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관계의 해법, ‘선 긋기’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 송주연 작가 인터뷰
저는 나와 남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선을 잘 긋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책임지며 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를 더욱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고요. (2021.11.05)
“자꾸만 예전 일들이 떠올라서 저 자신이 싫어져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 너무 신경 쓰여요.”
“전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자꾸 외향적인 성격을 강요해요.”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이에 수많은 내담자들을 상담해온 상담심리사 송주연 저자는 『이 선 넘지 말아 줄래요?』를 통해 “선 긋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내 마음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과 적당한 거리를 둘 때, 비로소 관계의 고민에서 해방되고 건강한 인간관계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나로 사는 것을 막아서는 것들과 거리 두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거리 두기에 대한 심리학적 방법을 내 삶에 적용하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온전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고민을 풀어나가는 해법으로 ‘선 긋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우리가 관계에서 힘들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요? 타인의 감정에 책임을 지려고 할 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다른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 착각할 때,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인정에 나를 매어둘 때. 아마도 이런 때 많은 이들이 관계에서 힘들다고 느낄 겁니다.
이런 순간들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나와 타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감정을 타인의 것과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가 같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나와 동일시할 때 일어나는 일들이죠. 그래서 저는 나와 남을 잘 구분할 수 있도록 선을 잘 긋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의 행복을 책임지며 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로를 더욱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건 물론이고요.
보통 ‘관계에서 거리를 둔다’라고 하면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나 자신 그리고 사회적 편견과도 거리를 두어야 한다”라고 책에서 말씀하셨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람은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어요. 이는 나 자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감정이나 상처, 생각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내면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본다면, 그것들은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돼요. 그럴 때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수용하되 매몰되지 않고 지금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사회는 ‘~답게’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정들을 가지고 있어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런 질서에 따라 관계가 맺어집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은 지배계층의 시선으로 편향되어 있어요. 때문에 불편하고 부당하다 여기면서도 이 시선에 맞추어 사는 것을 선택하게 되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방해합니다.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회의 맥락 속에서 나를 이해하고 부당한 편견과 선을 그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가끔 과거에 있었던 안 좋은 일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떠올라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러한 것들과 선을 그을 수 있을까요?
과거의 상처가 떠오를 때 우리는 종종 온통 그 생각에 매몰되어 버리곤 해요. 그 경험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탄하죠. 하지만 그 일들은 결코 나 자신이 될 수 없어요. 힘든 경험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모습들이 있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나라는 존재가 되는 거지요.
과거의 일들이 자꾸 떠올라 괴로울 땐, 일단 그 시기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머릿속에 그려진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달라요. 내가 아닌 ‘그 아이’가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감정들을 느껴보세요. 그런 다음, 지금 어른이 된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거죠. 마음속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를 상상하고 마주하는 것은 과거 경험에 매몰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해준답니다. 이렇게 멀찍이 바라보면 과거의 경험을 수용하면서도 선을 긋게 되고 지금 현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살피려 드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타인의 감정엔 그만의 이유가 있다.”
이 말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같은 말을 듣더라도 그 말에 대한 반응은 다 다릅니다. 만일 내 말이 어떤 사람의 감정의 이유가 된다면,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반응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지요.
같은 말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이 감정을 유발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예측할 수 없답니다. 내가 의도적으로 어떤 감정을 유발하려 한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감정은 다른 이유에서 생겨난 거예요. 그것에까지 내가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오히려 자기중심적이라 할 수 있어요. 타인의 감정은 타인의 자유임을 명심하고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게 오히려 겸손하고 배려하는 태도이지요.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데요. 이에 대한 작가님 의견이 궁금합니다.
내향과 외향은 심리적인 에너지를 내부에서 얻는지 외부에서 얻는지에 따라 분류한, 그저 다른 특성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선 내향성은 고쳐야 할 것으로, 외향성은 좋은 성격으로 인식되곤 하지요. 이는 산업화시대 이후 ‘외향성의 신화’가 사회에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용하게 농사짓고 살던 시대에는 홀로 있을 때 더 행복한 ‘내향인’들이 더 좋은 성격이라 여겨졌을 거예요. 하지만 도시로 몰려들면서 낯선 이들과 어울리는 게 생존의 방법이 됐고 외향인들이 각광받게 되었죠. 그러면서 학교나 직장에서도 혼자서 일하고 공부하는 사람보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고 발표를 잘하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요.
이처럼 외향인과 내향인에 대한 평가는 사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뿐이에요. 내향인은 나름의 장점이 있고 이들이 꼭 필요한 분야들도 많지요. 그러니 자신의 성격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넓혔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그만의 장점을 살리면 내향인도 충분히 행복하게 나답게 살아갈 수 있어요.
아무리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들과 선을 그어도,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무엇이 있을까요?
정말 어려운 문제지요. 한 개인의 힘으로만 해결하기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나 하나면 참으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참는다면 부조리한 사회의 통념과 편견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미래에도 우리는 계속 나를 지키기 힘들어질 거예요.
저는 조금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나 자신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해요. 어떤 부분이 내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 파악하고,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보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적어도 ‘나 때문에’라는 한탄에서는 벗어날 수 있고, 내 주변은 조금 더 나를 존중하는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혼자 긋는 선보다 함께 긋는 선은 더 강하고, 이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강한 무기가 될 거예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마지막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선을 긋는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개인주의를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적절하게 선을 그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결국엔 연대하는 길이 된다고 믿습니다. 선을 그어 보다 나다워진 사람들이 서로의 선을 지키며 연결될 때 다양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사회가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송주연 한국상담심리학회의 1급 상담심리사다. 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7년간 기자로 일했다. 사람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인 마음에 이끌려 기자직을 그만두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 진학해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는 대구에서 루트 심리상담소를 운영 중이다. 모든 수를 품어주는 수학 기호 ‘루트(√)’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마음을 안아주고 있다. 또한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의 가치를 담은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는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가 있다.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 저자는 심리적 고통이 대부분 ‘나’를 지킬 줄 몰라서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기 자신, 타인, 세상과의 ‘선 긋기’를 찾아냈다. 이 책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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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두면 상처받지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한 최소한의 간격! 우리는 불쑥 나의 경계를 침범해오는 사람들에게 되려 “죄송합니다”라거나 “미안해”라고 사과하기 바쁘다. 왜 우리는 선을 넘는 사람들에게 “No”라고 쉽사리 말하지 못할까? 바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