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페일 웨이브스, 펑크 키드를 소환하다

페일 웨이브스(Pale Waves) <Who Am I?>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앨범은 에이브릴 라빈을 필두로 2000년대 팝 록 스타일의 틴 팝 계보를 차례로 소환한다. (2021.03.10)


영국의 뉴 웨이브/신스팝 신생 밴드 페일 웨이브스가 돌연 미국의 2000년대 팝 록 시장을 탐미하기 시작했다. 더티 히트 레이블에서 1975를 이을 차기 그룹으로 부상하던 이들이 북미 대륙으로, 정확히는 캐나다 출신의 펑크 키드 에이브릴 라빈에게로 눈을 돌린 데는 리더 헤더의 영향이 크다.

1995년생 헤더 바론 그레이시는 '뿌리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히어로였던 에이브릴 라빈을 소환한다. 첫 번째 트랙 'Change'부터 펑크 프린세스의 목소리를 빌려온 그는 'My happy ending'에 <Let Go>의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조합을 덧대어 에이브릴 라빈이 걸어온 약 10년까지의 종적을 크게 훑는다. 라빈을 '갓빈'으로 묘사한 'She's my religion'이나 원작과 노래 제목이 정확히 일치하는 트랙 'Tomorrow'와 'Wish u were here'가 연이어 배치된 점은 말해 무엇하랴. 게다가 앨범 커버를 보라. 무심하게 지나치는 멤버들 사이에서 고고히 서 있는 헤더의 모습은 흡사 2002년의 라빈 그 자체가 아닌가!

앨범은 에이브릴 라빈을 필두로 2000년대 팝 록 스타일의 틴 팝 계보를 차례로 소환한다. 힐러리 더프의 앳된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어제처럼!'을 외칠 것만 같은 'Fall to pieces'의 도입부나 미셸 브런치의 직관적인 멜로디와 하이틴 감성이 담긴 팝 펑크 트랙 'Tomorrow'는 20년 전의 아이리버 mp3에서나 흘러나올 법하다. 디즈니 채널을 즐겨봤던 90년대생 어른이들이라면 'You don't own me'에서 조 조나스를 뒤돌아보게 만든 데미 로바토의 열창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정말로.

그렇다 해도 페일 웨이브스는 어쩔 수 없는 영국 출신 밴드다. 'Easy'가 아무리 헤더의 에이브릴 라빈 모창과 어쿠스틱 기타, 파워 발라드 스타일의 드럼 키트가 연주하는 <Let Go>의 10대 감성으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신스팝 밴드의 훅 메이킹 센스는 그대로 드러난다. 'She's my religion' 역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팝 시장을 장악한 영국의 모던록/브릿팝 밴드들의 여린 기타 리프 라인과 마이너한 멜로디가 녹아있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로, 약 20년의 장르적 시간을 단번에 뛰어넘었음에도 <Who Am I?>가 단순 모작이 아닌 밴드의 정규 앨범일 수 있는 데는 프로듀서 리치 코스티의 공이 크다. 뮤즈, 푸 파이터스, 포스터 더 피플 등과 작업해온 그는 밴드의 전작 <My Mind Makes Noises>가 주는 육중한 비트감과 흩뿌려지는 듯한 공간감을 보존하면서 신시사이저의 비중을 줄이고 장르적 특색을 위해 드럼의 쇳소리를 강화했다. '진짜' (팝)펑크 앨범처럼 보이게끔 말이다.

지난 몇 년간 틴 팝과 이모, 팝 펑크가 짧게 타오르고 소멸한 그 시대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으나, 대부분 단발성이었다. 이모 힙합은 여전히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며, 유의미한 성과로는 머신 건 켈리의 앨범 차트 1위 성적뿐이다. 신의 리바이벌이 적극적으로 도모되지 않는 환경엔 아마도 '저항정신'과 '마초이즘'을 대표하는 펑크(Punk)와 록을 10대 애들이나 듣는 말랑한 틴 팝 따위로 '변질' 시킨 아티스트들에 대한 평론계의 은근한 적개심도 작용했으리라. 페일 웨이브스는 이에 개의치 않고 시대를 전면에 내걸어 제법 멋들어진 앨범을 만들어냈다. 단순히 흐름에 부합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Who Am I?>는 1975의 그늘에서 벗어나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뿌리를 발견해나가는 과정, 즉 밴드의 성장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헤더의 선언에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이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다. 나의 히어로 또한 '가짜' 펑크 키드 에이브릴 라빈이었노라고.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법정 스님의 죽비 같은 말씀 모음집

입적 후 14년 만에 공개되는 법정 스님의 강연록. 스님이 그간 전국을 돌며 전한 말씀들을 묶어내었다. 책에 담아낸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가르침의 목소리는 고된 삶 속에서도 성찰과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전한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길로 인도하는 등불과도 같은 책.

3년 만에 찾아온 김호연 문학의 결정판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소설가의 신작. 2003년 대전 ‘돈키호테 비디오 가게’에서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아이들. 15년이 흐른 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사정으로 비디오 가게를 찾는다.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모험을 행했던 돈키호테 아저씨를 찾으면서, 우정과 꿈을 되찾게 되는 힐링 소설.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세요!

독립 리서치 회사 <광수네,복덕방> 이광수 대표의 신간. 어떻게 내 집을 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무엇이든 쉽게 성취하려는 시대. 투자의 본질에 집중한 현명한 투자법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행동하도록 이끄는 투자 이야기.

건강히 살다 편하게 맞는 죽음

인류의 꿈은 무병장수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며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세계적인 장수 의학 권위자 피터 아티아가 쓴 이 책을 집집마다 소장하자. 암과 당뇨, 혈관질환에 맞설 생활 습관을 알려준다.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에 필요한 책.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