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영혼, 빌라-로부스 «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
빌라-로부스 «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
북유럽에 시벨리우스가 있다면 아마존에는 빌라-로부스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2021.04.06)
북유럽에 시벨리우스가 있다면 아마존에는 빌라-로부스가 있다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20세기 초반,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들은 베토벤, 브람스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구축한 독일 낭만 음악 전통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살피기 시작했죠. 시벨리우스는 북유럽 대자연을, 마누엘 데 파야는 스페인이 가진 열정을, 버르토크는 헝가리 민요를 음악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빌라-로부스에게는 브라질과 아마존이 있었습니다.
빌라-로부스(1887-1959)에게 처음으로 음악을 가르친 사람은 그의 아버지였습니다. 국립 도서관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아마추어 음악가였지만, 아들에게는 엄격한 음악 선생이었습니다. 청음 훈련을 위해 새소리를 비롯한 각종 자연의 소리부터 길거리 소음, 리듬 등, 들리는 것마다 노트에 적도록 교육했어요. 여행을 떠나도 마찬가지였죠. 빌라-로부스가 12살에 되었을 때 아버지는 천연두로 세상을 떠납니다. 첫 번째 음악선생님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 후, 그는 음악원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음악원을 박차고 나옵니다.
모두들 그가 죽었다 생각한 8년 동안, 빌라-로부스는 아마존 깊은 숲속부터 도시 뒷골목까지 브라질 전역을 헤매며 음악을 듣고 기록하고, 카페와 바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고민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세계를 가르치는 음악원에서는 배울 수 없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본능과도 같은 음악을 찾아 헤맸던 시간이었죠. 브라질 전체가 그에게는 음악 선생이었습니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악단, 아마존 깊은 숲에서 울리는 새소리, 마을 축제에서 사람들이 흥겹게 추는 춤은 빌라-로부스의 악보 위에서 새로운 음악으로 태어났습니다.
« 브라질 풍의 바흐 Bachianas Brasileiras »는 빌라-로부스가 너무나 사랑했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브라질, 다시 말해 자신의 영혼을 결합해 표현한 음악입니다. 전체 아홉 곡 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5번은 ‘아리아-칸틸레나’와 ‘단사-마르텔루’, 두 악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선, 아리아-칸틸레나(1938)를 함께 들어 보시죠.
빌라-로부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아리아-칸틸레나 바로가기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 노래, 베를린 필하모닉 첼리스트 연주, 두다멜 지휘)
‘아리아-칸틸레나’는 18세기 말에 브라질과 포르투갈에 널리 퍼진 유행가, 모지냐(Modinha) 스타일로 작곡되었습니다. 모지냐는 포르투갈 귀족의 살롱에서 하프시코드나 기타로 반주하던 교양 있는 노래나, 리스본에 들르던 외국인 음악가들이 부르던 사랑 노래라고도 합니다. 혹자는, 17세기 초에 브라질 북동부 지역, 바이아 길거리에서 스페인 기타로 반주하며 노래했던 이방인의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워낙 다양한 사회 계급에서 불렸기 때문에 근원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브라질과 포르투갈 양쪽에서 동시에 유행한 감성적 사랑 노래임은 분명합니다. «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에서 첼로는 모지냐의 기타를 모방하듯 피치카토(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소리 내는 연주법)로 노래를 반주합니다. 유연하게 굴곡진 소프라노와 첼로의 피치카토, 베이스 선율을 활로 연주하는 첼로는 바소 콘티누오로 독주를 반주하는 바흐의 아리아(관현악 조곡 3번 BWV1068 //youtu.be/tuB104s0Yas)와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하지만, 빌라-로부스의 아리아는 첼로 여덟 대만으로 노래를 반주하며, 이전에 없던 신선한 음향을 통해 우수 깊은 브라질 정서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가사 없이 모음으로만 노래하는 성악가의 보칼리즈는 첼로와 동일한 선율을 노래합니다. 사람이 성대로 표현할 수 있는 색채와 첼로가 활로 금속현을 문질러 내는, 미묘하게 닮은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두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예술적 표현에 한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중창이 들립니다. 선율이 다른 이중창이 아니라 색채가 다른 이중창으로 인간 목소리와 악기가 긴장을 이루는 미세한 대위법입니다. 현악기처럼 성대를 마찰하고, 관악기처럼 바람으로 소리를 내는 인간 목소리는 다양한 표현력으로 현악기인 첼로와는 다른 차원에서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첼로는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들리죠. 그러나, 목소리가 사라진 후, 첼로가 독주를 시작하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가 존재했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고 깊은, 풍성한 음색이 마술처럼 피어납니다.
소프라노가 가사를 노래하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완전히 바뀝니다. 더 이상 첼로와 음성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추상적으로 음미하던 감정을 시어로 드러내 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빌라-로부스는 이전 파트에서 그림을 그리듯 오르내리던 선율을 같은 음으로 고정해 마치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들리게 합니다. 가사가 더욱 돋보이도록요.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녁, 느리고 투명한 구름이 꿈결인 듯 아름답게 공중으로 떠오른다.
떨리는 마음으로 단장하는 예쁜 아가씨처럼
지평선에서 느리게 솟아오르는 달은 저녁을 장식하며
하늘과 땅, 대자연을 향해 소리친다.
새들은 달을 원망하며 소리를 멈추고
바다는 그 웅장함을 비춘다.
