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의 하루] 을의 연애 – 김영
에세이스트의 하루 8편 – 김영
울음을 삼키는 숨이 무겁다. 눈물을 넘기는 목이 뜨겁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발맞춰 걷는 순간부터, 너와 나는 잘못되었다. (2021.06.09)
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
울음을 삼키는 숨이 무겁다. 눈물을 넘기는 목이 뜨겁다.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발맞춰 걷는 순간부터, 너와 나는 잘못되었다.
담배의 끝과 끝이 타들어 갔다. 한 모금 들이쉬며 서로의 눈을 본다. 한숨을 내뱉으며 서로의 연기를 본다. 시린 겨울 공기 속에서 퍼지는 뜨겁고 냄새나는 뿌연 연기는 내 고백에 대한 너의 대답 같았다. 뭐라고 말 좀 해줬으면 해서, 계속 눈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어서 네 담배가 얼마만큼 남았는지 헤아렸다. 너의 두 입술 사이에 살포시 얹혀 있는 손가락 길이 정도의 시간을 가늠했다. 너는 여기로 저기로 초조하게 시선을 거두는 내 동공이 재미있기라도 한 양, 날 거리낌 없이 쳐다봤다. 나는 그런 너에게 여지를 주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너는 한 걸음 멀어졌다. 나는 그 간격이 아쉬워 너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가로등 조명에 드리워진 너와 나의 그림자가 가까워짐에 마음이 요동쳤다. 어떤 면으로 봐도 유해한 너에게 난 졌다. 이때 알았다.
나란히 누운 발과 발을 서로 교차시키며 장난을 치면서, 내가 고백하지 않았다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물었다. 아니,
- 너는 그날 어떻게 했을 거야?
- 안 아쉬운 건 아니었겠지만, 그냥 그렇게 끝났겠지.
딱 그 정도의 사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차마 묻지 못해 침만 삼켰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상처를 덮을 만큼 이미 마음이 커져 있었다. 엉성하게 묶여서 금방이라도 풀어질 신발 끈 같은 관계라는 걸 알았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냥 그렇게 끝났을 거라는 너의 목소리가 계속 가슴을 때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음성은 날 더 시리게 하고, 먹먹하게 하고, 울고 싶게 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줘, 아니 거짓 없는 너의 모습을 보여줘. 나도 내가 무얼 바라고 기도하는지 모르겠다. 네 곁에서도 난 수십 번이고 내 마음의 크기를 원망한다.
너는 옛 연인과의 추억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그 사람과 내가 비슷하다고, 거리낌 없이 말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네가 그녀에게 돌아가는 꿈을 꿨다. 너와 그 사람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꼼짝없이 보고 나서야 뒤돌아 걸을 수 있었다. 소복하게 쌓인 눈 위에 나의 발자국이 하나둘 찍히다가 곧이어 뭉개지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펑펑 울고 있는 내가 보였다. 하늘의 눈과 내 눈물이 하나 되어, 쏟아지는 거친 숨이 찬 공기 속에서 들끓었다. 나는 세찬 숨을 몰아쉬며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내가 우는 모습을 보니 새삼 깨달았다. 내가 너에게 ‘나’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무엇’으로 느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어깨와 어깨 사이가 닿고 있어도 멀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짙은 농도를 담은 눈빛을 느끼지 못했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가볍기만 하다. 마주 잡은 손은 따뜻했지만 포근하지 않다. 더이상 바라지 않겠다 다짐해도 너의 호의를 기다리는 바구니는 커져만 간다. 차라리 잘해주지 말면 좋잖아. 너는 ‘보고 싶다’ 하면서도 ‘좋아한다’ 말하진 않아. ‘귀엽다’ 하면서도 ‘예쁘다’ 하진 않아. 나는 너의 말속에 숨어있는 네 감정의 밀도를 눈치챌 수 있다. 그럴수록 나는 너와 나 사이 엉성한 신발 끈을 단단하게 조이려고 한다. 또 상처를 받는다. 자책한다. 어떻게 이 굴레를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도 너와 함께 피는 담배를 꺼내 문다.
*김영 글을 읽고 쓰며 조금씩 전진하는 대학생입니다. 하던 가락대로 즐거웁게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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