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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여전히 신화를 읽을까?: 욥의 부스럼과 흙 먹는 크리슈나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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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들부터 정치-사회적인 것들, 나아가 형이상학적이고 우주론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2021.06.04)


종교학자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칼럼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롭게 읽으며, 인류의 흥미진진한 질문과 만나 보세요.

William Blake, <Satan Smiting Job with Sore Boils>, 1825, 테이트 미술관 소장

2000년대 초 한국사회에는 열풍과도 같은 신화 읽기의 유행이 있었다. 전문 연구자들에게도 난해한 그리스-로마 신들의 이름과 계보를 줄줄 외는 초등학생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북유럽이나 인도, 근동 등의 고전 신화를 다루는 책들이 잇따라 출판되었다. 이제 신화 읽기는 대중적인 유행을 지나 ‘덕질’의 영역에 진입했다. 고대 켈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상대적으로 ‘마이너’한 신화를 다루는 책들도 드물지 않게 보이는 것이 그 징후다. 물론 학자들에게 신화는 인간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텍스트이고, 창작자들에게는 영감과 소재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닌 사람들이 과거 사람들이 남긴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현대인들은 여전히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에 끌리는 것일까?

‘신화’라고 하는 단어에 담긴 이중적인 가치는 너무나 극단적이라 당혹스러울 정도다. 신화를 찬양하는 이들은 거기에 삶의 진실과 우주의 기원, 말하자면 일종의 ‘진리’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우리가 일상 언어나 언론매체에서 주로 접하는 ‘신화’의 용법은 ‘거짓’과 연관되어 있다. 이 경우 신화란,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널리 믿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하나의 단어가 ‘진리’와 ‘거짓’을 동시에 뜻한다니! 한편에서는 신화를 통해 자아를 성찰하고 삶의 풍부한 의미를 발견하는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는 “신화에 불과한” 가짜 지식들을 과학적 분석으로 까발리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특별한 취급을 받는 것이 고전 신화들이다. 서구 문화의 근저에 있다고 믿어지는 그리스-로마, 북유럽, 히브리 성서의 신화들은 근대 이후 일종의 보편적인 교양으로 여겨져 왔다. 그 경우 신화는 문학과 미술의 감상, 품위 있는 대화를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할 상식이다. 물론 이런 방식들로 신화를 소비하기 위해서 그 신화가 제시하는 세계관이나 진리를 반드시 ‘믿을’ 필요는 없다. 여전히 사람들이 ‘믿는’ 신화의 대표적인 예는 종교 경전에 실린 이야기들이다. 종교 전통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경전에 담긴 신성한 이야기를 “한낱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에 반발할지도 모른다. 이때의 신화라는 말에는 거짓이라거나 허구라는 의미가 없다. 그것은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야기”이다.

종교학자 웬디 도니거는 대략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신화 개념이 가진 다양한 의미를 다룬 후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를 덧붙인다. 즉, “신화는 종교적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요컨대 신화는 특수한 물음들에 대한 답인데, 그 질문이란 ‘과학적 설명’이나 ‘역사적 사실’ 등과는 구분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체 종교적 질문이란 것이 무엇인가? 『암시된 거미』의 첫 장에서 도니거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히브리 성서(구약성경)에 포함되어있는 욥의 이야기이다. 철학적 사유와 문학적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 온 이 신화의 대략은 이렇다. 욥은 신실하고 의로운 신앙인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데 사탄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해 신을 저주하게 만들려 한다. 놀랍게도 신은 그런 사탄의 시도를 묵인 내지 방조한다. 선량한 욥은 이유도 모른 채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고 깨진 그릇 조각으로 부스럼을 긁는 신세가 된다. 욥를 위로한다던 친구들은 그가 뭔가 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저질렀음이 틀림없다고 비난한다. 나중에는 신 자신이 나타나 욥이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를 압도해 버린다. 

다른 하나는 비슈누의 화신 가운데 하나이며 수많은 인도신화의 주인공인 크리슈나의 이야기이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크리슈나는 장난꾸러기 어린아이다.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어머니 아쇼드하에게 쪼르르 달려와 크리슈나가 흙을 먹었다고 일러바친다. 그런데 어머니가 크리슈나의 입속을 들여다보는 순간, 무한한 우주가 그 안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다.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넘어서는 체험을 한 탓이었을까? 아쇼드하는 크리슈나의 입속을 들여다본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나는 앞으로 이 코너에서 신화가 제기해 온, 그리고 신화에 대해서 제기되어 온 다양한 질문들을 다룰 것이다. 죄 없는 욥이 고통을 받은 이유, 어린 크리슈나의 흙 먹은 입속에 담긴 세계 같은 주제들은 언어를 이용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물음들을 다룬다. 질문도 이야기이고, 답도 이야기이다. 신화가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들부터 정치-사회적인 것들, 나아가 형이상학적이고 우주론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흥미로운 점은 여러 문화의 신화에서 비슷비슷한 종교적 질문들이 던져지지만, 그에 대한 답은 모든 곳에서 다를뿐더러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옛 신화 속에서 그 질문들을 감지하고, 거기에 이끌린다. 아직 우리는 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암시된 거미
암시된 거미
웬디 도니거 저 | 최화선 역
이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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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승훈(종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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