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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아직도 고민] 그냥 다 포기하고 싶어요 – 마지막 회
충동적인 생각이 많이 들고 공부에 집중할 수 없어요
지금은 내 노력을 공부보다 스스로를 돌봄에 기울여야 할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아프니까요. 고3이라서 안 된다고요? 앞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공부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삶은 아닙니다. 아픈 나를 돌보는 것보다 우선시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2021.09.28)
‘김지용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아직도 고민’ 마지막 회입니다. 그동안 고민을 보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
현재 고3인 학생입니다. 수능이 70일 남짓 남은 지금, 저는 무기력과 우울에 빠져있는 것 같아요. 게으르고 나태한 것처럼 보여서 제 자신이 한심하고 너무 나약해 보여요. 사실 저는 고1 말부터 정신과를 다니고 있고 약도 꾸준히 먹고 있어요. 덕분인지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순 있지만, 지금의 저는 아직도 너무 답답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남들을 보면 저보다 더 힘든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아프다고 징징대면 안 될 것 같아요.
요즘에는 자해를 충동적으로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고, 죽음에 대한 생각도 부쩍 늘고….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다 포기하고 싶고 제 자신이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없어지면 제 주변사람들은 슬퍼하겠지만 저는 자유로워질 것만 같아요.
공부에도 지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펜을 잡는 것조차 힘들고, 집중은 녕 글이 안 읽혀요. 독서실에 가서 10시간 이상 앉아있어도 집중하는 시간은 1시간이 되지 않아요. 딴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멍 때리고 공부하는 척을 반복해요. 결국 성적은 불안정하게 점점 떨어지고 있고 그것 때문에 저는 더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고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 같아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도움이 필요해요.
정말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아직 10대의 나이에 이렇게 긴 우울증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힘든 일인데, 모두가 힘들어하는 고3 수험 스트레스까지 동시에 겪게 되었으니까요. 다른 이의 고통과 비교할 것 없이, 당연히 누구에게나 무겁고 버거울 상황입니다.
현재의 문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실 텐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번 시험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는게 맞습니다. 지금은 우울증의 증상 때문에 공부가 될 수 없는 상황이고,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에 악영향만 미치고 있는 중이죠.
‘아니, 그래도 고3인데 어떻게 공부를 내려놔?’
‘남의 상황이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거 아냐? 네가 인생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이 사연을 주신 독자님에게도, 글을 보시는 분들께도 들 수 있어요. 실제로 진료실에서는 이런 말들을 종종 듣거든요.
위와 같은 생각이 드는 분들께 제가 한 번 반문해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어떤 답을 드려야 하는 걸까요? 공부와 치료 두 마리 토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더 힘내라고 말씀드려야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지금 그게 안 되고 있는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요? 공부에 집중 못하고 있는 무기력한 환자? 우울증을 빠르게 회복시키지 못하고 있는 의사? 양측 다 조금씩 더 노력하면 되는 걸까요?
분명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환자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도, 의사가 더 명의로 바뀌어도, 그 누구라도 지금 상황에선 공부와 치료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지금의 문제 원인이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질병이요. 지금까지도 제 말에 동의가 되지 않으신다면, 그건 아마도 ‘질병을 의지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당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환자 자신이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이 통제할 수 없게 변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질환을 본다. 따라서 병에 도덕적 실패라는 의미가 실리게 된다. 나는 아픈 동안 내가 다소 무책임한 사람인 것처럼 느꼈다. 물론 문제는 나나 다른 어떤 아픈 사람이 통제를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몸을 통제한다는 사회의 이상이 애초에 틀렸다는 것이 문제다.” (아서 프랭크)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를 겪고 겨우 살아난 다음 해, 고환암에 걸려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든 생각들을 정리한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평소에 건강을 잘 못 챙기고 살아온 의지가 약하고 무책임한 사람의 변명일까요? 이 책의 저자 아서 프랭크는 평소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건강을 챙기려 노력하며 살던 39세 대학 교수입니다. 질병은 그저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아픈 것은 실패와 잘못이 아닙니다.
펜을 잡는 것조차 힘들고 글이 안 읽히는 독자님의 모습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들입니다. 그것을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생각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 마음 속에, 치료받는 당사자들의 마음 속에도 들어 있기에 문제가 더 해결되지 못합니다.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이기에, 환자 분들의 마음은 더욱 더 힘들어집니다. 남들에 비해 별 것 아닌 힘듦에 무너져버리는, 아플 자격조차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이 더 확실하게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아픈 것은 네 탓이 아니라고요.
“나의 고통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비교될 수 없다. 내 고통은 그저 있는 그대로 목격될 수 있을 뿐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라고 아서 프랭크는 말합니다.
제가 오늘 드리는 글이 독자님에게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당연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미 노력하고 계시고요. 그런데 지금은 내 노력을 공부보다 스스로를 돌봄에 기울여야 할 시기입니다. 왜냐하면 아프니까요. 고3이라서 안 된다고요? 앞으로 삶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 공부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삶은 아닙니다. 아픈 나를 돌보는 것보다 우선시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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