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아이를 잃은 주인공 ‘민’. 그녀는 그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믿지만 상처에서 촉발된 불안은 마치 그림자처럼 계속해 민을 따라다닌다. 그 형태는 때로는 검은 모자를 쓴 여자로, 때로는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느낌으로 나타난다. 그러던 중 민은 입양한 아이 동수와 함께 데려온 검은 고양이가 원래 키우던 개를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사건을 겪으며 자신이 다시 쌓아올렸다 믿은 평화의 얄팍함을 깨닫는다.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였다. 고양이도 동수도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부 사이에 끼어 들어온 타자였다. 상처를 덮기 위해 급조된 환경이었다. 지금의 평화는 봄이면 무너진 축대 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곤 하는 개나리처럼 어딘지 위태로워 보였다. 축대가 무너지는 순간 노란 꽃들은 언제든 비명을 지르며 뭉개질 것이다. _(70쪽)
그 후로도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사고들이 계속해 벌어지며 민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빼앗는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는 ‘타자’인 동수의 존재도, 무조건 아이의 편을 드는 남편의 행동도,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다.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이 모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혼란한 마음을 안고 찾아간 무당에게서 민은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살아 있어. 살았는데 죽은 거나 다름없어. 아마 본인이 그런 마음일 거야. 살아도 송장처럼 살고 있는 게 보여. 제가 제 몸을 파먹고 있군. 가련해라!" _(121쪽)
『검은 모자를 쓴 여자』는 현실에 대한 불온한 의심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다. 진실과 거짓이 빈틈없이 얽혀 경계가 사라지고 ‘내가 인식하는 세상’만이 오로지 진실이 되는 공간. 그곳에서 작가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나눌 수 없는 내면의 혼돈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드러내며 인간의 고통과 불행이 외부와 내부, 그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우리에게 질문케 한다.
아이의 죽음은 정말 단순한 사고였을지, 검은 고양이는 정말로 불길한 악마의 전령일지, 동수의 엄마는 실재하는지... 환상과 현실이 서로 꼬리를 물듯 뒤엉켜 있는 세계 속에서 그녀가 의심하던 것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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