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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흡혈귀, 흰바위코뿔소, 상상력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77회) 『긴긴밤』, 『1931 흡혈마전』, 『이세린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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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3.04)


함께 길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 『긴긴밤』, 경성 배경의 영어덜트 장르문학 『1931 흡혈마전』, 음식 모형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세린 가이드』를 준비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긴긴밤』

루리 글그림 | 문학동네



지난 1월에 <어떤, 책임>에서 불현듯 님이 『5번 레인』을 소개하셨는데, 그 작품과 같이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에요. 두 작품을 대상으로 선정하는 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두 작품 다 좋았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요. 저에게도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좋은 책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이야기를 종종 곱씹게 될 것 같아요. 

‘노든’이라는 흰바위코뿔소의 이야기로 시작되는데요. 노든이 있었던 곳은 코끼리 고아원이었어요. 그곳에 왜 코뿔소인 노든이 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성장하며 행복한 시기를 보냅니다. 이곳에는 ‘선택의 날’이 있어서, 코끼리를 돌보는 사람들이 각각의 개체를 자연으로 방사할 것인지 결정하는데요. 결국 노든은 고아원을 떠나서 혼자 길을 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존재들을 만나게 되죠. 그 중 한 코뿔소와 사랑에 빠지고 딸을 낳고 행복한 가족을 이룹니다. 어느 날, 그 날은 아주 완벽한 밤이었는데, 트럭을 타고 나타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코뿔소 가족을 위협해요. 노든의 아내와 딸을 죽이고 아내의 코뿔을 베어서 사라져요. 노든은 얼마 후에 사람들에게 발견이 돼서 ‘파라다이스 동물원’으로 옮겨져요. 

같은 동물원에 있는 펭귄사에서는 버려진 알이 발견되는데요. 이 알에는 검은 반점이 있어서 펭귄들이 불길하다고 여겨서 품지 않는 거예요. 그때 두 마리의 펭귄, 치쿠와 윔보가 알을 품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절친한 사이인데, 둘이 아빠가 돼서 알을 품지만 그 시간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전쟁이 발생하고 노든이 동물원을 나가기 위해서 걸어가는데 작은 검은 새를 만나게 됩니다. 검은 반점이 있는 알이 담긴 찌그러진 양동이를 부리로 물고 걷고 있는 치쿠였어요. 알과 치쿠와 노든은 동물원을 벗어나야 한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걷게 됩니다. 



단호박의 선택 

『1931 흡혈마전』

김나경 저 | 창비




1931년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어덜트 장르문학입니다. 창비 출판사와 카카오 페이지가 합동으로 만든 ‘제1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김나경 작가는 1991년생이고 2015년에 웹툰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이 작품으로 소설가로도 데뷔를 한 셈입니다. 

주인공은 ‘희덕’이라는 친구이고요. 진화여자고등보통학교를 다니고 있는 열네 살입니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누군가가 어디에 잡혀 있다가 도망가는 걸로 시작해요. 이 사람은 총을 맞았지만 자신이 총알을 빼냅니다. SF를 보면 초능력자인데 어디 갇히는 인물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위한 시설에서 탈출한 것 같은 느낌을 풍깁니다. 두 번째 장면은 희덕이 학교생활을 하는 내용인데요. 친구들에게 새 사감 선생님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나왔는데 검은 천막이 수풀에 흩날리는 게 보여요. 가까이 갔더니 천막이 아니라 발목까지 오는 까만색 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였어요. 뭘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뾰족 구두를 신고 허리를 굽히고 이상한 자세로 있었어요. ‘뭐야, 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이 ‘잡았다!’라고 하면서 삵을 들어 올려요. 놀란 삵은 도망치고 여자는 ‘겨우 잡은 아침이었는데!’ 하고 소리쳐요. 희덕의 입장에서 이 여자를 보니까 피부는 완전 하얗고 입술은 엄청 붉고 보통 여자들하고 다르게 양복을 차려입었어요. 검은 비로드 드레스를. 그리고 엄청 오래 전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희덕은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름표를 봤는데 ‘계월’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알고 보니까 계월은 새로 부임한 사감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사감이 하는 일을 잘 안 해요. 학생들을 단속하거나 감시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하필 희덕은 계월을 보면서 뭔가를 발견해내요. 계월이 다른 선생님의 목 근처에 얼굴을 갖다 대는 걸 발견한 거죠. 희덕은 ‘요새 서양에서 유행하는 인사법인가?’ 하면서 수상쩍다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정통으로 들키게 돼요. 이와모토라는 선생이 계월한테 수작질을 부리는데, 계월이 짜증나서 이와모토 씨를 기절시키고 본격적으로 식사를 하는 거죠. 그걸 희덕이 보게 됩니다. ‘그럼 계월은 뭐란 말인가...’ 하고 희덕 입장에서는 혼란이 점점 가중되는 거죠. 

 


톨콩(김하나)의 선택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글그림 | 코난북스



걸출한 작품인 『혼자를 기르는 법』을 쓰셨던 김정연 작가의 새 만화입니다. 『이세린 가이드』라고 했을 때 미셰린 가이드가 생각나죠? 표지에 보면 “The LEESELIN GUIDE”라고 적혀있고 그 위에는 미셰린 가이드의 별표 표시가 금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혼자를 기르는 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않았었어요. 가끔 이곳저곳에서 볼 때마다 ‘저 분의 톤이 아주 개성적이다, 아주 독특한 화풍과 서체를 가지고 있고 참 묘하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이것은 걸작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표지를 보면 뭔가 요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 계란 후라이를 비빔밥 위에 올려놓는 것 같은 이세린 씨의 모습이 보입니다. 처음에 나오는 에피소드가 ‘제1화 캘리포니아 롤’ 이렇게 시작합니다. 왠지 『미스터 초밥왕』과 아주 흡사하지 않나요? 비슷하게 따라가요. 심사하는 회장님 같은 할아버지가 있고, 이세린 씨가 롤을 잘 만들어서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요.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면 ‘아, 이게 음식 만화로구나’ 하고 보고 있을 텐데, 이 할아버지가 캘리포니아 롤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먹지는 않고 입에 갖다 대고 사진만 찍고 다시 내려놔요. ‘아주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나서 이세린 씨가 ‘그러시면 이제 접착제로 붙여도 될까요?’라고 이야기해요. 이세린 씨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음식 만화의 클리셰적인 것으로 시작하지만 예상을 빗나가게 되는 거죠. 일단 음식이 아니었으니까. 아주 영리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익숙한 형식적인 것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그걸 완전히 새롭게 비틀어서 전개한다는 게 저는 아주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클라이언트가 무엇을 요청했느냐에 따라서 각 장이 전개되는데, 장에는 형식이 있어요. ‘오늘의 계획’이라는 점선 안에 이 모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가 정말 디테일하게 나와 있어요. 일본의 직업 만화들을 읽어 보면 그 세계를 조금 알게 해주잖아요. 그런 미덕이 이 작품에도 있어서 음식 모형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가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그 부분이 재미가 있어요.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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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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