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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짧은 소설] 애쓰지 않아도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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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2021.08.23)


엄마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친 겨울에 기도원에 들어갔다. 말이 기도원이지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 몸담기로 한 거였다.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아빠는 나를 데리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P시를 떠나서 할머니의 집이 있는 서울로 이사했다. 나는 연합고사를 치러 애써 합격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사한 지 이틀후의 일이었다.

친구가 없는 교실에 뚝 떨어지자 막막해졌다. 당장에 급식실에 누구랑 같이 가야 할지, 체육 시간에 누구와 함께 운동장에 나가야 할지 알 수 없어서였다. 짝이 된 아이에게 조심스레 급식을 누구와 먹으러 갈 거냐고 물어보니 사 분단 앞에 앉은 아이를 가리키며 저아이와 먹을 거라고 답했다. “친구가 없으면 나랑 갈래?” 같은 말을 기대했던 마음이 무안함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학기 초반에 친구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영영 소외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조급해졌다.

그때 내 뒤에 앉은 아이가 내게 이것저것을 묻더니 자기와 같이 급식실에 가자고 했다. 키가 크고 눈웃음이 예쁘고 딱 봐도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도 여러 아이들이 찾아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보며 인기 있는 애여서 나랑은 친해질 수 없으리라 짐작했는데. 그 애의 이름은 유나였다. 나는 유나와 유나의 중학생 때 친구 두 명과 함께 급식실에 가서 밥을 먹었다. “너 되게 귀엽다.” 나는 유나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렇게 인기 있는 애가 나에게 호감을 보이다니, 가슴이 떨리고 유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렇게 한 주가 끝날 무렵, 다른 애 두 명이 우리 그룹에 들어왔다. 매점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으면서 “그럼 나도 이제 너희 무리야?”라고 유나에게 말하던 애의 모습은 절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우리 무리야.” 유나의 승인을 받고 기뻐하던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른다.

유나는 그다음 주 선거에서 반장이 됐다. 알고 보니 유나는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는 그런 아이였다. 나는 공식적으로 유나의 무리에 속해 있으면서도 늘 불안했다. 내가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고 이런 인기 있는 아이들의 무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유나가 곧 알아차리지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유나의 무리에서 만난 선아가 나에게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깊은 마음속에서 유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다. 나는 유나가 좋아하는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들었고 유나가 즐겨 읽는 패션 잡지 『쎄씨』를 놓치지 않고 따라 읽었다. 언제부턴가 유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유나는 나의 어떤 모습에서 매력을 느낄까 궁금했다. 

유나와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달라 통학을 같이 할 수 없었다. 같은 무리에 속하기는 했지만 단둘이 만날 정도로 친하지는 않아서 학교 밖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고 있는데 유나가 내게 물었다. “거기 회원증 어떻게 만들어?” 나는 유나의 반응에 들떠서 도서관 회원으로 등록하고 싶다면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단둘이’ 도서관에 갔다. 회원증을 만든 뒤 유나에게 읽어볼 만한 책 몇 권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넌 다른 애들이랑 좀 다른 것 같아.” 도서관 옥상 벤치에서 유나가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내가 결국 유나에게 내 정체를 들켰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유나가 중학생 때 나를 알았다면 절대 자기 무리에 끼워주지 않았으리라는 예감이 맞아떨어진 기분이었다.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게 유나가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넌 좀 어른스러워. 항상 웃는데, 그게 가끔은 슬퍼보이더라.” 나는 대수롭지 않은 척 주제를 바꿔서 이야기했지만 유나의 그 말은 마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도 늘 그렇게 생각했었으니까, 엄마가 잔소리를 해서 힘들다, 엄마 밥이 맛없다 따위의 투정을 하는 애들을 보며 그 애들의 철없는 이야기가 얼마나 어린애 같은지 속으로 비웃은 적이 많았으니까. 난 엄마가 사이비에 빠져 다신 엄마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됐어.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나의 불행과 그것에 대해 토로하지 않고 견디는 내 모습이 내 어른스러움의 증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웃는 모습에서 슬픔이 보인다는 유나의 말을 나는 이후로도 내내 생각했다. 그 말이 마치 나만의 고유함과 특별함에 대한 유나의 인정처럼 느껴서였다. 그 부분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유나 앞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도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고 가벼워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사정을 친구들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가장 가까운 선아에게조차도 내가 왜 서울로 이사를 왔는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였고 그때의 나는 엄마가 곧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일 년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고 무리의 아이들과 찢어져 반을 배치받았다. 유일하게 같은 반이 된 건 유나였다. 유나는 다시 반장이 되었고 중학생 때 친했던 아이 두 명과 초등학생 때 친구 한 명, 그리고 나를 자기 무리로 확정했다. 우리는 다섯이었고 나는 나머지 수였다. 같은 무리라고는 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좀처럼 내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마치 내가 지쳐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는 듯 보였다. 유나는 그런 와중에도 나를 챙겼다. 유나와 나는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 옥상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시청각실에서 같이 영화를 보기도 했다. 2학년 한 학기가 지나면서 나는 엄마가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운 마음은 그 마음의 크기 그대로 분노로 변환되었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기 전에 우리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어떤 사복을 입어야 튀지 않고 촌스러워 보이지 않을지 고민하며 친구들과 이대 앞에 가서 티셔츠와 바지를 고르던 기억이 난다.

