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왜 신화는 어디서나 비슷할까?: 대홍수와 신데렐라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2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서로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신화들에 이렇듯 비슷한 주제나 구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2021.06.18)

종교학자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칼럼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롭게 읽으며, 인류의 흥미진진한 질문과 만나 보세요.


The Flood. Painting by Johann Heinrich Schönfeld 1609-1684. Hessisches Landesmuseum, Kassel.

지난 글에서 언급한 욥과 크리슈나의 이야기에는 의미심장한 공통점이 있다. 두 신화는 모두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가난과 질병, 흙 먹는 아이)과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는 우주론적 문제들(세계의 근원에 대한 신의 질문, 신의 입속에 담긴 우주)을 태연하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로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신화들에 이렇듯 비슷한 주제나 구도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위의 경우는 두 신화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유사성이지만, 누가 보아도 명백히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세계적으로 분포해 있는 경우도 있다. 대홍수에 대한 신화가 대표적이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홍수 신화는 히브리 성서의 <창세기>에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다. 그러나 신(들)이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고, 특정한 사람이 배와 같은 대피소를 만들어 동물을 포함한 생존자들을 피신시켰으며, 이들이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오늘날의 세계-의 주민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전 지구에 퍼져 있다. 대표적인 예만 살펴봐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트나피쉬팀, 그리스 신화의 데우칼리온, 힌두 신화의 바이바스바타 마누, 아즈텍 신화의 나타와 네나 등이 있다. 각지의 민담이나 원시부족의 신화까지 범위를 넓히면 그 목록은 한도 없이 늘어난다.

홍수 신화가 워낙에 널리 퍼져있지만, 그 외에도 비슷한 신화들은 얼마든지 있다. 세계 어디에서나 신화적 영웅들은 기이하게 태어나서는 모험을 떠나 시련을 겪고 괴물을 퇴치한다. 그리스에서든 일본에서든 살아있는 채로 저승을 방문했다 돌아오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편이 좋다. 세 개의 화살이나 나뭇가지를 꺾어서 형제들의 단합을 강조하는 이야기도 세계 곳곳에 있다. 당나귀처럼 귀가 큰 임금님 이야기는 그리스, 이란, 그리고 신라에서도 발견된다.

전통적인 신화 연구에서 유사한 신화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전파론’은 신화가 교역, 이주, 정복 등과 같은 문화의 접촉에 의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문화들의 신화를 비교 연구하는 방법이나, 불교의 전파 경로에 따른 신화의 확산 과정을 살피는 등의 접근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원형론’은 인간 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심리적, 인지적 특성 때문에 어디에서나 비슷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해석이다. 그 특성이란 칼 융이 말하는 인류 정신의 통일성일 수도 있고,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구조화된 정신일 수도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밤의 역사』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대안을 내놓는다. 그는 우선 전파의 경로를 가능한 한 역사적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파론은 명백히 서로 접촉이 거의 없는 문화 사이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타날 경우에는 설명이 궁해진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원형론은 좋은 접근방식이 아니다. 특정한 신화들이 인류의 원형적 무의식 속에서 캐내어 올린 내용이라는 걸 연구자의 ‘직관’ 외에 대체 무슨 수로 입증하단 말인가? 대신 그는 원형 개념을 인간이 가진 공통된 경험들, 특히 몸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재구성하려 한다. 특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두 다리로 걷는 동물이라는 점, 그리고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든 죽음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즈부르그는 이런 관점에서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발견되는 ‘비대칭적인 보행’에 관련된 신화들, 즉 절뚝거리거나 신발 하나를 잃어버린 인물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들은 이 세계와 다른 세계, 특히 죽은 자들의 세계를 오가는 존재라는 특성을 가진다. 놀랍게도 그는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들을 이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 현대의 동화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분포하는 이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금지된 영역에 침입했다가 도망치는 과정에서 신발 하나를 잃는다. 긴즈부르그는 그 ‘왕자의 무도회’가 다름 아닌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 주장한다. 신데렐라 유형의 인물들(이를테면 콩쥐)을 샤먼으로 이해하는 이 해석은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신화들의 유사성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인 동시에, 몸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밤의 역사
밤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 저 | 김정하 역
문학과지성사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한승훈(종교학자)

밤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 저/<김정하> 역 29,700원(10% + 1%)

이 책은 중세 이후 ‘악마의 잔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추적하고 16~17세기 민중의 일상과 정신세계에 구체적 형상을 입혀 드러낸 뒤 거시적 차원으로 시야를 확장해 시간과 공간, 신화와 우화, 사료를 넘나드는 방대한 비교 작업을 통해 오랜 세월 지속된 유라시아 공통의 문화적 기원을 찾아 나선다. 무엇보다..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소설을 읽는다는 건 내가 변하기 위한 일

줄리언 반스의 신작. 영미문학의 대표작가답게 ‘소설은 이렇게 쓰는 장르’임을 입증해냈다.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인물을 통해 진실의 아이러니를 들춰내고, 인간과 삶의 다면성을 지적으로 풀어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란, 내가 변하기 위한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제4회 사계절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심사위원 전원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책. 보름달이 환한 밤, 기억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여자아이로 변해 아이와 함께 우유갑 기차를 타고 할머니의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꽃밥과 달전, 푸짐한 반찬들로 소담스럽게 차려진 할머니의 밥상은 한가위 보름달처럼 모두를 품어 안는 감동을 선사한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밤의 세계

화가들에게 밤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밤을 주제로 명작을 남긴 거장 16인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낸 정우철 도슨트의 신간. 책을 가득 채운 101점의 그림은 밤의 고요한 시간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 환해진다는 말처럼, 밤의 그림이 깊어질수록 감상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삶을 구할 수학

피타고라스 정리, 근의 공식, 미적분이라는 말을 들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생멸을 반복하는 생명과는 다른, 시공간을 초월한 만고불변의 법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수학이 생명의 언어라면? 제목부터 아름다운 이 책은 수학이 삶을 이해하는 데, 살아가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일깨운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