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짓는 사람] 김정옥 어떤책 대표 “좋은 사람의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자신이 보내고 있는 일상이 글이 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어떤 글을 쓸까?보다 어떤 일상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2021.07.29)
“머리로 쓸 수 있는 글보다는 살면서 쓰여지는 이야기.” 김정옥 어떤책 대표는 세상에 없었던 책, 세상이 모르는 미래의 작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만든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할 때는 편집자만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오랫동안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됐다.
“원래 꿈은 평론가였어요. 대중음악이나 대중문화 같은. 그런데 평론을 하려면 대학원에 가야 하는 분위기더라고요. 대학원은 가기 싫고 포털이나 대형서점 면접도 보다가 결국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첫 출판사에서는 어린이교양 팀에 있었는데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에세이, 인문서 등을 기획했어요.”
북이십일, 공간사, 알에이치코리아 등에서 일하다 1인출판사를 열었을 때는 편집자 경력 13년차였다. 창업을 한 계기는 특별할 게 없었다. 이직을 하려고 면접을 보는데 ‘여기 꼭 됐으면 좋겠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이런 마음으로 어디를 가서 열심히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싶었는데, 친한 언니가 “너라면 출판사를 차려도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 짧은 한 마디에 창업을 결심한 김정옥 대표는 정희진 여성학자의 수업을 듣다가 ‘어떤 사람’이라는 말이 귀에 박혔고 우리를 사로잡을 어떤 사람이 쓰는 책을 만드는 출판사 ‘어떤책’을 열었다.
“기획한 책을 못 내게 될 때도 그렇고, 제가 막 오래 참고 그러는 편은 아니라서요. (웃음) 여름에 퇴사를 하고 늦가을에 출판사 신고를 했으니까 고민을 길게 하진 않은 것 같아요. 2015년이었을 거예요. 그 전까지는 아이 엄마니까 항상 출퇴근할 때 뛰듯이 걸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난 다음에는 그냥 걷게 됐어요. 아이가 1학년 때였는데 교문을 들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볼 수 있어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김정옥 대표는 스스로를 두고 ‘하고 싶으면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1년에 반드시 최소 몇 권을 내야 한다는 목표도 세운 적이 없다. 처음 잡은 일정에 맞추면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원고를 받아 최선의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책은 투고가 책이 된 비율이 꽤 높은 편에 속한다. 2016년 3월 첫 책을 출간하고 지난 6년간 18권의 책을 펴냈는데, 그 중 9권이 저자들의 첫 책이다.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작가도 있고 지인을 통해 건네 받은 원고도 있지만 저자가 직접 투고한 원고가 적지 않다. 이미 베스트셀러를 썼던 유지혜 작가도 자신의 세 번째 에세이 『쉬운 천국』을 ‘어떤책’에 제안했다.
“책을 계약할 때는 이 사람만의 고유한 서사가 있는지를 중요하게 살펴요. 이미 나와 있는 책들과 비슷한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원고는 안 보는 것 같고요. 평소에 책을 좋아하고 글을 써온 사람인가도 중요하고, 오랜 시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졌는지도 중요한 포인트가 돼요. 일단 편의성에 있어서도 글을 다듬어나갈 때,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요. 이를 테면 여기서 문단을 나누지 않는 이유 등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죠. 좋은 문장에 대한 공감이 있으면 작업하기가 수월해요.”
가장 최근에 출간된 수미 작가의 첫 책 『애매한 재능』은 어떤책에서 두 권의 책(『나의 두 사람』,『작별 인사는 아직이에요』)을 출간한 김달님 작가를 통해 읽게 된 원고다.
“지방도시에 사는 기혼 유자녀 여성이자 15년 차 작가지망생인 수미 작가의 첫 에세이에요. 제목에 공감하는 독자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원래는 ‘자조의 왕’ 같은 제목도 생각했는데, ‘애매한 재능’이라는 주제어를 제시하면 독자들이 이 주제에 맞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책 안의 질서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꿈과 재능에 관한 웃픈 이야기들이 담긴 책인데, 작가님이 첫 책이다 보니 맨날 리뷰를 검색해서 제게 알려주세요. 뭉클한 리뷰를 읽을 때면 함께 기뻐하고요. 좋은 사람의 좋은 책을 내고 싶다는 평소 바람을 담은 책이에요.”
