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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달걀을 세우는 마음으로 음악을 만든다 - 스탠딩에그
[엄윤미의 작업실 인터뷰] 8화
예전에는 음악이 영상에 기댄다는 느낌이 드는 것, 나에게 소중한 음악이 다른 어떤 콘텐츠의 서브가 되는 것이 싫었어요. 이제는 음악을 잘 들려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2021.11.10)
매달 작업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대학로 '스토리 스튜디오' 한켠에 음악을 듣고 음악에 관련된 책을 읽거나 간단한 작업도 할 수 있는 뮤직존이 생겼습니다. 작업실을 찾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취향을 발견하고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 스탠딩에그의 노래 가사를 일러스트레이터 그림비 작가의 그림과 함께 담아낸 책 『여름밤에 우린』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책 덕분에, 뮤직존이 생긴 작업실에 뮤지션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에그1,2,3호 세 명의 뮤지션이 함께 하는 스탠딩에그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활동하고 있는 에그2호를 만났습니다.
스탠딩에그의 트위터 프로필에는 “어쿠스틱 뮤지션 스탠딩에그입니다. 달걀을 세우는 마음으로 늘 정성을 다해서 좋은 음악을 만들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어쿠스틱 음악은 안 될 거라는 기존의 틀을 콜럼부스의 달걀을 세우듯 깨뜨린다는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어쿠스틱 뮤지션으로 12년차가 되셨고, 그동안 음악을 선택하고 듣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개인화된 음악 소비가 가능해진 시대에도 어쿠스틱 음악을 하는 일은 여전히 달걀을 세우는 마음이 필요한 일인가요?
스탠딩에그를 시작할 때, 어쿠스틱 음악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류 음악은 아니었어요. 화려하고 비주얼적인 음악이 유행할 때였고, 저희도 그런 음악을 만들고 있었고요. 그런데 만드는 우리도 마음이 지치고, 귀가 편안한 음악이 그리웠어요. 트렌드라는 말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졌고요. 매년 새로운 트렌드가 나오는데 왜 지나갈 트렌드에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지? 10년, 20년이 지나도 의미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고, 자극적인 것보다는 ‘정서’를 담고 싶어서 어쿠스틱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0년 넘게 음악을 하고 있는데, 요즘이 힘든 때예요. 영상 콘텐츠들이 미디어 전체를 장악하고 있고, 사람들은 15초, 30초 이내에 빠른 컨텐츠로 자극이나 정보를 얻는 시대니까요. 최소한 3분 이상 귀로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어색한 경험인데 그걸 청자 분들에게 전해야 하는 아티스트 입장에선 어떻게 하면 우리 음악을 듣게 할지 늘 고민해야 해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도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질문해 주시니까 예전 생각이 나면서 용기가 나네요. 10년 전 시작할 때도 힘들었거든요. 어쿠스틱을 누가 듣니? 그런데 방송을 왜 안 해? 음악만 하고 싶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소리 같았는데,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앨범보다 싱글 위주로 곡을 발표하는 것이나, 음악과 함께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로 발표하는 것 등을 보면 변화에 적응해 가시는 중인 것 같습니다.
최선을 다해야죠. 유튜브도 몇년 동안 난 안 해, 밀어내고 밀어냈는데, 흐름이란 걸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음악은 소통이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음악을 듣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전달이 안 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듣는 사람의 언어, 동일한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음악이 영상에 기댄다는 느낌이 드는 것, 나에게 소중한 음악이 다른 어떤 콘텐츠의 서브가 되는 것이 싫었어요. 이제는 음악을 잘 들려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됐어요.
전하고 싶은 음악이 중심에 있고 그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영상을 만드는 것이라 그런지, 만드시는 영상이 스탠딩에그 음악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상의 결을 많이 고민해요. 조회수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웃음). 그래도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만들고 있어요.
