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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강단에 설 자격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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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심호흡하고 입을 뗄 거다.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나를 이 자리에 세웠습니다. 이제 제가 말하겠습니다.”(2021.07.19)

언스플래쉬

한 도서관에서 교사 글쓰기 연수가 계획된 지난여름, 나는 20분 전에 강연장에 도착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식의 순서가 정해져 있었는데, 사회자가 오늘 강연의 취지를 말하고, 그다음에 도서관장의 축사가 시작되었다. 도서관장으로 보이는 분은 정장을 입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분은 굵은 목소리로 선생님들의 연수가 무사히 진행되길 바란다면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5분이 지났을까, 그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 이렇게 젊은 여성이 오늘 선생님들에게 교육을 하는군요. 생각보다 더 어려서 놀랐네요.” 그 말에 나는 앉은 자리에서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제가 생각보다 그렇게 어리진 않습니다.” 그러자 그는 당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하네요.”

마음이 복잡했다. 그가 나를 보던 눈빛, 경력 많은 선생님들이 어린 내 이야기를 다섯 시간이나 들어야 한다는 걸 상기하던 뉘앙스. 이 사회에서 나이와 성별은 너무 쉽게 겉모습으로 판단되고, 그게 신뢰와 권위를 좌우한다는 걸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익혀왔다. 바로 대꾸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후회됐다. ‘그렇게 어리진 않다’고 말하기보다, “네. 저는 어립니다. 그래서 문제 될 게 있나요?”라고 말했다면 좋았을걸.

한번은 독서모임 단체에서 모임을 진행하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린 적이 있다. 그날은 비장애인 중심 세계에서 장애인이 어떤 차별을 겪는지 책을 통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는데,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이 나에게 공격적으로 물었다. “장애인을 왜 차별하면 안 되죠? 차별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저는 인도 사람들이 싫어요. 저한테 김치 냄새 난다고 누가 차별해도 저는 그 차별을 존중할 거예요.” “인권 같은 추상적인 얘기 말고, 정량적으로 국가에 왜 그들이 필요한지 이유를 얘기해보세요.” 나는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 막연함과 슬픔과 분노를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기억을 소수에게만 보이도록 SNS에 기록했는데, 오랫동안 인권 활동을 한 선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런 말 조심스럽지만, 아마 승은이 젊은 여성으로 보여서 더 그랬을 가능성이 높아요. 많은 여성이 리더가 되거나 강단에 서면 그런 식으로 위협을 당하고, 대놓고 무시당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그들의 반응 자체가 차별을 어떻게 체화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네요.”

그간 내가 경험한 상황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페미니즘 강연을 하는 도중에 한숨과 욕을 뱉으며 바닥으로 펜을 던져버리던 누군가의 모습.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푹 가리고 질의응답 시간에 “남자와 여자 편 가르기를 하지 말라”고 ‘조언’하던 사람. 그는 강연 중간중간 내 얼굴을 사진으로 찍었고, 한동안 나는 내 신상을 걱정했다. 강연 도중에 “저는 여성이 아름다워서 사랑해요. 작가님은 사랑을 모르는군요”라고 말하더니 끝나자마자 의자를 발로 뻥 차고 나가던 사람. 그때 나는 조금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주위 사람들은 내가 집에 가는 길이 위험할 수 있다며 배웅해주었다. 기독교 대학에 페미니즘 강연을 갔을 땐, 수십 명의 학생과 몇 명의 교수가 뒤에 서서 ‘남녀 분열 조장하는 페미니즘 반대’ ‘자유 섹스 허락하는 페미니즘 반대’ 같은 피켓을 들고, 자꾸 내 말을 끊었던 장면도 떠오른다. 그 대학에서 강연을 한 뒤에, 누군가 대학 대나무 숲에 이런 글을 남겼다. ‘홍승은 씨는 학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강사 자격이 안 되는데, 왜 그런 사람을 두 번이나 학교로 초대한 겁니까?’ 어느 중학교에서는 강연을 며칠 앞두고 교장 선생님이 내가 임신 중지 경험을 공개적으로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학생들에게 안 좋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인원을 소수로 조정하는 일도 있었다.

나이, 학벌, 성별, 내 경험. 그 모든 게 당신은 강단에 설 자격이 없다고 소리친다. 그 소리가 내 몸과 삶을 둘러싸는 순간은 아무리 반복돼도 괜찮아지지 않는다. 이런 모든 위협이 내가 강단에 서기 전에도 익숙하게 경험한 차별이라는 것도 안다. 마이크를 잡지 않아도, 이미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재단되고 조각조각 해부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지역에서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한 분이 말했다. “저는 요즘 일을 쉬고 있어요. 반감을 가진 학생들에게 교육하다 보니까 폭력적인 언행을 자주 접하는데, 그럴 때마다 상처가 생기더라고요. 무대에 서기가 너무 무서워서 몇 달간 쉴 예정이에요. 한번은 한 학생이 비꼬면서 말하더라고요. 선생님, 키가 너무 작아서 교탁에 가려져서 안 보이는데요? 그때 저는 물었어요. 이 교탁이 누구의 신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건 줄 아나요? 그 기준을 바꾸는 일이 제가 하는 일이에요.”

나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생각을 했다. 강연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산업재해가 인정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온갖 공격에도 불구하고 다른 질문을 당당하게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아마 앞으로도 나는 예상치 못한 위험에 노출될 거다. 당신이 뭔데 마이크를 잡느냐는 질타를 들을 거다. 그때 나는, 나를 포함해 그곳에서 함께 떨고 있을 누군가를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손에 땀이 흥건해져도 마이크를 꽉 잡고, 그들이 일컫는 ‘불완전한 자격’으로 강단에 올라간다. 크게 심호흡하고 입을 뗄 거다. “당신이 나를 보는 시선이 나를 이 자리에 세웠습니다. 이제 제가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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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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