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나도, 에세이스트] 11월 대상 - 일주일에 4시간, 금요일 친구가 부리는 마법

나의 특별한 친구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오늘도 금요일 친구 만나요?” 금요일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옆자리 동료와 나누는 일종의 인사말이다. (2021.11.03)

언스플래쉬

“오늘도 금요일 친구 만나요?”

“크큭 또 들켰네요.” 

금요일 퇴근 시간만 다가오면 옆자리 동료와 나누는 일종의 인사말이다. ‘금요일 친구’는 금요일마다 ‘불금에 뭐해요?’란 의례적인 질문을 주고받을 때 내가 매번 같은 친구를 만나는 걸 알게 된 직장 동료가 혀를 내두르며 지어준 별명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금요일마다 이 친구를 만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째다. 

금요일 친구와의 운명적 만남은 대학교 4학년 때부터다. 휴학하고 1년 신나게 놀다가 학교에 가니 친했던 동기들은 다 졸업했고,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후배들과 수업을 같이 들어야 했다. 그중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가 딱 한 명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금요일 친구’다. 그전에는 오고 가다 인사 정도만 나눴던 사이인데 그를 발견한 순간, 예전부터 친했던 것 마냥 손을 흔들며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수업을 같이 듣고, 밥을 같이 먹고, 취업 준비를 같이했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인연이 그렇듯 관계가 소홀해질 수 있는 방학에는 토익학원을 핑계로 쉴 틈 없이 붙어 다녔다. 졸업을 앞두고 서로를 알게 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잘 통했다.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우리는 정말 쏘울메이트야’라는 낯 뜨거운 말도 서슴없이 내뱉을 정도였으니까. 

대학 졸업 후 돈도 벌고 취업 준비도 할 겸, 대학교 행정팀에서 조교로 일했다. 한 달 뒤 옆자리에 공석이 났고, 같은 취업준비생인 금요일 친구를 꼬드겼다. 그렇게 우리는 1년 동안 매일 봤다. 빨리 취업에 성공해서 나가야 했지만, 둘이 붙어 다닐 수 있는 환경에 너무 만족한 나머지 계약 기간을 꽉 채우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혹독한 백수 생활을 겪고, 비슷한 시기에 나는 6호선 망원역, 친구는 6호선 태릉입구역 근처에서 정규직으로 취업했다. 진정한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딘 만큼 쌓이는 스트레스 장르도 다양해졌다. 최소 주 1회는 만나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전철을 갈아타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보문역에서, 심적으로 부담이 적은 매주 금요일 퇴근 후에 만남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혹자는 ‘도대체 금요일마다 만나서 뭐 해?’라고 묻는다. 한 달에 4번이나 만나지만 매번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신다. 음식이 입에 맞고,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갖춰진 곳이라면 몇 주간 그 식당만 가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 19 탓에 음료를 사 들고 공원을 몇 바퀴씩 빙빙 돌기도 한다. 음식과 장소는 곁들 뿐 편하게 대화할 장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후 6시부터 10시, 퇴근 후 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말 그대로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는데, 단 한 번도 쓰레기통 역할을 버겁게 느껴본 적이 없다. 친구가 내게 내다 버린 감정을 잘근잘근 씹는 동안 오히려 내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을 경험한다. 가족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고, 아무리 오래된 친구에게도 무턱대고 털어놓기 힘든 고민들도 금요일 친구에게는 뭐가 그렇게 쉬운지 모르겠다. 

손가락질에 막말을 일삼는 상사 때문에 기가 팍 죽어 있던 때가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상사의 폭격에 여러 번 되뇌고 곱씹다가 결국 ‘맞아, 내 잘못이야’라며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금요일 친구가 없었다면 아마 그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된통 당하고 온 나조차도 별거 아니라고 넘어간 일을 친구는 얼굴을 붉힌 채 ‘가다가 넘어져서 코나 확 깨져버려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집에 와서 씻고 누우면 ‘그래, 웃기지 마! 내 잘못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땅굴을 박차고 나와 주말 동안만큼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나중에는 상사(여전히 코는 깨지지 않은)의 거친 발언이 내 귀를 때려도 ‘이것도 이번 주 금요일 이야깃거리다’ 하며 속으로 한껏 조롱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몇 년 동안 직장도, 직무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린 ‘금요일 친구’다. 야근으로 한 두시간 늦게 끝나는 걸 굳이 기다리거나 사랑니 2개를 빼서 퉁퉁 부은 한쪽 볼을 감싸 쥐고도 만나는 조금 유별난 금요일 만남이기도 하다. 가끔은 소중한 이 시간이 갑자기 사라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앞서기도 하는데, 지금은 일주일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친구에게 힘껏 감사해하기로 했다.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는 것, 그 어려운 일을 매주 해내는 금요일 친구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윤서
 
게으름을 다스리며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윤서(나도, 에세이스트)

오늘의 책

이 세계가 멸망할지라도, 우리는 함께 할 테니

사랑은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든다. 그래서일까. 최진영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는 사랑과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전쟁, 빈부격차 등 직면해야 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속에 남아 있는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2024년 올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집 중 하나.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켄 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 작가 켄 로우가 다시 한번 독보적인 13편의 단편소설로 돌아왔다. 다양한 주제와 강렬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중국의 당나라 시대부터 근미래의 우주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 기상천외하고 대담한 상상력을 선보인다. 강렬한 표제작 「은랑전」은 할리우드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

고객의 행동을 읽어라!

침대 회사 시몬스를 ‘침대를 빼고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이끈 김성준 부사장의 전략을 담았다. 고객의 행동을 관찰하고 심리를 유추해 트렌드를 만든 12가지 비밀 코드를 공개한다. 알리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오게 만드는 열광하는 브랜드의 비밀을 만나보자.

우리의 세계를 만든 유목민들의 역사

세계사에서 유목민은 야만인 혹은 미개한 종족으로 그려져 왔으며 역사 속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 책은 정착민 중심의 세계사에 가려져왔던 절반의 인류사를 들여다본다. 대륙을 방랑하며,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며, 문명과 문명 사이 연결고리가 된 유목민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