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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는 마음

쓰고 읽는 마음이 같을 순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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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는 동안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이 편지를 꼭 써야했다고. (2021.11.05)

Pixabay

어질러진 집을 둘러보면 꽤 많은 편지들이 책장 한 켠에 쌓여 있다. 조금이라도 나를 향한 메모가 쓰인 것들은 버리기가 어렵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 받은 포스트잇의 메모까지도 모았던 내겐 손으로 직접 쓴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듯하다. 누군가의 손에서, 머리에서 나온 문장의 힘을 믿는 편이다. 문장의 방향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언젠가 읽혀질 문장을 써 내려가는 마음이 얼만큼의 진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인지를.

가끔은 잊고 살던 사람의 편지를 발견할 때가 있는데, 잊고 산 만큼의 부담이 끼얹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마음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어떻게 잊고 살았나 싶어져서. 편지에는 그래서 힘이 있다. 말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그 워딩 그대로 확인하려면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데, 편지는 펼쳐 읽으면 힘이 언제든 되살아난다. 편지 하는 마음도, 편지를 읽는 마음도 모두 귀중하다.

그래서 편지 하는 마음이 읽는 마음에 가 닿지 않는 때가 오면, 실망이 가득해진다는 것도 잘 안다. 얼마 전 썼던 편지는 꽤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아직 읽은 사람에게서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기대를 해선 안 됐던 편지인데 기대를 해 버렸다. 그걸 인정하면서도 진심을 알아줄 거라 생각한 사람들이었기에 대답이 없는 지금이 꽤 불안하다.



어리석은 나는 오래된 물건들을 꺼냈다가 거기에서 당신의 행간을 읽는다. 그때는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이는 마음에 짐짓 놀란다. 아, 그때 이 사람이 나를 참 많이 좋아했구나. 나를 사랑해주었구나. 나 아프지 않고 걱정 없이 보냈던 날들에 나를 지켜주던 당신의 마음이 있었구나. 뒤늦게 고마운 마음에 미소 짓는다.

_김민채, 『편지할게요』 중


잠을 잘 못 자고 있다. 어떤 날은 불을 켠 채로 잠 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새벽에 깨어 버려서 쪽잠으로 나누어 잘 때도 있다. 대개 머리에 담고 사는 게 많은 때 잠이 편치 못한 편이다. 뭐든 생각한 게 있으면 행동에 옮겨봐야 하고, 그렇게 시작한 건 지속해야 마음이 편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와야 만족이 되는 사람. 결과 지향성의 사람인 나는 결과를 빨리 손에 쥐기를 원한다. 그것을 얻을 때까지 계속 찾아보고, 손에 쥐었을 때의 나를 상상해보고, 이 성취 이후의 나는 어떻게 변할지 꿈꿔본다. 

현재 내가 꾸는 꿈에는 최근에 썼던 편지에 담긴 마음이 실현이 되어야 가능한 일도 포함되어 있다. 원하는 걸 이루려면 편지를 써야만 했던 것이다. 말로 전하기에는 조심스러운 이야기들, 조금 길어서 말로 정리해서 전하기엔 내 말의 그릇이 담지 못할 이야기들. 그 편지를 써 내려가는 동안 읽어줄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을 준비는 되었을지 계속 생각했다. 잘 들어줄 거라 믿고 싶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이뤄야 했으므로.

읽어주면 마음이 동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읽는 마음은 나와 같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편지에서는 솔직함이 가장 좋은 무기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솔직함이 때론 불편해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그저 마음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설득을 해야 하는 편지였기에 답이 금방 오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꾸만 실망하게 되는 건 결과 지향성의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번만큼은 여느 때와 달리 감정에 취해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 사라져선 안 되는 나의 이야기를, 꼭 붙잡아야만 하는 내 삶의 가치를 알려야만 했다. 편지를 쓰는 동안 더욱 분명해졌다. 나는 이 편지를 꼭 써야했다고. 어쩌다 보니 감정의 골이 깊어질까 두려워 연락을 하지 못하는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나 이렇게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내 이야기를 믿어줘도 된다고, 행복하길 바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여태 내가 선택해온 모든 일에 후회가 없다는 말도 편지에 썼다. 정말이다.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그 선택 안에서 행복한 방법을 늘 찾으려 한다. 하나라도 더 이뤄내려 하고, 그래서 더 바쁘고 열심히 살려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그들에게 나의 영향이 깃들 기회도 만들어 보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순 없어도,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한 건 다 이뤄내려고 한다. 내 그릇이 허용하는 선 안에서. 내가 나에 대해 명확해 질수록 이 편지의 의미는 더 강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 답이 올지 알 수 없지만, 내 이야기가 읽는 이에게 닿아 서로의 거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답장까지는 기대하지 않겠다. 내 진심이 꼭 닿았기를. 결국에는 서로의 행복을 비는 마음인 것이라는 마음이 만나기를.


매정한 딸은 듣지 못했던 그 목소리, 보지 못한 그 표정. 감사하게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있다. 엄마의 자리에. 인정머리 없는 딸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엄마를 살피고 헤아릴 줄 모른다. 그저 문득 엄마를 떠올릴 뿐이다. 엄마가 내 곁이 아니더라도 세상 어디에라도 존재해주기를, 이왕이면 맛난 음식도 먹고 좋은 풍경과 마주하는 멋진 하루를 보내길 바라면서. 

_김민채, 『편지할게요』


편지할게요
편지할게요
김민채 저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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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도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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