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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다만 나쁜 어른들이 있을 뿐이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에 빛나는 프랑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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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를 하나로 묶는 건 분노다. ‘톨레랑스 tolerance’는 두 집단 사이에서 더는 완충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2021.04.08)

영화 <레 미제라블>의 한 장면

빅토르 위고 원작의 영화가 아니다. 그래도 관련이 깊다. 빅토르 위고가 몽페르메유에서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쓴 것처럼 영화 <레 미제라블> 또한 몽페르메유를 배경으로 한다. 파리에서 17km 정도 떨어진 프랑스의 대표적인 교외 지역 몽페르메유(Montfermeil)는 경제가 낙후해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과 빈곤층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다시 말해,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불쌍한 사람들 Les Miserables’에 관한 보고서이면서 이들을 방치하고 무시한 결과가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충격적인 결말로 제시하는 경고문이다. 

몽페르메유 지역 경찰서에 스테판(다미엔 보나드)이 전근 온다. 팀장 크리스(알렉시스 마넨티), 그와다(제브릴 종가)와 팀이 되어 움직이는데 경찰 동료와 함께하는 건지, 깡패와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입은 걸고 행동은 폭력적이다. 약칭 ‘떨’을 한 걸로 보이는 고등학생을 상대로 경고 수준을 넘어 위압적으로 구는 크리스를 스테판이 막아서자 “네가 날 막는 거야? 내가 법인데!” 악을 쓰고, 그와다는 “이렇게 안 하면 잡아먹혀. 이게 우리 삶이야.” 물정 모른다는 듯 충고한다. 

그러다 사고가 터진다. 서커스단의 아기 사자 도난 신고를 받고 용의자를 검거하니 어린 나이에 경찰서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이사(이사 페리카)다. 도망가는 이사를 쫓던 중 이사의 친구들이 스테판과 크리스와 그와다를 공격한다. 그때 그와다는 고의인지, 우발인지 모를 고무탄을 발사하고 그에 맞은 이사가 쓰러진다. 이를 근처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드론 영상으로 찍은 사실이 알려진다. 크리스와 그와디는 이 영상을 삭제하려 혈안이 되고 지역 내 조직들은 이를 확보하여 경찰을 쥐락펴락하려고 서둘러 조직력을 동원한다. 

<레 미제라블>의 오프닝은 2018년 월드컵의 프랑스 우승으로 파리 거리를 가득 메운 프랑스 시민들의 축제다.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상징하는 파랑과 하양과 빨강의 삼색 프랑스 국기 아래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프랑스를 실천하는 것만 같다. 딱 그때뿐이다. 월드컵 우승의 여파가 가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프랑스 사회는 인종과 계급과 종교와 계층 등에 따라 사분오열되어 억압과 차별과 무자비로 깃발의 가치를 오염시킨다. <레 미제라블>로 장편 연출 데뷔한 레쥬 리 감독이 보기에 하나 된 프랑스는 월드컵 우승 때만 가능한 일종의 이벤트다.   

그때 정도를 제외하면 프랑스 사회를 하나로 묶는 건 분노다. 있는 자와 없는 자가, 토착민과 이민자가, 수도권 거주자와 교외 이주민이, 경찰력과 조직 폭력배가 대치하는 상황에서 이성과 상식과 예의와 존중과 같은 관용의 정신, 즉 ‘톨레랑스 tolerance’는 두 집단 사이에서 더는 완충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 결국, 모두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분노가 장력이 된 이들에게 일상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개별의 인간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장삼이사일지라도 집단을 이루고 힘을 과시하는 순간, 안전핀은 뽑히고 통제 불능 상황으로 급변한다. 


영화 <레 미제라블> 공식 포스터

아이들은 혼란한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 때문에 지켜야 하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일종의 안전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레 미제라블>에서는 다르다. 몽페르메유의 아이들은 습관처럼 훔치고 버릇처럼 도망가고 일상으로 분노한다. 강력반 경찰이나 지역에 기반한 조직 폭력배들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이 들 때 영화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중 한 대목을 의미심장하게 제시한다. ‘세상에는 나쁜 풀도 나쁜 사람도 없소. 다만 나쁜 농부가 있을 뿐이오.’

영화 <레 미제라블>의 아이들이 품고 있는 분노와 폭력 성향은 이들을 둘러싼 환경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이 아이들이 보기에 경찰이나 조직 폭력배나 모두 한패다. 자신을 지키려고 거친 언행을 서슴지 않는 이들에게 아이들이 배운 건 분노다. 그러니 아이들이 절벽에 몰렸을 때 할 수 있는 건 어른들과 똑같이 분노에 기반한 폭력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이사는 그나마 자신을 유일하게 인간적으로 대했던 스테판과 각자의 무기를 들고 대치하는 상황에 이른다. 

<레 미제라블>은 그의 결과에 상관없이 열린 결말로 끝을 보지만, 이 둘이 서로에게 쐈을까, 쏘지 않았을까를 상상하게 하는 건 아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 의도에 가깝다. 어른에게는 좋은 농부가 되어달라고, 그럼으로써 좋은 사람의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한다. 이렇듯 좋은 영화는 유의미한 질문을 던져 답을 구하게 한다. <레 미제라블>은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그해에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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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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