조회수가 아직 성에 차진 않으시겠지만 (웃음), 예전엔 콘서트나 작은 무대에서 소통했다면, 영상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또 다른 피드백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네요. 오프라인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피드백도 받고 있어요. 우리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영상도 비슷한 결이라고 느껴주는 것 같고요. 댓글 중에, 우연히 발견하고 보게 된 영상인데 이 영상을 왜 사람들이 안보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있더라고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하고 만날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에그1호, 에그2호, 에그3호는 모두 곡을 만드는 분들이시죠.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휩쓸리지 않고 원하는 길을 택할 용기를 내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명이 같이 작업하면서 티격태격 다투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 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멤버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거예요. 우리끼리는 다투고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하지만 외부에서 자극이나 코멘트가 있을 때는 그래도 우리 멤버가 최고니까, 난 우리가 이렇게 가는게 맞다고 생각해, 서로 응원해 주는 게 좋아요. 모든 창작자가 그렇겠지만,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가장 힘든 때는 내가 하고 있는 게 옳은가, 가치있는가를 고민하는 순간이에요. 확신을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음악을 계속 해나가는 큰 힘이 되죠.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시절부터 노래하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보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으셨나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제가 뭘 원하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헤비 리스너였고, 하루 종일 음악에 파묻혀 있었어요. 여러 가지 들었지만 가장 임팩트있게 들었던 건 제가 열두 살 때 마이클잭슨이 몇 년 만에 낸 정규 앨범이었어요. 음악을 들었는데 충격이 컸어요. 이런 음악이 있구나. 심장이 뛰었어요.
마이클 잭슨이 춤을 출 때는 음악을 몸으로 표출하는 것 같은 느낌, 소리를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양한 감정들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어요. 노래도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죠. 형태가 없는 정서가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다가오는 것을 본 거예요. 움직임, 목소리, 에너지 자체가 음악이라는 걸 알게 되었던 그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그래서 역순으로 옛날 음악을 찾아 들었어요. 마이클 잭슨 앞에 뭐가 있었길래 이런 음악이 나왔나. 1930-1940년대 음악이 사람들의 니즈에 맞게 변신하면서 근사하게 변해오는 과정을 찾아보고, 공부하듯이 들었어요. 그때는 친구들 만나도 "어떤 음악 들어?"부터 물었죠. 나도 그 사람 좋아하는데. 그 음악 들어 봤어? 같은 대화가 사람을 만나는 징검다리였고, 음악이 늘 소중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작곡을 할 수 있게 됐고요.
화성을 배우거나 한 것이 아닌데 작곡을 할 수 있게 된 건가요?
네. 늘 음악을 듣던 중에 나도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음악이 떠올랐어요. 이걸 이렇게 바꾸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서 진행을 왜 이렇게 했지? 나라면 이렇게 했을것 같은데? 나의 취향이 생기고,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갈증이 생기고, 멜로디를 상상하고 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도 뮤지션이 될 생각을 하진 않았고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는데, 나중에야 나는 처음부터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네가 뭔데 뮤지션이 돼? 네가 어떻게 가수가 돼? 란 말을 듣는 게 겁나서, 너만큼 잘하는 사람은 되게 많을 걸? 같은 말을 들을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용기를 내서 음악을 하게 되셨네요. 같이 하는 팀을 만나셨고요.
결핍에서 동력이 된다고 하잖아요. 음악을 하는 동료를 만나는 것도 자신의 결핍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이런 능력이 있는데 이런 건 부족해, 어떤 부분은 내가 채워 주는데 어떤 부분은 기대게 돼, 하고 알아가는 거죠. 아주 뛰어난 능력이 있는 친구를 만나려고 하기보다는 나에게 없는 걸 가진 친구를 만나면 서로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노래하고 멜로디 만드는 건 자신이 있었는데, 머릿속에 있는 걸 소리로 구현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능력은 없었어요. 1호 형은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프로듀싱의 힘을 가졌죠. 3호 형은 순수한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멋스럽지 않다고 생각할까 걱정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가사를 써요. 스탠딩에그 음악의 근간이죠. 저는 그 가사가 간지러울 때도 있지만,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시적이고 문학적인 것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에센셜한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자존심을 서로 지켜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건 결과물의 기준치에 대해 같은 눈높이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 인터뷰(보기)에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합리적으로 다투는 것이 팀 워크의 비결이라고 대답하셨죠.
