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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K의 오리엔탈리즘 : 원어스 ‘월하미인’
원어스 ‘월하미인’
가치를 판단하기 전, 눈과 귀가 먼저 반응한다. 오리지널 K의 오리엔탈리즘이 분연히 일어선다. (2021.11.10)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처럼 우리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말도 드물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생각을 모조리 잠그고 글자만 보면 어려운 것도 없다. 언어든 문학이든 문화든 할 것 없이 동양적인 것을 모두 통칭하는 말이 오리엔탈리즘이다. 말은 죄가 없다. 그런 오리엔탈리즘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온 인류의 경솔함이 죄라면 죄다. 마땅히 아시아에 태어난 이들의 것이어야 할 당사자성이 미처 여물기도 전에, 오리엔탈리즘은 이미 바다 너머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해체당하고 재구성되었다. 오만과 무지로 인해 태어난 명명백백한 죄목을 가진 작품을 일일이 열거하기엔 지면이 부족하므로 죄인의 명단은 이하 생략한다.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홀린 듯 이끌려 숨겨져 있던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국의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는 정말이지 질리도록 봐왔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오리엔탈’이 표현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어떤가. 확실한 당사자성이 있으니 그것으로 족한가. 안타깝게도 그 역시 쉽지 않다. ‘틀려도 내가 틀리고, 욕해도 내가 욕한다’는 말이야 덜 부끄럽게 할 수 있겠지만, 줄곧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되어 온 짧지 않은 왜곡의 역사는 아시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본질에까지 그대로 스며들었다. 지금 내가 표현하고 있는 게 순도 100%의 나인지 아니면 해외 미디어 콘텐츠를 보며 주입된 닳고 닳은 오리엔탈리즘의 잔재인지 조심스러운 고민을 반복하는 사이, 케이팝이 힘차게 등장한다. 잇몸만 성하다면 무엇이든 우선 씹고 보는 거침 없는 박력을 장점이자 단점으로 삼고 있는 이 성역 없는 장르와 오리엔탈리즘은 서로에게 꽤 익숙한 존재다.
무엇보다 음악과 비주얼 모두에서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유효했다. 궁상각치우 같은 오음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특정 선율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 음악이 ‘동양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다양한 학습의 결과다. 비주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쌈도 족발도 아닌데 여전히 ‘원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지만, 동식물을 형상화한 문양이 화려하게 수 놓인 비단 의상, 나무와 종이를 주재료로 삼은 문과 기둥, 갖은 기와를 올린 특유의 가옥구조, 채우기보다는 비우기를 멋으로 여기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 영상 등, 모두 보는 순간 ‘동양적’이라는 반사적 반응을 끌어내는 미장센이다. 방탄소년단 ‘IDOL’과 NCT 127 ‘영웅’ 뮤직비디오, 한복을 베이스로 한 블랙핑크의 의상, 뱃노래를 차용한 인피니트 ‘추격자’의 안무와 후렴구, 퀸덤에서 보여준 오마이걸의 ‘Destiny’와 빅스의 ‘도원경’ 특별무대가 완성해낸 풍경 모두가 케이팝과 오리엔탈리즘이 교차점에서 탄생했다.
원어스의 ‘월하미인’은 이렇게 긴 목록에 인상적인 순간을 하나 더한다. 제목부터 본격적임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 ‘월하미인’은 음악에서 뮤직비디오 연출, 의상에서 작은 소품 하나까지 케이팝이 그동안 세상에 선보여 온 오리엔탈리즘의 종합편이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아니다. 2019년 발표한 세 번째 미니앨범 <FLY WITH US>의 타이틀곡 ‘가자 (LIT)’부터 살짝 맛을 보여준 이들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열망은, 2020년 방송된 엠넷 ‘로드 투 킹덤’의 2차 경연 무대로 이미 한 번 완성된 경험이 있다. 자욱한 안개 속 처연하게 울리는 대금 연주로 시작된 무대는, 사군자가 그려진 부채에서 부적, 사물놀이패에서 검은 복면을 쓴 자객, 왕이 앉는 옥좌에서 사자놀이 등 다양한 오리엔탈 이미지가 벌인 난장으로 시청자의 호평을 얻었다.
‘월하미인’은 그 연장선에서 좀 더 차가운 계절과 달의 정서로 매만져진 디럭스 판이다. 노래는 넓게 펼쳐진 신스 사운드 위로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한 악기와 멜로디를 쉼 없이 교차한다. ‘칠흑 같은 밤 홀로 우는 달’로 시작되는 노랫말 역시 단지 껍데기만 동양풍이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멤버들은 퍼포먼스의 주요 소품으로 부채를 여전히 사용하며, 뮤직비디오에서는 부채를 펴는 효과음을 일부러 강조하기도 한다. 매화와 나비, 족자와 탈춤을 추는 댄서가 등장하고, 종종 교차하는 다소 현대적인 이미지는 얼핏 19세기 말 대한제국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월하미인’이 최근 케이팝에서 자주 만나는, 해외 시장을 의식한 오리엔탈리즘보다는 한국 대중문화를 꾸준히 즐겨온 이들에게 익숙한 ‘한국의 시대물’ 같은 인상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단히 획기적인 오리엔탈리즘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주저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이라서 나올 수 있는 오리엔탈리즘이냐 묻는다면 두 번 고민 않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가치를 판단하기 전, 눈과 귀가 먼저 반응한다. 오리지널 K의 오리엔탈리즘이 분연히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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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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