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리 작가 "세상과 호흡하는 것이 서툰 사람들이 있다면"
『도시 악어』 루리 저자 인터뷰
내 이야기처럼 들려서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노래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림책도 그 노래 같았으면 좋겠어요. (2022.01.18)
모든 것이 막막해 홀로 긴긴밤을 걷는 것 같은 시기에는 옆 사람의 작은 숨결이 위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비록 그것이 짧은 한숨일지라도. 함께 숨을 쉬고,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길게 펼쳐진 어둠도 금세 접힐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기기도 한다. 바삐 좇아가기보다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내고, 멀리까지는 아니어도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는 건 어쩌면, 짧고도 짧은 숨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한숨이 그리고 다른 이의 한숨이 한데 모여 오늘의 호흡을 일구고 내일을 살게 하는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각자의 걱정을, 고민을 털어내며 내쉬는 묵직한 숨 한가운데에도 기댈 수 있는 온기가 느껴지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한숨을 그려내 마음을 한층 포근하게 감싸주는 그림책이 있다. 자기 자신과 혹은 세상과 호흡하는 법이 서툴러 어색한 한숨만 내쉬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도시 악어』. 그저 알아주어서, 고치려 들지 않아 주어서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되는 이 이야기 속 악어를 그린 루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도시 악어』에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도시 악어 원고를 봤을 때 악어 캐릭터에 매료됐어요. 어린 시절,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즐겨 읽었던 『아리게의 외출』(지금은 절판되었어요)이라는 그림책이 떠올랐거든요. 제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습작 역시 악어가 주인공인 그림책이었어요. 그 후로도 악어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꼭 해 보고 싶었는데, 이번이 그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시 악어』 가운데 가장 공감이 갔던 내용이 궁금합니다.
‘내가 이곳에 어울릴까’,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일까’,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하는 보편적인 감정을 ‘도시에서 살아가는 악어’를 통해 풀어낸 점에 가장 공감이 갔고,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도시 악어』 그림 중에 가장 공들여 표현한 장면이 있다면요?
페이지로 하면 10~11쪽, '나는 토마토를 좋아해. 햇볕을 좋아하고~' 이 원고를 표현한 그림입니다. 악어는 그저 좋아하는 일을 소소하게 즐기고 있는 것뿐인데, 타인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으로 악어의 그림자가 무섭게 표현된 부분에 가장 공을 들였던 것 같아요. 클라이맥스 부분은 아니지만, 이런 오해는 너무도 쉽고 어처구니없게 일어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도시 악어’를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하나요?
‘라디오헤드’의 <Creep>에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천사 같고 특별한 너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고, 그에 반해 찌질이에다 괴짜인 나는 여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도시 악어’가 이 가사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I don't belong here’ 의 감정을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것에 특히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평소 즐겨 읽거나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이 영향받은 것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이에요. <라이온 킹>이나 <토이 스토리> 시리즈, <니모를 찾아서>, <도리를 찾아서>를 볼 때마다 나도 저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즐겨 읽는 책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고, 즐겨 보는 영화는 웨스앤더슨 감독의 <개들의 섬>인데, 두 작품은 자주 반복해서 보곤 하죠.
『도시 악어』 는 성인을 위한 그림책입니다. 어떤 점이 달랐나요?
<토이 스토리> 1편을 본 게 내가 영화 속 앤디와 비슷한 또래인 초등학생일 때였어요. 그리고 3편이 나왔을 때 전 대학생이 되어 있었고, 앤디도 대학에 가느라 장난감들과 작별인사를 하더라고요. 제 어린 시절과 작별을 하는 것만 같아서 펑펑 울었죠. 그러다 직장인이 되어서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을 때 4편이 나왔어요. 장난감들도 나름의 삶을 개척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죠. 토이 스토리는 그렇게 나랑 같이 커 준 작품이에요. 저는 그래서 이제 다 컸는데도 그림책을 보고 동화책을 읽어요. 어린이도, 어른도, 장난감도,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사는 세상 아닐까요. 『도시 악어』도 그런 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도시 악어』가 독자들에게 어떤 작품이 되길 바라나요?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려서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노래가 있는 것 같아요. 이 그림책도 그 노래 같았으면 좋겠어요. 가끔, 답 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힐 때가 있잖아요. ‘어울리지도 않는 이곳에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같은 질문. 정답을, 어울리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질문도 정답도 다 잊게 되는 순간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루리 미술 이론을 공부했다. 2020년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로 ‘제26회 황금도깨비상(그림책 부문)’을, 2020년 장편 동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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