우편으로 받는 독자 엽서와 양장본이 아닌데도 모든 책에 달려 있는 가름끈은 어떤책의 상징과도 같다. 어떤책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국내 저자의 에세이.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그냥 내가 잘 만들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단다.
“이해의 계기가 되는 에세이를 좋아해요. 에세이는 글의 내용이 중요한데, 글의 내용은 글을 쓰지 않는 시간에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보내고 있는 일상이 글이 되는 장르이기 때문에 어떤 글을 쓸까?보다 어떤 일상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같은 이야기를 다른 문장으로 전달받는 것보다 ‘이 사람’이 썼기 때문에 달라지는 글, 세상을 긍정하게 되는 글. 김정옥 대표가 만들고 싶은 에세이의 특징이다.
“독자가 일단 책을 읽었을 때, 이 작가에게 호감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비단 책만이 아닐 텐데요. 책을 읽으면 어쨌든 그 사람을 알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큰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저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이 책을 쓴 작가를 좋아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은 사람의 책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책 속의 모습과 책 밖의 모습이 다른 사람의 글은 경계하는 편이에요.”
2018년에 출간한 곽미성 작가의 『외로워서 배고픈 사람들의 식탁』은 김정옥 대표가 각별히 좋아하는 책 중 하나다. 동네서점에서 이 책을 주문하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라고 꼭 말을 보탠다.
“르포 느낌이 나는 에세이인데요. 취재와 데이터에 기반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곽미성 작가님의 글 스타일이 정말 좋아요. 또, 제가 늘 프랑스나 파리 라는 키워드에 취약한 편인데, 곽미성 작가님이 프랑스 파리에 있다는 사실이 가끔 큰 위안이 돼요.”
어떤책에서 만든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김지수 기자의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이다. <보그>의 피처 디렉터이자, 아직 단행본 출간 경험이 없는 김지수 기자를 2006년에 처음 만났고, 같이 책을 내보자고 으쌰으쌰 했지만, 두 사람의 책은 결국 12년 만에 나오게 됐다. 오래 사적인 관계로 지내던 사이라 책이 잘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유명 작가의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독자라면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것 같아요.”
김정옥 대표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는 ‘함께 고민하고 애를 쓰는 저자’다. 책을 쓰는 동안에는 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하는 편집자로서의 욕심이 있다.
“편집자 경력이 올해로 벌써 19년이 됐는데, ‘내가 만든 책’이라고 꼽고 싶은 책은 어떤책에서 나온 책이 대부분이더라고요. 출판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고민하실 텐데, 다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퇴사하고 독립해서 만든 책은 훨씬 다를 수 있거든요. 적어도 회사에서는 만들지 못한 책을 내가 내고 싶으면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자신감을 갖고 창업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정옥 대표는 “책을 만드는 일이 직업인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1인출판사 느낌이 나도록 임프린트를 만드는 출판사도 많은 요즘, 출판계는 언제나 불황이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받은 혜택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품고 있는 고민은 ‘책을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이 낙관적인 태도가 빚어낸, 그리고 또 빚어낼 책들은 얼마나 또 빛이 날까? 독자들은 기다린다.
『그림쇼핑』 이규현 지음 / 공간사
학교 다닐 때 미술 관련 책들을 좋아했다. 오주석, 손철주, 이주헌 등 한참 우리나라 출판계에 좋은 필자들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 『그림쇼핑』을 기획 편집하며 직업에 대한 새롭게 인식했다. 편집자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현하는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그전까지는 계속 직업을 바꿔 보려고 애썼던 것 같다.
『나의 두 사람』 김달님 지음 / 어떤책
어떤책이라는 출판사 이름을 많이 알려 준 책. 다른 책이 아니라 바로 이 책으로 알리게 돼서 기쁘고 다행이라고 두고두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강은경 지음 / 어떤책
어떤책이 펴내는 책들은 작가님들의 긴 시간을 담은 경우가 많다. 작가님들이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길 때도 많고. 나는 그런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인데, 작가님들이 쓴 모든 글이 책에 실리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히 나만 아는 이야기들이 생긴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가님들과 공적이지만 사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관계의 시작이자 상징과도 같은 책이다.
『여행 말고 한달살기』 김은덕, 백종민 지음 / 어떤책
오래 계획하고 오래 쓰고 오래 편집한 책. 어쩌다 책을 들춰볼 일이 있을 때면, 작가님들과 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진짜 책 잘 만들었다고. 서로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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