐름이 명백히 있었다는 증거겠죠.
흥미롭게도 첫 곡이 BTS의 'Dynamite'고, 마지막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Rollin')'이 장식했습니다. 이 두 곡을 양 끝으로 선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각각 시작과 끝의 의미를 상징합니다.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의 시작은 어느 누구보다도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BTS의 첫 빌보드 넘버원 송인 'Dynamite'를 골랐고 마지막은 역주행의 신화를 기록한 '롤린 (Rollin')'을 골라 많은 사람들이 상황이 어렵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 늘 강조하죠.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버티는 것이라고요.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이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염두에 둔 주제가 바로 세대와의 화합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현인과 박재란의 음악을 알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어른들은 요즘 애들의 음악은 어렵다고 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서로가 이런 음악이 과거에 존재했고, 지금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기뻤던 건 청취자들이 보내준 반응이었어요. 어르신들에게 '요즘 노래를 자꾸 들어보니 좋다'고, 그리고 젊은 친구들로부터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이렇게 역사가 깊은 줄 몰랐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음악은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함께 공감할 수는 있다. 결국 세대 화합의 가장 훌륭한 재료가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만약 먼 훗날 후세가 또 한 번 유행가를 선정한다면 지금의 리스트 또한 많이 달라질까요?
그럼요. 시대는 흐르면서 반드시 일을 저지릅니다. (웃음)
약 한 시간 반가량의 치열한 인터뷰 끝에도 열정적인 대답을 거듭한 임진모의 입가에서는 행복의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음악평론가의 길을 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순수한 초심을 유지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이들 역시 피곤함을 잊은 채 어느덧 그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생생한 설명을 경청하고 몰입해 있었다. 그는 마치 음악이라는 불변의 매개체를 통해 다른 세대와 온도를 공유하고, 살아 숨 쉬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감사하는 듯 보였다.
<유행가, 시대를 노래하다>로 큰 일을 끝낸 직후지만 그의 손은 좀체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본문에서도 미루어 볼 수 있듯 국내 대중음악에서 '노래'의 결을 매끄럽게 정리한 그는 '통사'와 '인물'에도 도전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어쩌면 그가 나이에 개의치 않고 음악평론가의 직함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칠 수 있던 것은 실력뿐만이 아닌 이러한 아가페적 열정에 기인하는 것 아닐까. 임진모에게 필요한 것이 음악이라 하지만, 음악 역시 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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