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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화는 어디서나 비슷할까?: 대홍수와 신데렐라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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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신화들에 이렇듯 비슷한 주제나 구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2021.06.18)

종교학자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칼럼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롭게 읽으며, 인류의 흥미진진한 질문과 만나 보세요.


The Flood. Painting by Johann Heinrich Schönfeld 1609-1684. Hessisches Landesmuseum, Kassel.

지난 글에서 언급한 욥과 크리슈나의 이야기에는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있다. 두 신화는 모두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가난과 질병, 흙 먹는 아이)과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는 우주론적 문제들(세계의 근원에 대한 신의 질문, 신의 입속에 담긴 우주)을 태연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로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신화들에 이렇듯 비슷한 주제나 구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의 경우는 두 신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유사성이지만, 누가 보아도 명백히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세계적으로 분포해 있는 경우도 있다. 대홍수에 대한 신화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홍수 신화는 히브리 성서의 <창세기>에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다. 그러나 신(들)이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특정한 사람이 배와 같은 대피소를 만들어 동물을 포함한 생존자들을 피신시켰으며, 이들이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오늘날의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 지구에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만 살펴봐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쉬팀,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 힌두 신화의 바이바스바타 마누, 아즈텍 신화의 나타와 네나 등이 있다. 각지의 민담이나 원시부족의 신화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목록은 한도 없이 늘어난다.

홍수 신화가 워낙에 널리 퍼져있지만, 그 외에도 비슷한 신화들은 얼마든지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신화적 영웅들은 기이하게 태어나서는 모험을 떠나 시련을 겪고 괴물을 퇴치한다. 그리스에서든 일본에서든 살아있는 채로 저승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편이 좋다. 세 개의 화살이나 나뭇가지를 꺾어서 형제들의 단합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세계 곳곳에 있다. 당나귀처럼 귀가 큰 임금님 이야기는 그리스, 이란, 그리고 신라에서도 발견된다.

전통적인 신화 연구에서 유사한 신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전파론’은 신화가 교역, 이주, 정복 등과 같은 문화의 접촉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문화들의 신화를 비교 연구하는 방법이나, 불교의 전파 경로에 따른 신화의 확산 과정을 살피는 등의 접근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원형론’은 인간 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적, 인지적 특성 때문에 어디에서나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해석이다. 그 특성이란 칼 융이 말하는 인류 정신의 통일성일 수도 있고,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구조화된 정신일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밤의 역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대안을 내놓는다. 그는 우선 전파의 경로를 가능한 한 역사적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파론은 명백히 서로 접촉이 거의 없는 문화 사이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타날 경우에는 설명이 궁해진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원형론은 좋은 접근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신화들이 인류의 원형적 무의식 속에서 캐내어 올린 내용이라는 걸 연구자의 ‘직관’ 외에 대체 무슨 수로 입증하단 말인가? 대신 그는 원형 개념을 인간이 가진 공통된 경험들, 특히 몸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재구성하려 한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동물이라는 점, 그리고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든 죽음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즈부르그는 이런 관점에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발견되는 ‘비대칭적인 보행’에 관련된 신화들, 즉 절뚝거리거나 신발 하나를 잃어버린 인물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들은 이 세계와 다른 세계, 특히 죽은 자들의 세계를 오가는 존재라는 특성을 가진다. 놀랍게도 그는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들을 이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현대의 동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는 이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금지된 영역에 침입했다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신발 하나를 잃는다. 긴즈부르그는 그 ‘왕자의 무도회’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신데렐라 유형의 인물들(이를테면 콩쥐)을 샤먼으로 이해하는 이 해석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신화들의 유사성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인 동시에, 몸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밤의 역사
밤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 저 | 김정하 역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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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훈(종교학자)

밤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 저/<김정하> 역 29,700원(10%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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