사람들끼리 왜 마음속에 있는 말을 안하지? 하는 불만이 있었어요. 저는 누가 좋다고 하면 안 좋은 거 얘기해 봐, 하고 찌르는 편이에요. 그럼 그때서야 좋긴 한데 - 하고 대답해주거든요. 별론데? 라는 말을 꺼내야 반대로 그걸 만든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고요. 씩씩거리고 헤어지지만 집에 와서 누워 있으면 생각이 나요. 그 사람 이야기도 일리가 있는데, 하고 다시 정리해서 가면,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해 와요. 결국 중간에 있는 더 좋은 무언가를 찾게 되죠.
더 좋은 것을 만들겠다는 목적에 서로 의심이 없을 때 가능한 일일 것 같네요.
그렇죠. 협업을 해 보면, 어렵더라고요. 성향상 말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에그2호님도 노래를 하시잖아요. 어떤 노래를 직접 부르고 어떤 때 객원 가수를 초대하세요?
요즘은 제가 부르는 곡들이 많아졌어요. 결혼하고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다른 분이 불렀을 때 나와 같은 감정은 아니니까요. 다른 분들이 노래하는 경우는, 곡을 쓰면서부터 목소리를 떠올릴 때가 있어요. 이런 목소리로 불러주면 좋겠다, 생각나는 분들에게 전화드리는 거죠. 지난 주말에도 곡을 썼는데 브루노 마스 목소리가 떠올라서 (웃음). 그걸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팬 분들이 브루노 마스를 태그해줬어요. 브루노 마스가 연락해 줬으면 좋겠네요. (웃음)
유튜브에서 영상과 함께 음악을 전달한다 거나, 다른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한다거나, 피크닉(Piknic) 과 콜라보로 식물들을 위한 콘서트를 여신다거나 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 가장 흥미롭게 실험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오프라인 공연을 다시 하기 시작했지만, 언택트 시대에 공연이라는 것이 부자연스러워졌어요. 2년만에 무대에 서니 저도 무대에 있는게 어색하고, 관객도 마음 속 모든 걸 꺼내 놓으며 환호할 수 없으니 서로 불편한 상태인 거죠. 그렇다고 해서 라이브 영상을 찍는다고 현장감이 느껴지진 않아요. 감정에 따라, 공연의 흐름에 따라 시선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노래 만이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를 전달해야 하니까요. 연주자와 노래하는 사람이 교감하는 분위기가 보이도록 하는 걸 고민하고 있고, 피크닉과의 콜라보 영상도 공연의 다이내믹을 주려고 연구했어요.
기술이나 자본을 가진 분들이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문화가 갖는 파급력은 시간을 두고 나타나더라도 거대한 물살처럼 사람을 덮칠 수 있으니까요. 어릴 때 TV에서 본 영상만으로도 심장이 뛰고, 나도 저기 있고 싶다, 저긴 어떤 기분일까? 호기심이 들었어요. 그 호기심에서 출발해서 퍼포머가 되고 관객이 되고 기획자가 되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잖아요. 젊은 세대는 디테일한 취향을 갖게 되었고, 그 취향이 니즈가 되어 흐름을 만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콘텐츠에 기술이 접목되기를 기대합니다.
소속사도 직접, 음악도 직접 만들고, 연주자들, 객원 보컬들과 협업으로 음악을 완성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전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데 적응해 가는 속도나 방식에 주도권을 쥐고 계신 것 같아요.
