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간 한국문학 특집] K-LIT 분투기
<월간 채널예스> 2021년 4월호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은 정말 변곡점을 맞이한 걸까? 아니면 우리가 ‘국뽕’에 취한 걸까? 두 출판사 저작권 책임자가 털어놓은 K-LIT 분투기. (2021.04.14)
#1. “2019년이었을 거예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진행 중에 이미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어요. ‘그녀’가 판권을 샀다, 그것도 아주 높은 금액으로. 오래지 않아 영국에서 오퍼가 들어왔고, 뒤이어 프랑스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저희도 놀랐어요. ‘그녀’와 도서전에서 마주 앉았던 그 순간이 터닝 포인트였던 거죠. 3월 말 기준으로 29개국과 판권 계약을 했어요.”
#2. “작품이 국내에 출간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를 즈음이었어요.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 수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죠. 정유정 작가의 월드 에이전트인 바바라 지트워 씨가 한국에 와 있던 터라 정유정 작가와 저, 국내 에이전시인 KL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가 통역자를 배석해 함께 식사를 했어요. 당연히 작품 이야기가 주요 대화 소재였고요. 저희의 목적은 작가와 작품 소개였는데, 지트워 씨 반응은 좀 달랐어요. “이 작품이라면 20개국에 판권을 팔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더군요. 정유정 작가도 저도 그저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나요. 그의 말이 사실이 될 줄은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첫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82년생 김지영』이다. 민음사의 저작권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남유선 이사는 해외 진출기에 대한 첫 답변으로 이탈리아 편집자 엘리자베타 스가비와의 만남을 말했다. “그녀는 ‘움베르토 에코의 편집자’예요. ‘편집자들의 편집자’이기도 하고요. 그런 사람이 선택한 작품이라는 소식 자체가 굉장한 기폭제였고, 작품이 그녀의 안목을 증명한 거죠.”
정유정이라는 힌트가 포함된 두 번째 ‘사건’은 2016년에 일어났다. 『종의 기원』이 국내에 출판된 해와 같다. “미팅 이후 바로 영어 소개 자료와 국내 언론사 리뷰를 정리해 에이전트에게 보냈어요. 미국 펭귄출판사와의 계약이 성사된 때가 2017년 1월이니 엄청난 속도였죠. 곧이어 영국 출판사 리틀 브라운과도 계약을 맺었고요. 이후 유럽의 다른 나라들, 남미, 이스라엘, 일본 등과 차례로 계약을 맺어 정말로 20개국에 수출을 하게 됐죠. 거짓말처럼요.” 은행나무 이진희 이사가 기획한 그날의 만남은 해피 엔딩, 그것도 현재 진행형 해피 엔딩이다.
그래서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과정은 전보다 쉬워졌을까? 수치상으로는 그렇다. 10년 전인 2012년 번역 출간된 한국문학 작품은 57종이었으나 2020년에는 170종을 기록했다(한국문학번역원 통계 기준). 두 사람이 내놓은 답변은 10에서 30 사이다. 도달해야 할 고지를 100이라고 상정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므로, 아직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라고 했다. 전해 들은 분투의 어려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영미권 진출 자체가 쉽지 않다. 미국 출판 시장에 존재하는 ‘3%의 딜레마’가 말하는 3%는 번역 도서의 수치다. 이 빈약한 수치를 비집고 들어간 작품만 미국에서 출간된다. 둘째, 나라와 문화권마다 작품을 대하는 태도와 출판 문화가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가 ‘K-스릴러’로 묶어 말하는 스릴러 소설들만 해도 유럽에서는 문학의 한 장르인 ‘범죄문학’으로 분류되지만, 미국 출판사들은 『나를 찾아줘』나 『걸 온 더 트레인』 같은 대중 스릴러로 만들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리고 싶어 한다. 셋째, 앞서 두 단계를 경험하기 전에 해둬야 할 일의 목록은 수십 가지다. 좋은 번역자(작품을 이해하는 동시에 영미권 편집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한 문장을 구사하는)를 발굴해야 하고, 최선의 에이전트(잘 만들 뿐 아니라 잘 파는 출판사에 작품을 꽂을 수 있는)와 신뢰를 쌓아둬야 하며, 충실하고 매혹적인 작품 소개 자료를 사전에 만들어두고, 평소 언어나 문화권에 갇히지 않을 작품을 발견하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이 또한 할 일 목록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시장에 안착했을 때, 관계자(작가, 출판사, 복수의 에이전트 그리고)들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때부터 고난 2라운드가 시작된다. 이진희 이사는 최근 손원평 작가가 은행나무에서 출간한 『프리즘』과 『서른의 반격』 해외 진출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작가에게는 결정적인 책이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해외 진출에 있어서는요. 그런데 다음 작품이 다른 장르라면, 다시 론칭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이 분투기의 현재는 씩씩하고 희망적이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으니까요. 물론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소식은 꾸준히 들려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메인 무대에 있는 사람들, 메이저 출판사와 믿을 만한 편집자가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죠. 한국에도 그들이 눈여겨볼 스토리텔러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까지 오래 걸렸지만, 이제 보기 시작했으니 다음 단계까지는 좀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남유선 이사는 어제의 경험을 에너지원으로 내일을 계획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 시장과 달리 독일과 프랑스, 동남아에서는 좋은 소식이 날아오고 있어요. 작가를 스릴러 작가로 규정짓지 않고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집필한다고 인정해주죠. 손원평 작가는 일본 시장 반응이 특히 좋아요. 『프리즘』과 『서른의 반격』은 여러 출판사에서 계약을 요청하고 있어요. 조남주 작가의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전작과 달리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죠. 그럼에도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고요. 올해는 정유정, 이승우, 이정명 작가의 신작이 예정돼 있고 그 외 해외에서 눈여겨볼 만한 서사를 펼치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도 출간해요. 기대가 큰 해예요.” 이진희 이사는 앞선 토로를 반전으로 마무리했다.
어쩌면 이 희망찬 현재가 출발선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가장 고무적인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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