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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나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한다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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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음악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내려놓고 과거의 나보다 성취했다는 것에 만족하자. (2021.11.19)

언스플래쉬

2021년 목표 중 하나가 보컬 레슨받기였다. 기왕 노래를 배운다면 가장 기본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성악 레슨을 신청했다. 배운 지 2달쯤 지났고 지금 목소리 상태는 썩 듣기 좋지 않다. 누구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고 오직 선생님께 들려줄 수 있다. 그는 내 소리를 들으려고 돈을 받았다. 

나는 음악이 좋고, 취미로 음악을 만들고 싶다. 악기를 이것저것 만져보고 컴퓨터로 음표를 찍거나 오선지에 규격에 맞추어 무언가 그린다. 하지만 이런 행위를 하면서 늘 재밌지는 않다. 기술이 따라오지 않으면 예술이 될 수 없고, 기예의 영역이 뒷받침되어야, 즉 잘 만들어야 재미있다. 취미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을 잘 만들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은데 내가 만드는 건 아름답지 못하다. 어느 소설 제목처럼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이상향과 실제 만들어내는 소리 사이의 간극이 짜증이 나지만, 그 간극을 메울 수도 없는 상황. 모든 취미에 저 간극이 생긴 걸 바라보고 있으면 그나마 있던 재미도 빠져나간다. 

처음은 늘 재밌다. 20의 노력을 들이면 금방 80의 성취가 따라온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간부터 나머지 20을 채우려면 80의 노력을 억지로 넣어야 한다.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향상음악회라는 이름으로 어릴 적 피아노 학원마다 음악회를 열었었다. 아이들이 생전 입어보지 않던 드레스나 턱시도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무대에 올라 한 달 동안 열심히 외운 악보를 연주한다. 틀려서 우는 아이도 있고, 돌처럼 굳는 아이도 있다. 무슨 음악을 만들어내건 관중석의 부모님들은 캠코더로 아이를 찍고 큰 박수를 보낸다. 내 자식은 귀여우니까. 하지만 다 큰 성인의 귀여움은 누가 견뎌줄 것인가. 오직 선생님만이 견뎌줄 수 있다. 그는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음악) 같은 걸 하게 되었나? 괄호 안은 수많은 다른 아마추어들의 원성으로 바꿀 수 있다. 왜 요가를, 클라이밍을, 연극을, 코딩을 시작했나? 어쩌다 유화를 그리고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나? 왜 사서 먹을 수 있는데 맥주를 만드나? 가죽공예 때문에 세상이 오염되는 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취미를 괄호 안에 넣다 빼고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괄호 안에 있는 걸 빼고 다른 걸 하면 잘할 수 있나? 재밌을까? 하고 싶나? 물어보면 나는 어차피 괄호 안에 똑같은 단어를 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나마 이게 제일 재밌어서 하고 있다. 그나마 할 만하기 때문에 한다.



결국은 자발성의 문제다. 뭔가를 자발적으로 해나갈 때 나는 가장 즐겁고 자연스럽고 창의적일 수 있다. 자발성을 숨 죽게 하는 건 어른의 시선, 사회의 시선이다. 합리적인 듯 하지만 경직되어 있고, 실속을 차리는 듯하지만 허영으로 가득 찬 세계다. 누군가 시켰거나 지켜보기에 그래야만 하는 세계다. 따라서 자발적인 일이란 필연적으로 남들이 보기에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 또는 '꼭 해야 할 필요가 없는 일'에 한없이 가까운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면 다들 좋아해주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이러면 혼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발적이 된다는 건 내 속에 잠재된 사회와 어른의 시선을 떨쳐낸다는 것이다.  _『오래 해나가는 마음』, 41쪽

성악 레슨을 받을 때마다 몸을 개조하는 느낌이 든다. 숨을 쉬세요! 힘을 주세요! 근데 힘을 빼세요! 모든 기예는 극으로 가면 비슷해진다. 운동을 배울 때도, 목공을 배울 때도, 악기를 배울 때도 선생님이 하는 말은 똑같았다. 숨을 쉬고, 힘을 빼라. 어느 날은 손에 잡힌 듯하다가도 다음 주면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는 숨의 감각. 저 감각을 잡겠다는 목표도 좋지만, 잡았다 놓쳤다 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는 없는 걸까. 즐기자는 강박 자체가 내가 못 즐기는 이유인가. 즐거워지자! 재밌어지자! 하고 노력을 해서 실제로 즐거워진다면 모든 직장에서 즐겁자 재밌자 체조를 개발해서 아침마다 시켰을 것이다. 그러니까 숨을 쉬고, 힘을 빼고. 

음악이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음악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내려놓고 과거의 나보다 성취했다는 것에 만족하자. 모두가 극점으로 갈 수는 없다. 취미에는 극점이 없고, 음악은 생물이 아니기 때문에 나를 향한 호오 자체가 없다. 적어도 나는 전문가에게 레슨 일자리를 주었고 음악 생태계에 기여했다. 이것이 최근 내가 하는 정신 승리용 생각 중 하나다. 내일이 되면 또 썩 듣기 좋지 않은 소리를 내겠지. 나는 내일 더 좋을 것이다 아닐 것이다 좋을 것이다.

나는 음악과 창작을 되도록 오래 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오래 해나가는 사람들을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게 나 자신을 향한 응원이기도 하다는 걸 이제는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각기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일을 하며 하나의 큰마음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를 아는 한 우리는 그리 쉽게 포기해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간단히 외로워지지 않는다.  _『오래 해나가는 마음』, 106~107쪽



오래 해나가는 마음
오래 해나가는 마음
류희수 저
곰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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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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