경주에 도착한 우리는 한 유스호스텔에 도착해서 열명씩 한 방에 들어갔다. 어떤 애가 팩 소주를 몇 개 가져와서 우리는 술을 돌려 마셨다. 팩 소주에 입을 대고 한 입씩 마시는 식이었다. 내 몸에는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없었고 나는 그전까지 내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날 마신 소주 몇 모금은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는 혼자 걷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 유나는 나를 부축해서 화장실에 데려갔고 토하는 내 등을 두드려줬다.

메스꺼움이 가시자 나는 어쩐지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감정이나 생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고 내 곁에 있는 유나에 대한 사랑이 쿵쿵거리는 내 심장 소리와 함께 피부로 느껴졌다. 평생 동안 나를 지배한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이 그 힘을 잃었고 알 수 없는 용기가 마음 깊은 곳에서 부터 피어올랐다. 내가 늘 꿈꾸던 내 모습, 우물쭈물 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용기 있는 내 모습이 겨우 소주 몇 모금에 이렇게 쉽게 주어지는 것이었나. 

“유나야.”

나는 비상구 계단에 앉아서 곁에 앉은 유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유나는 나를 받아줬지만 그 상황을 달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작은 배에 올라탄 것처럼 어지러우면서도 나는 유나가 나와 단둘이 있는 상황을 견디고 있다고 추측했다. 그런 유나가 내게 바라는 건 뭘까. 나는 고개를 들어서 유나의 얼굴을 봤다. 공기가 꼭 물처럼 일렁이고 있었고 유나의 얼굴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넌 내가 왜 서울로 왔는지 알아?”

“모르지. 네가 얘기한 적 없잖아.”

“선아에게도 하지 않은 얘기야….”

내 말에 유나가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나는 유나에게 내가 숨겼던 내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어째서 그 종교단체에 빠졌는지, 어떻게 서서히 나로부터 멀어졌는지, 결국 어떻게 우리를 떠났는지, 할머니 집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올 수밖에 없었을 때 내 상태가 어떠했는지, 그 사실을 숨기고 지낸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유나는 내 말 중간중간에 내 마음에 공감해주는 제스처를 했고 나는 내 비밀을 공유한 유나와 예전과는 다른 더 특별한 관계에 진입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다른 애들에게는 말하지 마.”

“당연하지. 이건 너랑 나만 아는 비밀이야.”

유나는 그렇게 말하고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간 고생 많았겠다. 그 마음 다 숨기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그런 말을 하는 유나를 보며 나는 유나에게 인정받은 기분을 느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돌아봤다. 나는 유나의 공감만을 바라서 그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유나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유나가 다른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라서 비밀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유나와의 관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3학년이 되어서 유나와 나는 다른 반이 되었고 다른 애들이랑 가끔 보는 것을 제외하고는 둘이 만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대학의 같은 단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지나가다 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됐다. 고등학생 때는 그렇게 특별해 보이던 유나가 대학 캠퍼스에서 창백한 얼굴로 혼자 다니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알던 유나가 얼마나 진짜 유나의 모습에 가까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유나를 유나라는 사람으로 좋아했던 건지, 인기 있는 아이여서 선망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유나에게서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봤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돋보이고, 무엇보다도 힘이 있는 존재, 누군가에게 끌려가거나 수동적인 위치에 처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 애의 힘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알고 싶었다. 유나는 내게서 무엇을 봤던 걸까.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먼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었고 그렇게 친절했으며 한편으로는 절대로 내가 자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했던 걸까. 나는 유나에게 언제나 벽을 느꼈고, 가장 가까워졌다고 믿었을 때조차도 내가 더 가까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그 애의 바람을 느꼈다.

