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그곳에는 ‘왜’를 고민하는 주체가 없었다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16회) 『별들이 흩어질 때』, 『1★9★3★7 이쿠미나』, 『대치동』
전쟁 중에 일본의 황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헨미 요는 세 글자로 간추리는데요. ‘살·략·간’ 살인, 약탈, 강간입니다. 이 중에 특히 살인과 강간에 집중을 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심각한 참극으로 치달리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이 책에서 거듭 하는 거죠. (2021.12.02)
빅토리아 제이미슨, 오마르 모하메드 글 / 전하림 역 | 보물창고
오마르 모하메드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빅토리아 제이미슨이 그린 책이에요. ‘오마르’는 소말리아 출신인데 내전으로 인해서 네 살 때부터 남동생과 함께 케냐에 있는 난민촌에서 15년 동안 지냈습니다. 이후에 UN에 의해 재정착민으로 선정돼서 미국에 정착을 했어요. 자신이 난민촌에서 겪은 일들을 알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고 그 중에 한 방법으로 책을 쓰려고 했었는데요. 그때 빅토리아 제이미슨과 만나서 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오마르의 아버지는 소말리아 내전으로 목숨을 잃었고요. 형제는 소말리아를 떠나오는 과정에서 어머니랑 헤어지게 됩니다. 오마르와 남동생 ‘하산’은 걷고 또 걸어서 난민촌에 도착하게 되는데요. 하산이 가끔 경련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런데 난민촌에서는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약도 구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오마르는 ‘내가 항상 하산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형제가 난민촌에 온 지 7년째 됐을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이 난민촌이 생각보다 엄청 크다고 해요. 케냐에 있는 ‘다답’이라는 난민촌인데 3개의 캠프로 나뉘어 있고요. 그 중에서 ‘이포’라는 이름의 캠프에서 오마르 형제가 지내는데, 이 하나의 캠프 안에도 학교와 시장이 있을 만큼 큰 규모예요. 이 캠프에 새로운 관리자가 오면서 오마르에게 학교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권합니다. 오마르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학교에 가게 되고, 친구들을 만나고 배움을 시작하고 꿈이라는 걸 갖기 시작해요. 그리고 재정착민으로 선발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옵니다.
사실 결말이 궁금해서 읽는 작품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오마르라는 사람이 미국에 정착했고 그 이야기를 이 책으로 썼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 책은 그 과정을 정말 세밀하게 그려냈고, 그 점에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우리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두루뭉술한 이미지로만 머리에 떠오르는 난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서로 애정도 나누고 시기질투도 하고 원망도 하고 희망을 품었다가 절망하기도 하고 또 다시 희망을 품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걸 보는 것이 이 작품을 보는 이유이고,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헨미 요 저 / 한승동 역 | 서커스출판상회
작가 헨미 요에 대한 소개는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을 조금 발췌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소설가. 시인. (중략) 최근에는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저항을 테마로 평론 논픽션 소설 시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논진을 펼치고 있다, 라고 소개가 되고 있고요. 귀에 거슬리지 않는 말들만 넘치는 일본 미디어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며 자신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정리했다고 해요. “비극으로부터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겉발림으로 하는 다정한 말이 아니다. 비극의 본질에 상응하는 깊이를 지닌 언어뿐이다. 그것을 나는 지금도 찾고 있다.” 마지막의 문장은 이 책의 뒤표지에도 수록이 되어 있는데요. 저는 이 문장들 때문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제목이 ‘이쿠미나’인데, 한국의 독자들은 (표지에서) ‘이쿠미나’라는 글자보다 ‘1★9★3★7’이라는 숫자들을 먼저 읽겠죠. 이 숫자들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일단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난징에서 대학살을 벌인 1937년을 가리키는 숫자이기도 하고, 또 이 숫자들의 일본어 읽기 ‘이치, 쿠, 미츠, 나나’의 앞 글자를 모은 것이기도 하다네요. 