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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특집] 기록의 힘을 알려주는 12권의 책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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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각자의 하루에 대한 최선의 기록 12권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세계의 진면목 (2022.01.13)

언스플래쉬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저 | 한겨레출판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김진영이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쓴 일기 234편을 수록했다. 임종 사흘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그는 일기를 썼다. 『아침의 피아노』는 병과 사투를 벌이는 자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삶에 이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기록이다. 이제 곧 닥칠 죽음을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단번에 들어가 오래 잠영할 수 있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암 선고 이후, 정신과 육체에 깃든 섬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자기 삶에서 이끌어낸 사유의 곡예와 학문에서 일구어낸 성취들까지 담아냈다. 아포리즘의 언어들로 아름다고 슬프게. 



『전쟁일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저 / 박술 역 | 읻다



단단하게 무장된 논리학자 비트겐슈타인 말고, 유약하고 섬세하며 의심하고 절망하는 비트겐슈타인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전함 위에 있었고, 망루에 서 있었다. 추위와 배고픔, 공습의 공포와 세상의 폐허를 살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으니까. 지적이고 논리적인 한 인간이 즉흥적이며 즉각적인 사유만을 허락받았을 때 선택한 쓰기의 방식은 바로 일기였다. 그는 모두 세 권의 일기를 남겼는데, 읻다 프로젝트 괄호시리즈 1권으로 출간된 『전쟁일기』는 케임브리지대학과 베르겐 문헌보관소의 협조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완역 합본이다.



『모스크바 일기』

발터 벤야민 저 | 김남시 역 | 도서출판 길



벤야민은 모스크바에 두 달간 머물렀고, 연인 라치스에게 숱한 편지를 썼다. 『모스크바 일기』의 대부분은 그녀와의 관계에 골몰했다. 그에게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고, 라치스에게는 베른하르트 라이히가 있었다. 그뿐인가. 둘 사이에는 계급적 차이 또한 깊었다. 라치스는 벤야민에게 마르크스적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공산당 가입을 종용했으며, 경제적 독립을 요구했다. 그러니 벤야민에게 모스크바란 복잡한 긴장감으로 잔뜩 팽창한 도시, 몹시도 중층적이고 기묘한 공기로 가득 찬 도시였다. 그러한 모스크바의 기질을 닮은 벤야민을 그의 일기에서 읽을 수 있다.



『작별 일기』

최현숙 저 | 후마니타스



최현숙은 『할배의 탄생』『할매의 탄생』의 작가다. 두 책은 노년의 풍경을 구성하는 사회적 서사와 개인적 서사를 얼마나 사려 깊게 풀어내는지 증명해 보였다. 『작별 일기』는 좀 더 내밀한 기록이다. 실버타운에 입주하게 된 부모의 곁에서 써 내려간 일기이기 때문이다. 병든 노모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으로서의 역할과 의미, 한 인간의 존엄과 의료 윤리에 대한 질문, 돌봄 노동자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바라보는 우리 시대 실버산업의 현실 등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일기라는 가장 사적인 형식을 빌려 모두에게 닥치게 될 노년의 풍경을 써냈다.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저 / 조현실 역 | 문학과지성사



경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의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세상에 내놓은 새로운 종류의 소설은 ‘일기’였다. 한 남자가 1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자기 몸에 대해 일지를 써 내려간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몸은 존재의 장치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십대 소년의 그는 몸이 겪는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존재였다. 80대 노인으로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는 이제 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몸에 대해서 여유로운 태도와 관조하는 시선을 갖게 된다. 86세의 그는 이렇게 썼다.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은 몸의 보편적인 서사로 전환된다. 



『서점 일기』

숀 비텔 저 / 김마림 역 | 여름언덕



저자는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 ‘더 북숍’의 주인이다. 제목만으로 책과 함께하는 서점 주인의 낭만적인 삶을 상상했다면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서점 주인도 당연히 매출 압박에 시달린다. 책을 사러 오는 손님들도 당연히 무례하게 군다. 서점 직원들도 엉뚱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서점 주인으로 성마르고 편협하며 비사교적인 쪽에 해당하지만 서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순하고 상냥했다고 자신을 회고한다. 그러나 그는 이 생활을 청산할 의지가 조금도 없다. 그 간극에 기꺼이 빠지는 사람들이 서점 생활의 낭만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나무들은』

