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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무해한 말은 가능할까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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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나에게도 꼭 필요한 여백이다. 실수하고 성장할 기회를 만드는 일. 그 일을 함께하기 위해 오늘도 불가능한 주제로 글을 쓴다. (2021.08.02)

언스플래쉬

무해한 말이 가능한지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답할 거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말하는 주체인 나라는 인간만 돌아봐도 알 수 있는 진실이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 만큼 상처 주며 살아왔다. 나를 미워하는 누군가를 미워하느라 밤을 새운 적도 있고,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를 미워한 적도 있다. 나는 매일 쓰레기를 배출한다. 매일 피우고 버리는 담배꽁초들, 냉동실에 잔뜩 쌓아둔 플라스틱 용기의 도시락, 하루 세 잔의 커피를 마시느라 남는 커피 캡슐들. 몸을 씻는 데 사용하는 샴푸와 치약, 몸에 걸칠 옷을 세탁하는 데 쓰는 세제, 이동하며 배출하는 자동차의 매연. 이런 부분을 하나하나 떠올리면, 애초에 지구를 오염시키고 상처 주며 살아가는 나에게 무해함은 가당치 않은 단어로 느껴진다.

말도 마찬가지다. 나는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사용한다. 말을 하거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몸을 가졌다. 비장애인 중심 세계에서 치우친 방식으로 〈무해한 말들〉이라는 연재를 하는 건, 처음부터 한계와 모순을 끌어안는 일이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말 속에 스스로 갇혀버릴 거였다.

그래도 힘껏 무해해지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줄이고 윤리적 식탁을 고민하듯, 말 한 마디에도 신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잣대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때 나는 누군가 잘못된 표현을 쓰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차별적이네요.” 그건 ‘당신은 차별주의자’라고 도장 찍는 행위와 같았다. 지적을 들은 상대는 입을 꾹 다물거나 아예 내 앞에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길 원한 건 아니었는데, 그게 내게 주어진 중요한 실천이라고 믿었던 시기도 있었다.

내가 아는 유해한 언어 구사자를 꼽으라면, 엄마를 빼놓을 수 없다. 50대 중반인 엄마는 대부분의 대화 주어를 성별로 쓰는 사람이다. 엄마의 말 80퍼센트는 “그 여자는~, 그 남자가~”로 시작한다. 가끔 나를 만나면 “여자는 화장을 잘해야 예쁨 받아. 남자는 시각적인 동물이잖아”처럼, 오래된 농담 같은 말을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한다. 그때마다 엄마를 앉혀놓고 잔소리하거나 성교육 피피티를 띄워서 세상에 여성과 남성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성별이 존재한다고 강의했다. 엄마는 “어머, 그렇구나”라며 놀라워하다가도, 익숙한 주어를 포기하진 못한다. 50여 년간 입에 붙은 습관을 한 번에 떼긴 어려운 거다. 가끔은 “여자는”이라고 말한 뒤에 멈칫하고, “여자라는 표현 써서 너 또 뭐라고 할 거지? 그래도 나 좀 쓰게 해줘”라고 고집부리거나, “그래, 그 사람은……”으로 고치기도 한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탈학교 청소년, 비혼, 비출산 등)과 내가 쓰는 글을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해묵은 주어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나는 쉽게 엄마를 차별주의자라고 판단할 수 없다. (눈치챘겠지만, ‘엄마’라는 호칭도 가족주의적이며 성별 이분법적인 표현이라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시민단체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었을 때, 첫 시간에 평등 약속문을 공유했다. 이 자리는 서로의 글과 삶을 나누는 곳이니까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인종, 지역, 학벌, 나이 등 다양한 기준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긴 약속문이었다. 차별적 언어를 경계하는 구체적인 조항의 1부터 10까지 함께 읽은 뒤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매력적인 타투를 팔에 새긴 케이가 말했다. “제가 이 모임을 신청할 때, 담당자분이 제 이름으로 저를 남성으로 짐작하신 것 같았어요. ‘모임에 참여하는 전부가 여성인데, 남성이 계시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오랜만에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재미있었어요. 사실 저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거든요.” 케이의 말에는 비난보다는 상대가 충분히 실수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다. 케이는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런 존재입니다.’

마침 케이 옆에 있던 담당자는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앗, 제가 또 실수를 저질렀네요. 경계하려고 노력하는데, 자꾸 실수해요. 죄송합니다. 말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배울 기회를 얻었다. 자기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며 고백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대를 단정 짓지 않는 케이의 솔직한 표현과 바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던 담당자의 모습. 그때 우리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나아질 기회를 가졌다. 그 모습이 유해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덜 유해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무해한 말이라는 불가능한 도착지로 함께 가는 여정. 어쩌면 우리는 마주침 속에서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을 안고, 순간순간 덜 유해해지기 위해 분투하는 중일지 모른다.

나는 매일 실수하며 살아간다. 내가 그나마 덜 실수하게 된 건, 내게 주어진 자원 덕분이다. 실수를 그때그때 알려주던 관계와 차별적 표현이 무엇인지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과 여유, 그런 것들이 나에게 덜 유해한 언어를 알려주었다. 일종의 특권에서 온 올바름의 기준을 기억하며, 누구나 실수하면서 나아질 기회를 마련하는 일이 요즘의 화두이다. 이것은 아직 모르는 게 많은 나에게도 꼭 필요한 여백이다. 실수하고 성장할 기회를 만드는 일. 그 일을 함께하기 위해 오늘도 불가능한 주제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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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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