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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서로의 떨림에 접속하기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7회
서로의 품에서 숨지 않고 말할 힘을 무럭무럭 기르던 ‘우리’를 떠올리며, 나는 바란다. 당신의 처음과 떨림에 기꺼이 접속하고 싶다고. (2021.06.21)
몇 해 전, 동네 책방 이후북스에서 열린 북토크에 참여했다. 소수의 인원이 작가와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공지가 뜨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 김은화 작가를 꼭 만나고 싶었다.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보라색 표지의 책은 엄마의 생애를 끈덕지게 인터뷰하며 기록한 책이다. 엄마의 슬픔과 힘이 느껴지는 책을 읽으며, 엄마를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딸의 심정에 공감했다. 엄마를 다양하게 보는 법을 작가에게 배우고 싶었다.
노란 전구로 가득 찬 책방에 들어가자 이후북스의 부농, 상냥 사장님이 반겨주었다. 곧 작가님이 들어왔다. 검정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미소 짓던 첫인상을 기억한다. 작가는 수줍게 인사를 건네고 수첩을 펼쳤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공간을 채웠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작가가 말했다. “책이 나온 뒤에 오늘이 첫 북토크 자리예요.” 처음. 그 말에 문득 내 처음들이 떠올랐다. 처음처럼 긴장하며 마이크를 잡았던 모든 순간이.
나에게 첫 강연의 기억은 두 가지 버전으로 남아 있다. 2016년, 페미니즘 칼럼을 연재하던 시기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에는 A4 네 장 분량의 편지가 적혀 있었다. 기독교 대학의 차별적인 문화가 갑갑해서 여러 활동을 도모하고 있다는 내용의 마지막은 이랬다. “부디 변방과도 같은 포항에 오셔서 많은 고민을 갖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청년들에게 귀한 고민거리들을 듬뿍 안겨주시길 바라요.” 평소였다면 ‘내가 뭐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글을 읽는 동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며칠 동안 함께 나눌 이야기를 정리하고 달달 외운 뒤에 포항으로 출발했다. 도착한 장소는 예상보다 훨씬 큰 강연장이었고, 학생들 포함 지역 활동가 예순 명이 앉아있었다. 청심환을 먹고 쭈뼛쭈뼛 무대에 올라가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 10분은 인사도 제대로 못 한 채 기계처럼 준비한 말을 읊었다. 어느 순간 맥이 풀려 다리가 휘청거렸다. “사실, 제가 이런 자리가 처음이어서요. 너무 떨려서 청심환을 두 개 먹고 왔는데도 떨려요.” 긴장이 차올라 정말 기절할 것 같아서 솔직하게 뱉어버린 내 고백에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한결 편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채웠다. 나중에 함께 간 우주에게 들어보니, 내가 마이크를 가슴에 꼭 붙이고 있느라 티셔츠가 올라가서 배가 노출된 상태로 10분을 얘기했다고 했다. 그 모습에 자기도 덩달아 긴장했는데, 내가 떨린다고 솔직하게 말한 뒤로 분위기가 편안해졌다고. 그날 나는 굳이 의연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으며, 떨림을 그대로 드러내도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2017년 4월, 첫 책이 나오고 얼마 뒤에 서울의 한 도서관에서 전화가 왔다. 페미니즘 강연을 일주일 앞두고 강연자에게 갑자기 사고가 생겨 급하게 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신청은 진작 마감됐는데, 내가 결정하면 신청한 분들에게 변경 내용을 메시지로 보낸다고 했다. 그 강사는 나도 꼭 만나고 싶었던 슈퍼스타 작가였는데, 그의 대타로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장 거절하고 싶었다. 그러나 강연료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알았다고 답했다. 이렇게 큰돈을 준다고요? 얼떨결에 스타 강사의 대타가 된 나는 일주일 내내 가슴 졸였다. 비교되면 어떡하지? 무턱대고 승낙한 나를 질책하면서 강연을 준비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원래 마흔 명이 진작 꽉 찼는데, 나로 바뀐 뒤로 사람들이 취소하면서 소수의 인원만 남은 거였다. 두 시간 내내 ‘비교되면 어떡하지, 실망하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식은땀 흘리며 애써 자신감을 끌어올리던 시간이 지나갔다. 강연이 끝나고 자리를 정리하는데, 앉아 있던 분들이 다가오더니 책을 내밀었다. “작가님 책이 제 페미니즘 입문서였어요. 너무 잘 들었습니다.” 잔뜩 긴장한 어깨에 힘이 풀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강연이 끝난 밤, 나는 친구들과 기념 파티를 열었다. “한 명이라도 잘 들어줬다면 그걸로 충분해. 나 정말 수고했다!”
내 ‘처음’의 기억들이 스쳐 가는 동안, 김은화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작가는 왜 책을 내게 되었는지, 집필 과정에서 겪은 일화 등을 차분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눈을 바라보았다. 가끔 멈칫하며 당황하는 작가에게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작가님 충분히 좋아요!” 같은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2부에서는 각자에게 엄마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가며 나눴다. 나는 엄마 이야기를 하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모두가 내 눈물이 부끄럽지 않도록 품어주었다. 작가에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고 꾸벅 감사 인사를 전하고 책방을 나섰다. 밤바람이 상쾌했다. 내 처음처럼, 작가에게도 그날이 긴장과 설렘,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남길 바랐다.
얼마 뒤 내가 두 번째 단행본을 낼 무렵, 출판사에서 사전 서평단을 모집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서평단 지원서를 쭉 읽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김은화 작가였다. ‘제가 처음 북토크를 했을 때, 승은 님은 따뜻한 눈으로 저를 바라봐주었어요. 이번에는 제가 승은 님의 떨림을 응원하고 싶어요.’ 내가 계속 말할 수 있었던 건, 내 약하고 소심한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들 덕분이었다. 서로의 품에서 숨지 않고 말할 힘을 무럭무럭 기르던 ‘우리’를 떠올리며, 나는 바란다. 당신의 처음과 떨림에 기꺼이 접속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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