그게 저희가 조금 더 일찍 자리 잡고 유지해 온 큰 힘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후배 뮤지션들이 어떻게 하면 스탠딩에그처럼 해 나갈 수 있느냐고 물으면 슬퍼지기도 해요. 음악하는 사람이 음악만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다 해야 한다는 말이 선뜻 안 나오더라고요. 저희는 우리 힘으로 한다는 자긍심에 밤잠 안자고 음악했지만, 요즘은 그게 옳은지 다시 고민하게 돼요. 성공하는 것, 인정받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지 음악을 하는 목표는 아니잖아요. 음악적인 즐거움이 있어야 창작자로서 더 행복할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줄여서 다른 걸 한다는 게 맞는지. 당시 저에겐 선택지가 없었지만, 지금 후배들에겐 그래도 고민해 보라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협업해 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스탠딩에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시간이 흐르면서 팬층이 바뀌었나요?
20대 초중반에서 30대 초반,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까지의 감성적으로 말랑말랑한 분들이 저희 팬들이에요. 음악을 만들 때, 감성이 충만한 시기의 음악을 깊게 느낄 수 있는 분들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맞을까, 뮤지션이 나이들어감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러울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계속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그 속의 감성은 비슷한가 봐요. 젊은 분들이 계속 유입되고, 저희의 팬이 되어주시는 것을 보면 감사하죠.
감성, 이라는 단어가 핵심이군요.
인류가 서로 공감하는 능력은 꾸준히 있었고 그 역사가 오랜 시간 쌓여 왔어요. 그걸 건드리는 것이 음악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들었을 때 ‘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어’ 하고 이해하게 되는 거죠. 따뜻한 느낌이 들어. 허해지는 느낌이야.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야. 가을타는 기분이야, 그런 감성을 전달하는 것, 그것이 음악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스탠딩에그 음악의 감성을 담은 그림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림비 작가님과 함께 만든 『여름밤에 우린』 은 정말 아름다운 책인데요. 책을 만들면서 어떤 기대를 하셨나요?
음악의 특징이자 장점이 형태가 없다는 거예요. 계속 존재해도 눈으로 그려지는 형태가 아니어서 덜 지겹고 오래 갈 수 있죠. 하지만 반대로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상이 안 그려져서, 누군가에겐 영원히 주변에 부유하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요. 이 책은 그걸 선명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가사 일러스트북은 큰 출판사들에서도 제안이 있었지만 고사했었어요. 음악이 상품화되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책도 상품이 아닌 책이길 바랐거든요. 『여름밤에 우린』은 평소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 분과 우연히 연이 닿아 이야길 하다 이루어졌고, 만드는 과정에서 애정이 생겼어요. 굿즈로 소비하기보다 이 책을 통해 음악이 마음에 와 닿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림비 작가님을 평소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하고 계셨다고요.
파인 아트, 디자인, 일러스트 등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아요. 다채로운 분야를 알아야 음악을 만드는 영감을 얻게 되고, 또 저희는 스스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있으니까 자꾸 새로운 것들을 봐야 요즘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림비 작가님은 너무 유명하신 분이라 이분이 그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흔쾌히 같이 하고 싶다고 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스탠딩 에그 음악도 좋아하고,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일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일러스트나 그림책 외에 좋아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예술 장르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오늘의 집'에 집의 인테리어를 소개하면서 인터뷰도 하셨던데요.
저는 고시원, 원룸에서도 오래 살았고, 항상 커다란 박스 하나에 들어갈 정도의 짐을 유지하면서 살았어요. 나는 이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그게 내 선택일까 주어진 걸까 생각해 보니, 왜 나는 젊었을 때 내 욕구를 누르고 하고 싶은 것들을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까? 하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왜 마음껏 하고 싶은걸 해보지 못했나. 그걸 아내를 만나면서 알았어요. 아내는 정말 제멋대로 사는 사람이거든요, (웃음)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거 있으면 다 해! 라고 말해주는 사람 덕분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뒤늦게 많이 고민하게 됐고, 그게 제 인생을 많이 바꿨어요.
