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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와 나의 공존, 에스파(aespa) 카리나
새로운 아이돌 세계관과 에스파 카리나
지금 카리나는 자신과 에스파가 향하는 ‘광야’가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자아를 가둔 곳이 아니라 펼쳐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하는 것만 같다. 아바타와 진짜 나의 공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2021.11.03)
SM엔터테인먼트에서 NCT 이후로 또 하나의 독특한, 그리고 기묘한 세계관을 하나 더 만들어냈다. ‘메타버스 걸그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타난 에스파를 통해 SM엔터테인먼트가 써 내려간 서사는 동화 같기도, 전설 같기도, 어느 때는 이도 저도 아닌 제3, 제4의 우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느껴진다.
“에스파와 아바타 ‘ae(아이)’가 조력자 ‘naevis(나비스)’의 도움으로 광야(KWANGYA)로 나아가 ‘Black Mamba(블랙 맘바)’와 맞서는 스토리를 흥미롭게 담아낸 가사가 인상적이다.”
에스파의 첫 미니앨범 <Savage>의 타이틀곡 ‘Savage’의 곡 소개는 네 명의 멤버가 한국의 음악방송 무대가 아니라 어떤 가상의 세계 안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물론, 약간의 웃음기와 함께.
하지만 화면에 카리나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관객들은 더 이상 웃을 수가 없다. 외모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가상의 존재인 자신의 ‘ae’보다 더 가상의 존재에 가까워 보이게 세팅된 에스파 멤버들 중에서도 카리나는 유독 아바타와 어울리는 외모를 갖고 있다. 그래서 카리나는 에스파라는 팀의 아이덴티티를 매우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존재다. 마치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신체 비율, 각 없이 아래로 매끄럽게 떨어지는 얼굴의 선. 단순히 “예쁘다”, “아이돌로서 완벽한 얼굴과 신체 비율을 갖췄다”와 같은 표현만으로는 불가능한 카리나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블랙 맘바’나 ‘나비스’ 등 현실적인 눈으로만 보자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에스파의 세계관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일차적인 요소다.
2021년 10월 현재, 청춘, 학창 시절, 공감, 성장통 등 평범한 일상 안에서의 한순간을 세계관이라는 이름 안에 넣는 보이그룹들은 이미 지루할 정도로 넘쳐난다. 또한 많은 걸그룹들은 세계관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몇 년 사이 각광받고 있는 파워풀한 이미지를 내세우거나, 정반대로 귀엽고 발랄한, 혹은 섹시하다는 표현으로 묶이는 성숙한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스파가 내세우는 스토리는 보이그룹과 걸그룹 할 것 없이 그 어떤 그룹의 콘셉트보다도 인위적이며, 인공적이고, 동화적이면서 저돌적이다. 카리나는 이 콘셉트 안에서 자연스러운 데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이 만들어진 에스파라는 팀을 대표하고, SM엔터테인먼트의 도전 정신과 체계적인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치를 대변한다.
“날 미화시키지 마!”
JTBC ‘아는 형님’에서 카리나가 던진 이 한 마디가 유독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데뷔 때부터 지금껏 인위적으로 조합된 ‘ae’와의 연결고리를 강조하며 아바타와 함께 존재했던 그가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 얘기하고, 학교에 지각했던 이유를 맞혀보라고 하면서 “죽은 동물을 묻어주고 가느라 그랬다”고 추측한 답변에 자기를 미화시키지 말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이 모습은 언뜻 카리나가 에스파의 세계관을 찢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반대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분명하고 또렷하게 카리나 개인의 자아가 튀어나오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존재로서의 아바타 ‘ae’는 오히려 힘을 얻는다. 다분히 인위적으로 조립된 세계 안에 존재하던 카리나와 에스파 멤버들이 세계관 바깥의 현실에서 자신들의 본명을 말하고, 성격을 얘기하고, 며칠 전에 있었던 재밌는 일들을 털어놓으며 ‘ae’ 또한 자신의 뜻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SM엔터테인먼트의 해설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에스파의 모든 멤버들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할 의지조차 없는 상태에서 노래가 좋다는 이유로 에스파를 접하는 대중에게도 카리나는 20대 여성의 힘찬 에너지를 보여주되 타고난 외모와 분위기를 토대로 에스파라는 팀이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앞에 서서 설명하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카리나는 자신과 에스파가 향하는 ‘광야’가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자아를 가둔 곳이 아니라 펼쳐놓을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하는 것만 같다. 아바타와 진짜 나의 공존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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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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