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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가끔은 좋은 일도 있다] 한 번에 두 가지 마음을 가질 순 없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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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와서 먹어보니 생강청은 할머니 말씀이 맞았다. 큰 걸로 두 병 샀어야 했다. 다음에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꼭 연락처를 따올 것이다. (2021.11.03)


친한 언니가 출산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도쿄에서 혼자 한 달을 지내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추측해보건대 ‘나는 큰 고생을 했으니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언니는 진짜로 떠났고 도쿄에서 시간을 보냈고 막판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아기 용품을 사서 돌아왔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어떤 부분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 삶을 잃은 것 같은 기분도, 결국 아이의 옷과 장난감만 잔뜩 사서 돌아오는 기분도...

강아지 흑당이과 살게 되고 친구들이 말했다. ‘이제 여행 못 가겠네?’ 나는 ‘왜?’ 하고 물었다. 정말 모르는 세계라서 그랬다. 그리고 하던 대로 종종 혼자 멀리 떠났다. 그리고 새로운 종류의 마음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것은 흑당이처럼 보드랍고 따끈한 아이가 ‘엄마가 왜 집에 안 오나’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 이역만리에서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다. 한 번에 두 가지의 마음을 가질 순 없다. 혼자 먼 곳으로 떠나서 만나게 되는 마음, 그리고 집에서 흑당이를 쓰다듬으며 만나는 마음. 두 마음 다 소중하지만, 앞에도 말했듯 동시에 가질 순 없다.

숙소를 검색하다 보면 어린아이와 여행하는 부모들의 후기를 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의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유아용 풀장이 있는가, 아이가 숙소를 편안하게 느끼는가, 아이가 잘 놀고 잘 잘 수 있는가, 아이에게 뭔가를 먹이기 편한가, 그쪽 위주인 것 같았다. 또한 뭘 잘 모르는 나는, 그럼 부모는 잘 쉴 수 있나? 꼭 그래야 하나? 부모의 행복은? 이런 생각을 몰래 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흐름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단지 내가 조금 늦게 알게 될 뿐.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 같이 행복해지고 싶다. 좋은 곳에 가고 싶다.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흑당이랑 바다도 보고, 노을도 보고, 사진도 찍고, 흑당이가 다른 강아지들이랑 줄 없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도 보고 싶었고, 특별한 간식도 주고 싶었고, 방글방글 웃는 모습도 보고 싶었고, 신나게 놀고 나서 밤에 기절하듯 잠든 모습도 보고 싶었다. 아, 후기 속의 부모가 나구나. 우리 가족은 태안의 한 애견펜션으로 떠났다. (막내 꼬마(고양이)는 같이 못 갔다. 미안해)



나는 중간에 들른 매송 휴게소에 홀딱 반했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원형 구조였는데 그래서 보통 휴게소에 내리자마자 느껴지는 ‘길게 압도적으로 사람이 바글바글한 느낌’이 없었다. 흑당이는 천천히 한 바퀴를 돌며 냄새를 맡더니 야외 테이블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적당한 크기의 풀밭이 있었고 테이블 간격이 넓었다. 심지어 푸드코트가 야외 테이블 앞에 있어서 밥을 가지고 와서 먹을 수 있었다. 이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한 손에 줄을 쥐고 다른 한 손에 알감자를 들고 어쩔 줄 모르던 시간은 이제 안녕. 나는 흑당이를 바라보며 구운 대파 우동을 먹었다. 갑자기 흑당이한테 인형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서 인형 뽑기 기계에 도전했다가 금방 5천원을 날렸다. 나는 씩씩거렸지만 그런 내 앞의 흑당이는 차분했다. 항상 그랬듯.

태안 로컬 마켓에 갔다. 주말에는 장이 서서 농민들이 직접 물건을 팔러 나온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박스 채로 물건을 나르고 있었다. 감이 왔다. 여긴 보통이 아니다. 반짝이는 붉은 사과에 B급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는데 가격은 3알에 4,500원이었다. 내 눈에는 특A 제수용인데. (먹어보니 꿀맛이었다) 신품종 고구마를 팔고 있는 여성 농민분과 눈이 마주쳤다. 네. 그거 신품종 살게요. 한 바퀴만 돌고 바로 들고 갈게요. 맞은편 좌판의 태양초 고춧가루도, 작두콩 차도, 감태도, 예사 물건이 아니었다. 런던의 버로우 마켓에 갔을 때보다 더 큰 흥분이 느껴졌다.




코너에 약도라지 대추 생강청을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좋은 거 다 넣으셨네. 마침 생강청이 필요해서 들여다보니 소심하게 영업을 하셨다. 이건 약이야. 내가 다 만든 거야. 나는 마음에 때가 타서 ‘공장에서 가져오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작은 병을 하나 달라고 했더니 할머니는 포장을 다 하시고는 “큰 거 가져가지” 하고 작게 말하셨다. 상술이라고 생각한 나는 웃으며 “작은 병 가져갈게요” 하고 말했다.

소심한 흑당이는 펜션에서 신나게 놀다가도 다른 강아지 친구들이 있으면 테라스 너머로 슬쩍 숨었다.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거 엄마랑 똑같네. 완전 엄마 아들이네. 나는 아무도 없는 해수욕장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보고 그 아래 모래 범벅이 된 흑당이를 보고 짙어지는 노을을 보다 돌아왔다. 그 시간 내내 흑당이는 가만히 내 곁에 있었다. 

엄마는 참 이기적이다. 그치. 널 위한다고 해놓고 다 나 좋은 것만 하잖아.

집에 와서 먹어보니 생강청은 할머니 말씀이 맞았다. 큰 걸로 두 병 샀어야 했다. 다음에 할머니를 다시 만난다면 꼭 연락처를 따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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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지은(작가, 음악가)

작가, 음악가. 책 <익숙한 새벽 세시>, 앨범 <3>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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