부드러운 달빛은
웃고 우는 이의 잔인한 향수(鄕愁)를 깨운다.
이 가사는 1939년 뉴욕, 만국 박람회에서 아리아가 초연되었을 때, 소프라노를 노래한 루스 발라다레스 코레아가 쓴 시입니다. 시간을 잠시 멈춘 듯, 가사를 읊조리던 성악가는 첼로와 함께 처음 선율을 허밍으로 다시 한번 노래하고 아리아를 마칩니다. 자유롭게 유영하던 첫 부분의 보칼리즈가 허밍으로 불릴 때, 멜랑콜리는 더없이 강해집니다. 입을 다물고 부르는 노래는 약음기를 끼운 악기처럼 먹먹한 소리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대신, 노래하는 이의 내면을 향합니다. 청중을 향하지 않는, 빛바랜 먼 곳의 소리는 무언가를 향하는 그리움을 증폭시키며 듣는 이의 심장을 간질입니다.
빌라-로부스는 1945년 ‘아리아(칸틸레나)’에 ‘단사(마르텔루)’를 붙여 작품을 완성합니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아리아와 달리 춤곡인 ‘단사’는 빠르고 강한 리듬으로 청중을 사로잡습니다. 새소리를 흉내 내는 소프라노 선율은 작곡가가 자주 사용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기타를 잃고 슬퍼하는 가수가 새소리로 자신의 노래를 반주한다는 가사는 자연스레 흰뺨유구오리(irerê), 굴뚝새(cambraxirra), 흰끝비둘기(juriti)를 부르며 새소리를 음악으로 끌어들입니다. 화려하게 음을 오르내리며 기교를 자랑하는 소프라노는 불규칙한 리듬을 강력하게 연주하는 첼로 앙상블과 함께, 악기 소리처럼 발차기하듯 튀어 오르며 풍성한 음향으로 2악장을 이끌어 갑니다.
빌라-로부스, 브라질 풍의 바흐 5번, ‘단사-마르텔루’ 바로가기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 노래, 베를린 필하모닉 첼리스트 연주, 두다멜 지휘)
‘단사(춤곡)’에 빌라-로부스는 ‘마르텔루’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민속춤에서 유래한 이 지시어가 정확히 어떤 춤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의 형식이라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학자인 마르셀 보피스는 마르텔루가 마디선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물어뜯듯이 공격하는 말싸움과 같은 분위기를 뜻한다고 추정합니다. 화려하게 펄떡이는 ‘단사’의 이미지에 보피스의 설명이 적절히 어울립니다. 한편, 브라질의 전통 무예이자 민속춤인 ‘카포에이라’에서 마르텔루는 ‘돌려차기’ 기술을 말합니다. 한 번씩, 강하게 위로 솟구치는 소프라노 선율을 들으면 긴 다리로 시원하게 발차기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죠.
« 브라질 풍의 바흐 »를 작곡하기 전, 빌라-로부스는 « 코로 (1920-1929)» 연작품을 내어놓으며, 130년 전부터 존재했던 브라질 대중음악 장르인 ‘코로’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했습니다.
« 코로는 브라질, 인도, 대중음악의 서로 다른 특징을 종합하는 새로운 음악 장르로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의 리듬과 선율을 작곡가의 개성에 따라 완전히 변형하여 작품에 표현한다. »
코로에 관한 정의는 빌라-로부스의 음악 정신을 그대로 설명합니다. 서로 다른 문화를 종합하고, 과거와 동시대 음악 요소를 혼합해 새로운 음악을 내어놓는 그의 작업 방식은 바흐와 손잡으며 전 세계를 끌어안는 음악으로 피어납니다. « 브라질 풍의 바흐 »에서 그는 이전처럼 민속 음악 재료를 그대로 쓰는 대신,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 흐르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이주민이 겪은 역사적 슬픔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근원적 우울함으로 변환해 풀어냈습니다.
O vosso canto vem do fundo do sertão
Como uma brisa amolecendo o coração
너의 노래는 내륙 깊은 곳으로부터 온다
심장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단사-마르텔루’의 마지막 가사입니다. ‘내륙 깊은 곳’은 브라질 북동부에서 가장 개발이 되지 않은, 메마른 사막 지역을 말합니다. 풍요로운 아마존과는 달리 바싹 마른 수풀만 있는 곳이었죠.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sertão’가 특정 지명을 객관적으로 지칭하기보다 그곳에 얽힌 인간사를 떠올리며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라 말했습니다. 포르투갈 제국주의가 브라질에 진출할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북동부 지역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이 가장 많이 고통을 당했던 곳도,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로 억지로 끌려와 정착하게 된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브라질에서 가장 살기 어렵고, 아픔이 많은 지역이었죠. 그런데도 그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노래했습니다. 빌라-로부스는 사막(sertão)에 심장(coração)을 각운으로 맞추어 노래하며, 아픔을 품은 사막으로부터 아마존의 새소리가 들려온다고 전합니다. «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이성복 아포리즘, 문학동네)라 했던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요.
브라질 풍의 바흐 No.5: 아리아 (칸틸레나), 빌라-로부스 지휘, 비두 사야오 노래, 레오나르 로즈 첼로 솔로, 첼로 앙상블 연주.1945년 녹음 바로가기
브라질 풍의 바흐 No.5: 아리아(칸틸레나), 단사(마르텔루),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지휘, 안나 모포 노래, 1965년 녹음 RCA Victor Red Seal label, catalogue number LSC-2795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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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