이 책을 한국어로 옮긴 한승동 선생님의 글에 따르면 ‘이쿠’는 ‘가다’라는 뜻이고 ‘미나’는 ‘모두’라는 뜻이라서 ‘이쿠미나’ 하면 ‘모두 가다’ 혹은 ‘모두 가자’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가다’라는 뜻의 ‘이쿠’나 ‘유쿠’는 ‘정복하다’라는 글자로도 바꿔 쓸 수가 있대요. 그래서 ‘모두 정복하러 가다’ 혹은 ‘모두 정복하러 가자’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2020년 5월에 출간된 책이고 일본에서는 2015년에 나온 책인데요. 2015년이 헨미 요에게도 아주 중요한 기점이었다고 해요. 그 해에 일본 국회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가가 공격당했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대신 반격한다’라는 내용으로 집단 자위권 행사를 인정한 법률을 제정합니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고 패전국인데, 그래서 일본의 평화헌법의 핵심이 ‘무력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라는 내용인데 2015년에 사실상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우리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라고 스스로 선언을 한 거죠. 헨미 요는 일본 사회나 정치계의 이런 흐름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쿠미나』를 통해서 현재와 미래의 참조점으로 1937년 난징 대학살과 당시의 중일전쟁을 제시합니다.
전쟁 중에 일본의 황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헨미 요는 세 글자로 간추리는데요. ‘살·략·간’ 살인, 약탈, 강간입니다. 이 중에 특히 살인과 강간에 집중을 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심각한 참극으로 치달리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이 책에서 거듭 하는 거죠. 그리고 ‘이 끔찍한 범죄의 과정과 현장에는 ‘왜’가 없었다, ‘왜’를 고민하는 주체가 없었다’는 점을 저자는 반복해서 생각을 합니다.
조장훈 저 | 사계절
표지에 보면 ‘대치동’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대치동 인근의 지도가 간략한 느낌으로 그려져 있고요.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조장훈 저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논술 강사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2020년까지 대치동에서 학원장으로 일을 했고요. 2020년에 논술 강사 및 학원장을 그만두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대치동에서 학원 강사를 하면서 겪었던 일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인류학적으로 풀어내보자, 해서 대치동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활동을 했는가를 책에 풀어 쓰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 과거 기억을 좀 많이 생각을 해보게 됐고요. 그 당시에 제가 사회적으로 어떤 계급에 위치해 있었고 어떤 연도에 어떤 세대로 위치해 있었는지 굉장히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1부는 ‘불행의 계보학’이라는 제목으로 돼 있는데요. 1장에 보면 부족처럼 한국을 묘사한 글이 있어요. ‘극동의 어떤 나라 아에로크’ 이런 글이 있는데, 아에로크(Aerok)가 코리아를 거꾸로 쓴 겁니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십대가 되고 스무 살이 되면 성인 의식으로써 ‘suneung’이라는 독특한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십대 사람들은 자기의 전 생애와는 단절의 경험을 가져가요. 수험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건데, 이 정체성을 가진 19세 청년들은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분리될 것을 사회로부터 명령을 받아요. 일단 핸드폰을 반납을 합니다. 그리고 게임을 하지 않고, TV를 보지 않고, 축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그러고 단 하루, 아에로크 지방의 모든 이들이 자기의 이후의 인생을 결정짓는 시험에 동시다발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을 풀어놓은 글을 보면 정말 어느 부족 이야기 같아요. ‘아니, 저렇게 모든 사람들이 하루 만에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뭔가 신기하게 보게 되는데, 사실은 그게 한국의 이야기입니다.
2장에서는 대학 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요. 2부는 대치동 스토리입니다. 대치동이 ‘사교육의 메카’, ‘사교육 1번지’ 이런 식으로 불리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게 됩니다.
이 책은 인류학을 읽을 때와 같은 재미가 있고요. 객관적으로 ‘한국의 인류가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가’가 조감도처럼 보여요. ‘대치동 사람들이 어떻게 이 공고한 학벌주의를 계속 재생산해나가고 있는가’라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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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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