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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엘라> 과거에는 악당, 지금은 파격의 영웅!

엠마 스톤 주연, 디즈니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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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디즈니가 <크루엘라>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었다. (2021.05.27)

영화 <크루엘라>의 한 장면

영화 제목은 주제의 반영이다. 제목이 <101마리 달마시안>이 아니라 <크루엘라>이다. ‘크루엘라’는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달마티안 모피 코트를 만들어 입으려고 강아지들을 노리는 악당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풀 네임은 ‘크루엘라 드 빌’로, 풀어보면 ‘잔인하다 Cruel’는 의미의 단어에 여성 이름 ‘엘라’를 합치고 ‘악마 Devil’를 불어 발음이 되게 성(性)으로 삼았다. 잔인한 악마, 그러니까 ‘악녀’ 엘라가 되는 셈이다.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는 원래 에스텔라(엠마 스톤)이었다. 에스텔라는 반백과 반흑 머리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주변의 차별을 받았지만, 그 자신은 특별한 패션 감각으로 활용하며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의 죽음으로 삶의 기반이 흔들리면서 에스텔라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뀐다. 런던에서 소매치기 친구들을 만나 남의 물건을 훔치며 성장한 에스텔라는 어릴 때부터 가졌던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놓지 않았다. 

유명 디자이너의 화려한 의상을 판매하는 백화점의 미화원으로 취직한 에스텔라는 이제나저제나 자신의 패션 감각을 뽐낼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다 술에 잔뜩 취해 제멋대로 의상 진열대를 꾸몄다가 그게 런던 패션계의 전설 ‘하우스 오브 바로네스’의 남작 부인(엠마 톰슨) 눈에 띄어 디자이너의 꿈을 이룬다. 그러면 뭐 해, 에스텔라가 디자인하는 족족 바로네스 남작 부인이 자신의 것으로 취하며 명성을 이어간다. 

소개한 내용만 봐서 악녀는 에스텔라가 아니라 남작 부인이다. 이의 설정에 대한 의도를 유추할 수 있는 <크루엘라> 제작자 앤드류 건의 인터뷰 내용 중 한 대목이다. “규정되어 있는 틀을 부수고 한계를 넘어서는 에스텔라의 모습은 지금 시대와도 깊은 연관을 가진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투쟁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남작 부인의 갑질을 더는 앉아서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크루엘라> 국내 포스터의 헤드 라인은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다. 갑을 관계로 대변되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순종적인 태도는 지나간 가치이다. 크루엘라가 에스텔라를 버린건 더는 뺏기고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대신 을의 틀을 깨고 나와 갑과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하여 누가 더 뛰어난지 가름하겠다는 크루엘라는 전통적인 악당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새 가치를 실현할 새로운 주인공이다. 

디즈니는 근래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로 원작과 싱크로율이 높은 실사 구현을 통해 재미를 보고 있다. 그와 다르게 <크루엘라>는 단순한 실사 리메이크의 ‘틀을 깨고’ 아예 주인공 캐릭터를 달리하여 시대에 맞게 해석한 설정으로 오리지널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했다. 앤드류 건의 설명에 따르면, “약간 미친 것 같은 강렬한 모습 뒤에 어떤 사연이 있는지 파헤치고 싶었다. 코믹북의 캐릭터처럼 기원(origin)의 이야기로 접근했다.”   

<크루엘라>는 욕망 실현을 위해 적극적인 여성을 악녀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설명이나 사연을 누락한 채 선한 인물의 반작용으로 편견과 차별을 조장했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인간의 양면성을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일종의 1인 2역으로 연기한 엠마 스톤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한다.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삶의 다양한 면에 따라 발현되는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영화 <크루엘라> 공식 포스터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라라랜드>(2016)의 미아 역할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엠마 스톤의 에스텔라/크루엘라는 비유하자면 <다크 나이트>(2008)의 배트맨과 조커를 모두 갖춘 투 페이스의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출생과 관련해 검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배트맨과, 더는 재능을 뺏기지 않으려 선한 마음을 하얗게 회칠해 지워버린다는 점에서 조커와, 극과 극의 마음을 오가며 균형을 잡으려 고뇌한다는 점에서 투페이스와 닮았다.   

현대의 영웅(superhero)은 과거처럼 세계 평화와 같은 거창한 대의에만 함몰하지도 않고, 어두운 과거에 발목 잡혀 해야 할 일을 망치는 법도 없고,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해 하며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해 세상과 연을 끊지도 않는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목표가 확실하며 가는 길을 방해하는 불의와 부조리에 우회하는 대신 당당히 맞서 원하는 바를 기어코 이뤄낸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 정신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하는 법이다. 제목으로 <크루엘라>를 전면에 내세운 건 세상의 크루엘라를 향한 달라진 시선을 반영한다. 말하자면 <크루엘라>는 크루엘라에게 꼬리표처럼 붙은 ‘드 빌’, 즉 악녀의 이미지를 떼어내는 영화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영웅과도 거리가 먼 크루엘라는 파격의 아이콘이다. 파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디즈니가 <크루엘라>로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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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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