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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워킹> 타인이 내 생각을 읽는다면

영국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의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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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0년이 훌쩍 지난 먼 미래, 살기 힘들어진 지구를 떠난 소수의 인류가 뉴 월드에 정착한다. (2021.02.25)

영화 <카오스 워킹>의 한 장면

이 세계의 다양성은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며 미리 재단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토론하고 논쟁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문화를 만들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등등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한다. 반대로 독재는 타인의 생각을 통제하며 다양성을 말살할 때 이뤄진다. 하물며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지금으로부터 200년이 훌쩍 지난 먼 미래, 살기 힘들어진 지구를 떠난 소수의 인류가 뉴 월드에 정착한다. 뉴 월드의 주민은 모두 자기 생각이 바깥으로 드러나고 노출된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노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최대한 은폐하거나 실제와 다르게 조작하여 상대를 혼란하게 하는 이가 뉴 월드에서는 가장 위협적이다. 

뉴 월드의 통제자는 데이비드(매즈 미켈슨)이다. 생각을 숨길 줄 알고 거짓으로 꾸며 상대를 공격할 줄 안다. 사람들은 그에게 복종하거나 아니면 생각을 읽히기 두려워 멀리 떨어져 산다. 토드(톰 홀랜드)도 나름 자기 생각을 통제하는 능력을 갖춰 데이비드의 눈에 띄지만, 그에 맞서는 건 역부족이다. 그에게 잘 보이려던 차, 여자다! 뉴 월드에서 멸종한 여자 바이올라(데이지 리들리)를 발견하고 보호하다 데이비드에게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카오스 워킹>은 남자는 147명, 여자는 단 1명뿐인 미래 배경의 영국 베스트셀러 소설 3부작 중 1부에 해당하는 ‘절대 놓을 수 없는 칼’을 영화화했다. 연출한 이는 더그 라이먼 감독이다. 첩보물 <본 아이덴티티>(2002), 액션물 <미스터&미세스 스미스>(2005), Sci-Fi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 다양한 장르를 경유하며 관객의 눈을 현혹하는 볼거리로 인지도를 쌓았다. 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에 충실하면서도 더그 라이먼은 순간 이동 설정의 <점퍼>(2008)에서처럼 화면에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식의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이미지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영화 <카오스 워킹> 공식 포스터

<카오스 워킹>에서도 극 중 인물의 머릿속 생각이 밖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는 간단하다. 푸른빛의 홀로그램처럼 머리 주위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누구나 볼 수 있거나 멀리에서는 이미지의 잔상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식이다. 여기에 주인공의 생각하는 바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면 ‘노이즈’의 효과가 완성된다. 더그 라이먼이 <카오스 워킹>의 감독직을 수락한 건 모든 생각이 노출된다는 극 중 설정을 이미지로 옮기는 작업에 매력을 느껴서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카오스 워킹>을 한 줄 요약하자면, ‘더그 라이먼이 더그 라이먼했다.’ 

쉽게 이해 가능한 머릿속 묘사처럼 노출된 생각의 내용 또한 복잡하지 않다. 생존이 주요한 테마답게 상대를 향한 적개심이거나 여자를 처음 본 남자의 키스 수위 정도의 성적인 인상들이 대부분이다. 통제 사회를 향한 비판의 설정을 고려하면 모순된 연출 태도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이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SNS와 같은 문명의 이기가 개인의 욕망을 노출하게 하여 기업이나 정부와 같은 거대 집단의 보이지 않는 통제가 가능하게끔 이뤄지는 현실의 시스템을 비판하게 한 설정 때문이다. 

<카오스 워킹>은 그렇게 깊이 들어갈 생각이 없다. 뉴 월드와 정착의 키워드로 미국이 아메리칸 원주민을 학살한 폭력의 역사를 읽을 수 있기는 한데 많은 장르에서 다뤄지고 뻔한 서브플롯이어서 극 중 노출된 생각마냥 상상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토드와 바이올라의 남녀 결합이 데이비드와 같은 1인 통제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럼으로써 다시금 건설될 ’뉴 월드’가 얼마나 이상적인 형태가 될지, 예상 가능한 순서로 전개된다. 블록버스터는 종종 거대한 볼거리로 시각을 제한하거나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 이미지로 사유하는 힘을 떨어뜨린다. 그의 맥락에서 비판적인 설정을 지닌 <카오스 워킹>은 스스로 그 함정에 빠져 ‘혼란 chaos’해진다. 자가당착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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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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