최승자 저 | 난다



최승자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 1995년 출간됐다가 26년 만에 복간된 아이오와 여행 일기다. “일기라는 형식으로 쓰인 주체할 수 없이 풀어진 이 글에서 독자들은 아마도 ‘밥 먹고 잤다’밖에 발견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시인이 걱정한 대로 밥 먹고 자는 기록이다. 메이플라워 맞은편 잔디밭을 가로질러 강변으로 가는 도중 달맞이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고, 강을 떠다니는 오리를 바라보았고, 로드 매퀸의 시를 떠올렸으며, 자기의 외로움을 자각한 시인의 하루하루가 『어떤 나무들은』에 담겨 있다. 덕분에 우리는 시인의 솔직하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을 징검다리 삼아 그의 문학적 본령으로 불쑥 진입하게 된다. 일기의 힘이다. 



『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저 | 김진영 역 | 걷는나무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2년 동안 쓴 뜨거운 상실의 기록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부터 작은 쪽지에 쓰기 시작한 일기는, 롤랑 바르트가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었고, 어머니를 불러내는 방식이었으며, 최종적으로는 그녀를 완전히 떠나보내는 애도의 방식이었다. 이 쪽지들은 작은 상자에 보관되어 있었다. 출판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애도 일기』는 바르트 사후 30년이 지난 뒤에 세상에 나왔다.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데 표현할 방법도 알지 못해서 괴롭다면 『애도 일기』의 어느 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르주 베르나노스 저 / 정영란 역 | 민음사



1930년대의 프랑스는 반교권주의와 무신론으로 뒤덮였다. 신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정하기 위해서 불려 나오던 때였다. 작가 베르나노스 또한 그 시대 교회의 부패와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프랑스 작은 시골 마을에 부임한 젊은 신부를 주인공 삼아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썼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젊은 신부가 폐쇄적인 마을 사람들에게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숭고한 신앙 때문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과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핍진한 기록이었다.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문학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황현산 저 | 난다



2014년 1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이어졌던 황현산의 트위터 기록을 모은 책이다. 그때의 황현산은 매우 열정적인 트위터리안이었다. 트위터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 시대 문학의 어른인 황현산은, 평소에 즐기던 농담을, 글쓰기에 대한 사유를, 문학에 대한 사랑을, 정치·경제·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통찰을 거리낌 없이 세상과 공유했다. 반론에 열려 있었고, 오류를 수정하고 반성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모든 경우에서 황현산의 문장은 유려하게 빛났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 키우면서도, 옛날 보았던 어른들처럼 나는 우람하지도 단단하지도 못하고 늘 허약할 뿐이었다.” 

2015년 1월 29일에 그가 날린 트윗이다. 이보다 더한 인생의 일기가 있을 수 있을까. 



『울프 일기』

버지니아 울프 저 | 박희진 역 | 솔출판사



서른여섯 살인 1918년부터 1941년까지의 기록을 담은 『울프 일기』는 2019년 솔출판사의 버지니아 울프 전집 기획 29주년을 기념해 만든 특별 한정판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하기 사흘 전까지 일기를 썼고, 그 가운데 읽고 쓰는 활동에 관련된 내용이 『울프 일기』에 담겨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동사는 ‘쓰다’다. 화가 났음에도, 발작적인 자포자기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를 상황에서도, 공허한 느낌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도, 그녀는 써야 할 것들을 썼다. 그리고 시간을 아껴 매일 일기를 썼다. 20세기 가장 예민하고 섬세하며 혁명적인 여자들의 맨 앞줄에 서 있던 울프의 내밀한 표정을 확인시켜 주는 책이다.



『존 치버의 일기』

존 치버 저 | 박영원 역 | 문학동네



존 치버는 1940년대 말부터 198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일기를 썼다. 일생 동안 스물아홉 권의 일기장을 남겼다. 『존 치버의 일기』는 그가 남긴 일기의 20분의 1쯤에 해당한다. 그의 일기에는 거의 모든 생애의 풍경이 들어 있다. 동시대를 살았던 작가 존 업다이크와 헤밍웨이 등에 대해 느꼈던 미묘한 경쟁심, 지독한 알코올중독 치료를 위해 머물렀던 요양소의 시간들, 양성애자로서 느끼는 분열적 감정, 나약한 한 인간으로서 겪는 작고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고통, 그리고 문학적으로 완벽해지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까지. 우리의 일기를 쓸 수 없다면, 우선 그의 일기를 매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아침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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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저
한겨레출판
전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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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일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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