노래 '여름밤에 우린'도 아내와의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아내분과의 만남이 에그 2호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어떤 상을 그리는 것 같아요. 멋진 남자나 멋진 여자친구, 근사한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난 원래 이렇다는 말도 하고 싶잖아요. 그 마음이 섞여 있다 보니 충돌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은 여러가지 면을 가지고 있잖아요. 새로운 자극이 있을 때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네? 바꿔보고 경험해 보면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걸 알게 되는거고요. 사람을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 를 일찍 정하기보다 변하는 자신을 긍정할 필요가 있는 거죠.
멋지게 보이고 싶어서 행동했다가 거절당하면 상처받고 억울한 마음이 드는데, 저를 100%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쉽게 비판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대하게 되고 상처도 안 받는거 같아요. 30대 이후 행복지수가 높아졌어요.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 없을 때보다는 있을 때 기분 좋은 것들’. 대체로 이런 것들이 세상을 로맨틱하게 만든다. 음악이 그렇고, 꽃도 그렇다. 거창하진 않지만 특별한 것들, 실용적이진 않지만 재밌는 것들, 비논리적이지만 가슴에 와 닿는 것들. 이런 ‘귀여운 불안함’ 이 우리 삶에 활기를 준다.” _『보이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에그2호님의 에세이 『보이스』를 읽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분이라는 걸 글의 곳곳에서 느꼈지만, 마냥 낭만적이기보다는 내가 하는 선택을 이성적으로 명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긴 시간 음악을 지속해 오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음악도 직업이니까, 직업인으로서 잘 해왔다는 측면에서는 그런 면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조금 더 마음을 따라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요. 직업적 성공이 덜했을수는 있어도 나름의 삶이 있었겠죠. 조금 더 멋대로 가는 삶, 덜 인정받아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진 삶도 멋진 삶일 수 있겠단 생각을 해요. 정수에 가깝게 가 있는 음악이나 글을 보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어요.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려 하는 분들, 음악적으로 탐구하는 분들이 만들어낸 것들이죠. 그런 분들이 더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들어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이 살 만한 사회라면 좋겠죠.
맞아요. 저도 그걸 겁냈던 거니까요.
선택의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지금의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뭘까. 지금의 내가 원하지 않는 거라면 안해요.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덜 좋은 선택일지라도요. 경험을 통해 얻은 여유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계속 한다고 해서 그 삶이 행복해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세상에서 행복하겠다고 말하는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은 있는거 같아요. 그런데 내가 행복한 삶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답이 없어요.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온 10년 동안 나는 행복했었나, 돌아보게 돼요.
감성을 전하는 것이 음악이라면, 음악을 만드는 일은 뭘까요. 에그 2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이 음악을 만든다고 대답했습니다.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 만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고요.
그 마음이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은 음악일 수도, 글일 수도, 그림일 수도 있겠습니다. 음악과 그림이 서로 옷을 바꿔 입을 수도, 글과 그림이 만날 수도 있겠죠. 『여름밤에 우린』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그렇듯이. 그림비 작가의 일러스트 덕분에 여러번 들어온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볼 수 있게 된 이 책을 읽게 되신다면, 스탠딩 에그의 음악을 같이 하셔도, 잘 어울리는 감성이 느껴지는 음악을 찾아 들어 보셔도 좋겠습니다.
*스탠딩 에그 (멤버: EGG 1호, EGG 2호, EGG 3호) 편안하고 감미로운 어쿠스틱 음악을 들려주는 뮤지션. 달콤하고 로맨틱한 사랑의 감정을 아름답고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탠딩에그의 음악은 플레이하는 순간 노래 속 풍경으로 듣는 이를 데리고 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보적인 감성과 가창력으로 대한민국 인디뮤직 신(Scene)을 대표하고 있다. '친구에서 연인', '사랑하는 너에게', '오래된 노래', 'Little Star' 등 수많은 인기곡을 발표했다. ▶ 트위터 : @standingeg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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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기부 펀드 씨프로그램의 대표. 플레이 펀드를 통해 어린이들을 위한 제3의 공간에, 러닝 펀드를 통해 교육 실험에 투자한다. 새로운 실험이 많아질 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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