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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말 잘하는 법이 고민인가요?

홍승은의 무해한 말들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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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쌓은 신뢰를 내 나이, 외모, 말투 같은 요소가 깎는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2021.05.10)

언스플래쉬

첫 단행본이 나온 뒤로 나는 나를 쓰는 사람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집필 노동자는 글만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아니었다. 책이 나온 뒤에 책과 관련된 북토크와 강연 등 행사를 다니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시간이 쓰는 시간보다 늘었다. 덕분에 나는 쓰기만큼, 말하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책으로 전달한 내용을 해치지 않으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 북토크에 가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곤 했다. ‘작가님이 생각보다 어려서 깜짝 놀랐어요, 40대 이상은 되실 줄 알았는데.’ ‘글은 우울한데 작가님은 잘 웃으시네요? 글의 분위기보다 훨씬 편안한 성격이시네요!’ 내가 쓴 글보다 편안한 이미지라는 말이 당시에는 마냥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내 글이 쌓은 신뢰를 내 나이, 외모, 말투 같은 요소가 깎는 건 아닌지 고민되었다.

‘말 잘하는 법’을 검색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유튜브나 책을 검색하면 말 잘하는 법이라는 키워드로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진다.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언어, 조급하지 않고 여유로운 템포, 정확한 발음과 적당한 억양, 비언어적인 손짓과 표정에 대한 팁까지 찾을 수 있다. 말하는 내용보다 어떻게 하면 세련되게(무시당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지 형식에 집중된 팁들이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그 팁을 따라 하며 목소리를 굵게 내고, 어깨를 쫙 펴고 손과 팔을 최대한 크게 움직였고, 내 가벼운 웃음소리를 묵직하게(‘낄낄’을 ‘하하’로) 바꿔가며 연습하기도 했다.

그 ‘세련된 말하기 팁’이 모두에게 유효하지 않으며 때로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소통한 경험을 통해서였다. 포항의 한 시민단체에 인권 교육을 다녀온 먼지가 울상이 된 채 호소한 적이 있다. “나는 원래 내가 말을 잘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나는 아직 배울 게 많아.” 학창 시절부터 토론 동아리에서 발성과 호흡, 논리적 말하기의 기술을 배운 먼지는 웬만한 토론대회의 상을 휩쓸었고, 차별적인 언어를 경계하며 섬세하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말 잘하는 팁을 가장 잘 가르칠 만한 사람이라고 믿어온 먼지가 자신의 말하기를 반성한 이유는 이러했다. 그날 강연을 들으러 온 청중의 절반은 지역 장애인자립생활단체에서 활동하는 장애인이었다. 처음 50분을 평소처럼 유려하게 말하던 먼지는 조금만 천천히 말해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들었다. 청각장애인에게 문자로 통역해야 하는데, 먼지의 말이 빨라 소통이 어려운 거였다. 남은 한 시간 동안 먼지는 최선을 다해 천천히 이야기를 전달했고,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 자주 말이 꼬였다.

우주는 노들 장애인야학에서 보조교사로 활동한 적이 있다. 우주의 짝꿍은 40대 후반의 뇌병변장애인 선희 씨였는데, 우주는 영어 시간에 선희 씨의 노트에 선생님의 말을 필기하는 역할을 맡았다. 선희 씨 옆에 앉아 한참 필기하던 우주는 선희 씨가 툭툭 치며 뭔가 잘못됐다는 몸짓을 지어서 깜짝 놀랐다. 우주는 우왕좌왕하다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질문했다. “글씨를 작게 쓸까요? 크게 쓸까요?” 선희 씨는 우주의 두 번째 손가락을 가리키며 글씨를 크게 써달라고 요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는 선희 씨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손가락을 하나씩 짚으며 선택 사항을 물어보았다. “연필로 쓸까요? 펜으로 쓸까요? 조금 더 연하게 쓸까요? 진하게 쓸까요?” 그때마다 선희 씨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지역 도서관에서 강연하던 날, 질문 시간에 한 분이 손을 들었다. 그는 작은 목소리와 부정확한 발음, 간절한 표정으로 긴 시간 말했다. 1분, 3분, 5분이 넘어갈 무렵, 나는 손바닥에 고이는 땀을 느꼈다. 귀를 쫑긋 세워 중간중간 들리는 단어를 노트에 적으며 말을 따라갔다. 마음 한편에는 다른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단어를 조합하니, 동료가 성폭력을 당한 뒤에 역고소를 당해서 힘들어하는 상황을 알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에게 소식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꼭 연대하겠노라 답했고, 그는 끝까지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 진실을 전달하는 그를 앞에 두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걱정한 내가 부끄러웠다.

여러 관계를 거치며 나에게 말 잘하는 사람의 이미지는 단일한 모습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더 이상 말 잘하는 법을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말을 전달할지 내용에 집중하고,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을 변주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얼마 전 한 단체에서 주관하는 온라인 강연을 신청할 때, 신청란에서 이런 항목을 보았다. ‘문자 통역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모임 장소에 휠체어 접근성을 미리 공지하고, 간이 경사로를 설치하기도 한다. 성별 이분법으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망설이는 이가 없도록 성중립 화장실 표지판을 만들어 붙이고, 회의 자료에 미리 점자 텍스트를 준비하거나 글자 크기를 15이상으로 키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는 노력도 있다.

내가 만날 사람들의 다양성을 열어두고 말이 오갈 때 배제되는 이가 없는 자리를 고민한다. 각자만의 문체가 다르듯, 각자만의 말체 역시 다르니까. 무지개처럼 다채로운 언어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말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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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승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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