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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특집] 윤소진, 일기장은 그들 각자의 행성

<월간 채널예스> 2022년 1월호 / 팟캐스트 ‘일기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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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현정 같은 목소리로 자기가 쓴 일기를 읽고, 일기에 적힌 내용과 행간과 키워드를 건반 삼아 수다의 향연을 펼치는 팟캐스트가 있다. (2022.01.10)


지난 10월 1일 금요일 오후 2시, 팟캐스트를 통해 첫 송출한 에피소드가 있다. 이름 붙길, ‘글 쓰는 세 여자의 일상 팟캐스트 <일기떨기>. ‘일기장’이라는 오브제를 가운 데 올려놓고 일기에 적힌 각자의 일상을 채 썰어 세상이라는 양념과 버무리는 재미를 자분자분한 목소리로 실어 나른다. 보이스 컬러까지 닮아 한참을 들어야 구분이 가능한 출연자의 면면은 이렇다. ‘지독한 아이돌 덕후이자 매일 일기장의 on과 off를 쓰는 참된 일기인 혜은’, ‘인간에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과 지구에 살 수밖에 없는 소설가 선란’, ‘회사에서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짓수로 날려버리는 취미부자 편집자 소진’. 

눈 밝은 이는 눈치챘겠지만, 혜은은 『일기 쓰고 앉아 있네, 혜은』을 쓴 윤혜은 작가, 선란은 종횡무진 활약 중인 SF 소설가 천선란, 소진은 독립출판물 『아이슬란드 게임』을 쓴 편집자 윤소진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인연은 같은 대학 문예창작과 09학번, 12학번, 13학번이라는 것. 어림잡아 10년 넘게 이어온 우정과 연대가 무람없이 상대의 일기장을 열 수 있게 만든 셈이다.  



‘일기’를 팟캐스트 소재로 올린 것부터 흥미로워요.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천선란 작가가 글만 쓰다 보니 자기 정체성과 일상을 놓치는 느낌이라면서 팟캐스트를 해보면 어떨까 제안한 게 시작이었어요.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모두가 글을 쓰니 일기 얘기를 하자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의견이 모였고요. 선란과 저는 일기를 안 쓰지만, 소설이나 SNS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를 일기라는 형식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었어요.

흔히 생각하는 일기는 ‘자기만 보는 기록’이잖아요. 팟캐스트로 공개한다는 부담이 없진 않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 본다는 전제라서 100% 순수한 일기는 아닌 셈이에요. 브런치에 업로드 중이기도 해서 첨삭도 하고, 비문도 잡고, 기본적인 맞춤법도 신경 쓰죠. 용기를 내자 싶었던 건 버지니아 울프나 카프카의 일기는 내용에서 시차가 발생하는데, 우리 일기는 현재의 사람들과 현재의 고민을 나누는 거라 외롭지 않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어요. 혼자 하는 고민은 사안에 함몰되기 쉬운데,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가벼워지는 측면도 있고요. 고민의 총량을 나눈다고 할까요.

에피소드로 올리기까지의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우선 일기 쓰기에 대한 경험치를 기준으로 혜은, 선란, 소진 순으로 일기를 쓰고 있어요. 방송 구성은 1부 밀린 일기장, 2부 훔친 일기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녹음은 격주에 한 번 금·토요일에 하고요. 훔친 일기장은 각자 주변 인물 중에서 섭외해 일기를 받는데, 대부분 글 쓰는 작가들이 대상이에요. 훔침 당하는 작가들의 반응도 꽤 좋아요. A4 반 페이지 정도를 부탁하는데, 원고료도 지급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섭외 범위를 좀더 확장해 다양한 분들의 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팟캐스트를 듣는 분이 점점 늘어서 청취자들이 자발적으로 보내는 일기로 방송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훔친 일기’의 주인공으로 꼭 한 번 섭외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 

김연수 작가님! 얼마 전 『시절일기』를 다시 읽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흔히 소설가의 팬이 소설 아닌 에세이를 읽을 경우 작가를 너무 많이 알게 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데, 김연수 작가님은 에세이를 읽고 더 좋아하게 됐어요. 혹시 이 인터뷰를 보실지 모르니까 한 말씀 드리면, “김연수 작가님, 부디 저희 섭외에 꼭 응해주세요!” 

상대의 일기를 눈앞에서 듣고 얘기를 나누는 ‘듣는 일기’의 재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자기가 쓴 일기는 자기가, 훔쳐온 일기도 훔친 사람이 읽어요. 한 주씩 번갈아가며 호스트를 맡고요. 일기 내용을 놓고 질문지를 작성해 녹음 전에 공유하는데, 일기의 소재를 중심으로 각자 대화할 소스를 준비하기 위해서예요.

그런 준비 과정 덕분인지, 밀린 일기와 훔친 일기의 행간과 스토리를 따라 각자의 이야기가 방사형으로 번져가는 ‘일기떨기’의 향연이 펼쳐질 때가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올린 에피소드 중에서 이런 기획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면요? 

제가 쓴 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여섯 번째 에피소드 ‘술꾼결혼식여자들’인데, 결혼식장에 다녀온 뒷얘기를 적은 내용이었어요. 말 그대로 언니들과 펑펑 수다가 터졌어요. 우리 셋 다 결혼에 는 관심이 없는데, 2030 청취자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 각자 꿈꾸는 결혼식이 궁금했어요. 저는 결혼식도 거추장스럽고 싫다는 입장인데, 선란은 초록 원피스를 입고 숲에서, 혜은은 드레스를 세 번 갈아입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이 언니들, 나하고 너무 다른데?’ 싶다가도 각자 결혼을 꿈꾼 시간이 있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제목에 적었듯, 결혼 얘기보다 술 얘기가 더 많이 등장하는데, 이 에피소드를 녹음한 뒤로 좀 더 솔직하게 써보자 하는 용기가 생겼어요. 다른 언니들처럼 작가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은데 ‘내 얘기를 누가 궁금해할까’, ‘팟캐스트를 같이하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술창과’라고 불리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서 음주 방송을 해볼까 생각 중이기도 하고 요.(웃음)

팟캐스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아쉬운 점 하나를 꼽는다면요? 

우리끼리 하는 얘긴데, 선란에게 부캐가 아닌 본캐의 일기를 가져오라고 할 때가 있어요. 선란은 너무 작품 생각만 해요. 그가 얼마나 힘들게 작품을 쓰는지 잘 알아요. 작품을 쓸 기회와 공간이 생긴 게 좋아서 그러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일기떨기’에서만큼은 작가 천선란이 아닌 본캐의 일기를 쓰고 나누는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인터뷰하는 오늘이 열한 번째 에피소드를 녹음하는 날이에요. 누구의 일기를 나눌 예정인가요? 

혜은의 일기 차례예요. 내용은 황정은 작가님의 『일기』 북콘서트에 다녀온 후일담인데, 북콘서트에서 작가님이 언급한 얘기, 각자 덕질하는 얘기, 온라인 서점에서 어떤 기준으로 책을 구매하는지 등등으로 수다가 번져나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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