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꿈을 짊어진 ‘가짜 모범생’들에게
『가짜 모범생』 손현주 저자 인터뷰
자신만의 숨겨진 빛나는 재능을 꺼내 두려움 없이 그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이 진짜 모범생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짜의 ‘나’가 아닌 진짜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2021.10.15)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불량 가족 레시피』의 손현주 작가가 부모의 기대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가짜 모범생』을 출간했다. 학원가에서 오래 일하며 청소년들의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만큼, 손현주 작가의 이야기에는 소설보다 더한 청소년들의 현실과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녹아난다. 그가 들려주는 『가짜 모범생』 속 이야기는 충격적이지만, 그만큼 수많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꿈보다 학벌이 중요시되는 사회에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과연 오늘의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을까? ‘너를 위해서’라는 말에 짓눌려 살아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손현주 작가. 그와 나눈 위로의 대화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가짜 모범생』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제목에 많은 청소년이 공감하고, 또 호기심을 가질 것 같아요. 어떻게 『가짜 모범생』이라는 제목을 짓게 되셨나요? 제목에 담고자 하셨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제가 『가짜 모범생』을 기획한 건 오래전이었어요. 제 주변에 성적 때문에 엄마에게 린치를 당하고,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가짜의 삶을 사는 학생들을 보며 속이 많이 상했어요. 부모들의 이기심이 권리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의미도 있어요. 아이들은 속으론 싫어해도 겉으로는 순응하듯이 보이는데, 사실 병들어가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가짜 모범생’이 되어 혼란을 겪는 것 같아요. 가짜 모범생은 기존의 틀이 조금이라도 무너지면 순식간에 내면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또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감정이 어느새 분노 조절 장애로 연결되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어서 이런 제목을 짓게 되었어요.
건휘와 선휘는 분노 조절 장애, 우울증을 앓고 있기도 한데요, 이런 모습을 그릴 때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소설을 집필하며 가장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분노에는 원인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선휘와 건휘는 둘 다 과도한 교육 학대로 인해 자연스러운 관계의 정서를 배우지 못했어요. 억눌린 감정은 어느 순간 폭발하기 때문에 분노의 실체에 신경을 썼어요. 이유 없는 반항으로 보일까 봐 순간순간 캐릭터에 대한 의심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건휘가 사고를 친 뒤, 모범생인 건휘를 지키기 위해 죄를 선휘에게 떠넘기려는 엄마의 한마디가 조금은 섬뜩했습니다.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이 더 무서운 세상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에피소드를 구상하게 되셨나요?
요즘은 오히려 모범생들이 성적 스트레스로 인해 학폭에 연루되는 일이 종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또 부모에 의한 교육 학대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것에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요. 부모의 이기심이 과도한 학습을 불러일으키며 아이들의 정서를 왜곡시키고 있어요. 성적 압박에 의한 자살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우리 교육의 빨간 경고등이 켜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에피소드는 제가 소설을 쓰기 전에 학원 쪽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큰 무리는 없었어요.
소설 속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고 유능했던 여성이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못다 이룬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어요. 일련의 사건이 끝난 후, 엄마와 선휘가 아직 서먹하지만 서로 노력하기로 약속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궁금해요.
소설 속 엄마는 사회적인 틀로 보면 이상적인 부모라고 볼 수 있어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유기농 식품을 챙기고, 많은 독서량이나 영재 교육 등 아이를 위한 일에 헌신했죠. 그러나 그 일들이 오히려 쌍둥이 형제의 비극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자녀에 대한 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깨닫습니다. 엄마와 선휘 둘 다 상처만 남아 있어 이 둘을 잠시 떨어뜨린 후 다른 공간에서 회복의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어요. 좋지 않은 기억을 지우려면 잠시 상처의 공간을 벗어나 있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 많은 상징이 들어갔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광장에 묶인 개와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 어버이날에도 건네지 않았던 카네이션과 병실에서 건넨 카네이션…… 그중에서도 콜라와 토마토의 대비가 가장 눈에 띄었어요. 콜라와 토마토는 무엇을 상징하나요?
콜라는 당장의 목마름을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갈증이 생기잖아요. 반대로 토마토는 톡 쏘는 맛은 아니어도 오래도록 건강한 식재료로 몸을 살리는 음식이니까 계속 먹어도 문제가 없어요. 결국 콜라는 오래 갈 수 없는 꿈이고, 토마토는 시간이 지날수록 꿈이 확실해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렸다고 할까요.
선휘는 안식년 동안 세계를 여행하며 다시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겠지요? 선휘의 여행이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될지, 선휘는 앞으로 어떤 날을 만들어 나가게 될지, 작가님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아마 선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발자국을 찍으며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경험을 할 거예요. 낯선 사람에게 말도 걸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옭아맸던 강박을 벗어나지 않겠어요. 그러다 보면 지난날의 상처도 작게 보이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선휘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는 자신 안에 숨겨둔 빛나는 재능을 마음껏 발산하며 두려움 없이 자신의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가짜 모범생』을 읽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자신만의 숨겨진 빛나는 재능을 꺼내 두려움 없이 그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이 진짜 모범생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가짜의 ‘나’가 아닌 진짜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청소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손현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200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엄마의 알바』로 등단했고 2009년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당신의 남자』로 신인상을 받았다. 2010년 평사리문학대상을 수상하였으며, 제1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불량 가족 레시피』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헤라클레스를 훔치다』 『도로나 이별 사무실』 『빡빡머리 앤』(공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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