유나에 대한 사랑은 그래서 나를 상처 입혔다. 대학에 들어가자 유나는 더는 우리 그룹의 모임에도 참석하지않았다. 나는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난 유나에게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차가운 분노를 느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즈음 아빠는 엄마에게 소송을 걸어 이혼을 했다. 엄마는 종교 공동체에서 빠져나올 생각이 없었고 나는 엄마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오기를 희망했던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 이혼 판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등학교 친구 선아를 만나서 처음으로 엄마 이야기를 했다. 그간 그런 이야기를 숨겼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고 서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이야기했지만 선아는 내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나는 선아의 표정을 보며 그 애가 이미 이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를 털어놓은 유일한 사람, 유나를 떠올렸다.

“다 아는 얘기야?” 

내 물음에 선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너한테 물을 수는 없었어. 소문을 들은 것만으로도 너에게 미안했고. 그런데….” 

선아는 빨대로 커피를 젓더니 말을 이었다.

“넌 나한테 하지도 않은 말을 왜 유나한테 했어?” 

선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선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유나를 많이 좋아했던 건 알았어. 유나가 너한테 더 다가갔으면 넌 나랑 놀지도 않았을 거야.”

“아니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렇게 답하면서도 나는 아마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맞아. 그때의 나는 누구보다도 유나에게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었어.

“그때 애들은 네 어머니 이야기 다 알고 있었어. 네가 그 사실을 아직까지 몰랐다는 게 놀라울 뿐이야. 그런 애한테 네가 마음 준 거 나한테도 상처였어.”

“그런 애?”

“그래. 걔는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친절 했지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어. 걔는 진짜 우정을 나눌 능력이 없었지. 그 어린애가 가면을 쓰고 자기에 관한 모든 건 다 숨기면서. 생각해보면 소름 끼쳐.” 

나는 선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선아처럼 유나를 끔찍하게만 여길 수가 없었다. 선아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잊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 짝이었던 애가 조심스레 내게 우리 엄마에 대해 물은 기억이었다. 

“너희 어머니가 종교단체에서 사셔?” 그 애는 분명 내게 그렇게 물었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그렇게 답하고 자습을 했다. 당연히 유나가 소문을 퍼뜨렸다는 걸 알았어야 했지만 나는 그때 유나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유나가 우리만의 비밀을 이야깃거리로 만들 거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억을 떠올리고 나서야 나는 오래전에 흘려야 했던 눈물을 흘렸다.


나는 내게 손을 흔드는 유나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 맞은편에서 유나의 모습이 보이면 유나가 나를 이미보고 있는 상황이어도 등을 돌려서 다른 길로 갔다. 유나도 유나였지만 그런 유나를 진심으로 믿고 좋아했던, 더 가까워질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과거의 나를 용서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넌 날 우습게 봤어. 네가 나보다 잘났으면 얼마나 더 잘났는데 사람 마음 가지고 놀아? 유나에게 느꼈던 선망은 내 오래된 열등감의 다른 말이었다. 나는 유나를 증오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유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었다고 했다. 그후로도 나는 가끔 동창들을 통해 유나의 소식을 들었다. 일을 열심히 한다고, 고등학교 동창들과는 잘 만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광고회사에 들어가서 이십대 내내 일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회사를 그만둬야 했다.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아 무리하면서 육아와 병행했지만 코로나가 번지고 아이가 대면 수업을 할 수 없게 되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퇴사할 즈음 이사를 하면서 책장을 정리하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발견했다. 책 커버를 열자 그곳에 오래 잊고 있었던 유나의 글씨가 보였다. ‘생일을 축하해. 우리 더 친하게 지내자. 네가 내 친구여서 기쁘고 고마워.’

나는 유나의 글씨를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내가 이미 오래전에 유나에 대한 분노와 유나에게 받은 상처를 버렸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시절 유나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유나의 말을 단 한 번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었다. 유나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유나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러워질수가 없었다. 나는 유나가 나를 더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보니 먼저 다가온 쪽은 언제나 유나였다. 친구가 되자고 했던 것도, 도서관에 가자고 했던 것도, 좋아한다고, 더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표현한 것도 언제나 유나였다.

유나가 무슨 마음으로 내 비밀을 퍼뜨렸는지 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유나가 겉과 속이 달라서, 교활해서, 내게 상처를 주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유나가 내게 악감정을 지녔었다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과 증오를, 선망과 열등감을, 순간과 영원을 얼마든지 뒤바꿔 느끼곤 했으니까. 심장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상처 주고 싶다는 마음이 모순처럼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영원히 용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유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그게 어떤 모습이든 늘 과하고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제 애쓰지 않아도 유나를 별다른 감정 없이 기억할 수 있다. 아마 영원히 그 애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알고 싶다. 유나는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 애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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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은영(소설가)

소설가. 장편 소설 『밝은 밤』과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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