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올 연말에 가장 나누고 싶은 책 BEST 3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19회) 『탱자』,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2021.12.23)
불현듯(오은) : 크리스마스 이브예요! 저는 어렸을 때 양말을 걸어 놓고 잔 적이 있어요. 다음 날 확인해보니 양말이 그대로 있더라고요.(웃음)
프랑소와 엄 : 저희 아이가 어려서 크리스마스를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발 오랫동안 산타의 존재를 믿길 바라고 있어요.
불현듯(오은) : 크리스마스 때는 독서 좀 안 해도 되죠.(웃음) 그래서 이번 방송 주제는 ‘내 마음대로 가져온 책’입니다.
박미경 편 | 봄날의책
강운구, 권정생, 김서령, 김영태, 김용준, 김지연, 김화영, 박완서, 백석, 법정, 신영복, 안규철, 오규원, 오정희, 유소림, 윤택수, 윤후명, 이상, 이태준, 장석남, 정현종, 함민복, 황병기 등 근현대 산문 대가들의 깊고 깊은 산문을 모은 책이에요. 과거에 비해 요즘은 이런 수필 모음집이 잘 안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러다 『탱자』를 보니까 새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책장을 딱 열자마자 진짜 깨끗하고 깊은 맛을 내는 한식집에 온 느낌이 들었고요. 요즘에 정확하고 현실적인, 팩트만 얘기하는 에세이들이 많았다면 예전에는 정말 작은 소재로 풍부한 문장을 쓰는 글들이 많았던 것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이렇게 약간은 옛날 느낌이 나는 산문을 보는 게 은근한 맛이 있었어요. 책을 엮은 박미경 작가님이 쓰신 ‘엮은이의 말’이 책 뒷장에 나와 있는데요. 이 글도 정말 좋습니다.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 소설가,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산문이 맨 앞을 수식하지 않습니다. 화가, 사진가 등 다른 예술 분야의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산문들은 그들이 일로서 애써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내뱉어진 날숨과 같습니다.(중략) 오직 탱자만이 낼 수 있는 향기와 진초록가시울 안에 매달린 샛노란 열매의 뚜렷한 보색, 다슬기의 꼬리 끝까지 딸려 나오게 하는 예각으로 세상의 현상과 사물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맞고 느끼는 우리 내부의 돌기들을 부르르 일어서게 합니다. 읽기 전에 나와 읽은 후에 내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향과 색과 촉을 지닌 글들을 차마 혼자 알기 아까운 글들을 오래 고르고 골랐습니다."
시인 분들이 쓰신 산문이 시집보다 더 잘 팔리잖아요. 그럴 때 막상 시인 분들이 좀 서운하시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하고, 부담이 있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평소에 했었거든요. 그런데요. 아무튼 이 글을 읽는데 작가 분들이 좋은 산문 많이 써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정수 같은 글을 보는 느낌이라 정말 좋았습니다. 보시면 책 가격이 굉장히 저렴해요. 출판사에서 독자들을 배려하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거든요. 이 책이 조금 더 대중적으로 손쉽게 가 닿을 수 있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가격을 저렴하게 결정하신 게 아닐까 싶고요. 책은 역시 이렇게 정석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저 | 후마니타스
서울역과 남대문 근처에 있는 힐튼 호텔, 아마 아실 거예요. 그 인근을 예전에는 빛이 잘 드는 곳이라고 해서 ‘양동’이라고 불렀대요. 한편 빛 잘 들던 양동은 지금 힐튼 호텔을 비롯해 엄청나게 큰 빌딩들이 들어서서 거의 찰나의 빛만이 잠깐 지나가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하고요. 그늘 아래에는 쪽방촌이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곳을 재개발한다는 계획이 확정되면서 현재는 쪽방촌 거주민들이 쫓겨날 위험에 처해 있는 겁니다. 이 책은 양동 쪽방촌 거주민 여덟 명과 그곳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두 명의 구술사를 기록한 책이에요. 2020년 10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인터뷰를 했어요.
‘서울 중심에 사는 거 누구나 좋지’ 하고 생각하는 분들 혹시 있을까요. 양동이 속해 있는 중구청에서는 65세 이상에게 ‘어르신 수당’이라고 해서 10만 원을 더 드린대요. 다른 지자체에는 없는 수당인 건데,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인 이곳 거주민 분들한테는 이게 크죠. 기초생활수급비로 한 달에 70만원 정도를 받는데요. 쪽방촌 월세가 얼마인지 아세요? 25만 원이에요. 월세 내고 남은 돈으로 겨우 한 달을 버티는 건데 여기에 10만 원 더 나오는 게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나마 양동 쪽방촌이 좀 알려져서 여기에는 급식소라든지 도시락 배달 같은 복지 서비스가 좀 있는 편이라 식비는 아낄 수 있죠. 만약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면 그게 다 부담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분들은 여기에서 최대한 있는 게 제일 좋다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이것은 서울 중심에서 살고 싶다, 서울의 인프라를 누리겠다,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예요.
갑자기 사회 안정망 바깥으로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죠. 하지만 그 상황에서 다시 안정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이 없다는 것, 심지어 2021년 현재에도 그런 삶들이 진행 중이라는 게 너무너무 비극적이고요. 그 화려한 서울역의 한복판에 지금 그런 분들이 그나마도 내 집이라고 몸 붙이고 있는 공간이 재개발로 없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게, 더구나 그 재개발이 이분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는 게 너무 끔찍한 일이에요. 앞으로도 우리가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면에서 어떤 의무감 같은 것도 생겼어요.
최승자 저 | 난다
최승자 시인의 존재는 시인의 시집을 안 읽어보셨더라도 다들 아실 거예요. 한국 현대 시인 사에서 아주 중요한 시인이고요. 10년-20년 전 데뷔했던 시인들이 다 영향 받은 시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 책에는 최승자 시인의 산문들이 연도별로 수록되어 있는데요. 복간된 책으로, 처음 출간된 것은 1989년이에요. 32년 만에 다시 나온 거죠. 그때는 3부, 25편의 산문이 실려 있었다면 이번에는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쓰인 산문을 추가해 4부로 만들었습니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최승자의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책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여기에는 최승자 시인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시절의 이야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이야기와 처음 글을 쓰게 된 이야기, 어떻게 시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고요.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일기 같았다가 어떤 순간에는 이 시대를 꿰뚫는 칼럼처럼 느끼기도 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에는 최승자의 글은 다 시론이다, 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자기의 어떤 입장을 밝히면서 자기 자신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이야기들을 이 글들을 통해 하고 있었구나, 최승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하고요.
편집자의 요청은 ‘1980년대가 당신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구체화시켰는가’에 대해 답해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러한 질문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거기에 답할 만한 능력이 있는 시인인가 하는 점에는 의심이 간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시 혹은 시작에 관하여 깊은 생각과 의식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나의 시들이 단순 반응적이며 자연 발생적인 경우가 많다고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머리 나쁜 시인 혹은 공부 안 하는 시인이라는 고백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이성보다는 감성에 알게 모르게 더 많이 기대해 왔다는 고백일 수도 있다.
늘 최승자 시인의 산문이 좋다는 얘기만 듣고 한 번도 읽지 못했다가 이번 기회에 읽었는데요. 어마어마합니다. 올해 연말에 가장 많이 나눌 책 중에 한 권이 바로 이 책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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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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