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코로나 시대, 글을 더 써야 하는 이유”
『우리가 글을 쓴다면』 김성환 저자 인터뷰
최근 코로나 시대를 마주하며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불안이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입니다. (2021.02.23)
요즘은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이자,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필력에 고상함이 없는 나도, 너도, 우리도 어쩌면 작가가 될 수 있다. 글을 쓰는 데에는 각자만의 이유가 존재한다. 누군가는 자아를 발견하는 수단으로 삶 자체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는 취미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저녁 한 끼를 해결할 최후의 무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업의 전문성을 증명하여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의 저자는 수많은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라는 거대한 벽 앞에 고개 숙인 채 일정 거리를 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담과 글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글과 마주한 장애물을 함께 넘어서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 책을 통해 아이, 성인, 부모, 노년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좋은’ 글을 ‘잘’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과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부산에서 열심히 글 쓰며 살아가는 김성환입니다. 5년간 다니던 직장을 퇴사 후 431일 동안 세계 일주를 했습니다. 귀국 후 쓰는 삶을 시작하여 감사하게도 2년간 세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현재는 ‘북텐츠’라는 성인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리에서 글과 인문학을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신문>에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인문 에세이 『우리가 글을 쓴다면』은 전작 『직장은 없지만 밥은 먹고 삽니다』 출간 이후 14개월 만에 세상에 드러낸 저의 네 번째 책입니다. 책에는 그동안 글을 쓰며 만난 사람들과 마주했던 다양한 질문에 일련의 사유를 더하였습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지 않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쓴다면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지’에 관해서입니다.
책의 서두에는 제가 글을 접한 계기를 담았습니다. 이제껏 썼던 글 어디에서도 꺼내지 않았던 조금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제 가족도, 친한 지인도 모르는 순간의 진실입니다. 판도라의 상자에 담아둔 채 심연에서 평생 꺼내지 않을 수 있었으나, 우리가 글을 썼으면 하는 제 바람에 일말의 신뢰를 더하려 힘겹게 꺼내었습니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 그리고 작가님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984』의 저자인 조지 오웰은 인간이 글을 쓰려는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꼽습니다. 잘난 체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미학적 열정, 진실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최소한 이 중의 한 가지 이유로 글을 쓰려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만난 사람 중에서 여기에 직접 포함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책의 서문에 담은 한 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70대 여성이셨는데 글을 쓰고 싶다며 몇몇 조언을 구하셨습니다. 평소에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강연했던 것처럼 쓰는 방법에 관하여 간단하게 알려드렸습니다. 약 한 달 뒤에 사진 두 장을 받았습니다. 한 장은 그동안 연습하신 글쓰기 노트였고, 다른 한 장은 ‘어머니, 잘 계시죠?’로 시작하는 짧은 글 한 편이었습니다. 대부분이 비문인 데다, 맞춤법이 군데군데 틀렸으나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도 만질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글로 표현한 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조지 오웰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글은 어느 쪽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도 거시적으로 본다면 조지 오웰이 말한 4가지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시대를 마주하며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한 한 가지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삶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인 불안이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 감정을 되뇌어가며 조금씩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쓰면서 불안에 매몰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여 수채화처럼 글이 흩어지지만, 천천히 써 내려가는 중입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좋은 글이 있다면 반대로 안 좋은 글은 무엇인가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좋은 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글이란 그저 잘 쓴 글, 평범한 글, 잘 쓰지 못한 글로 분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 시절에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보고 부모님에게 “엄마, 이 책 좋아.”라고 하지, “이 책 잘 썼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잘’의 늪에 빠져 ‘좋은’이란 가치를 모른 척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좋은’의 특성상 각자의 기준에서 판단되므로 좋은 글의 절대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가 다르니까요. 게다가 한 편의 글을 만난 순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한 문장, 한 문단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떠한 연유로 에세이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 위로가 필요한 순간 접한 에세이 한 편이 온전한 위로를 전함으로써 그 사람에게는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저에게 좋은 글은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글, 생각의 프레임(틀)을 깨는 글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박완서 작가님과 황현산 작가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두 분의 글을 읽고 나면 꽤 넓고 깊은 사유의 바다에 빠집니다. 그 순간의 환희가 글을 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최근에 추가된 한 가지는 좋은 사람이 쓴 글입니다. 어쩌면 앞선 두 조건보다 더 불명확하지만, 최근에 이국환 작가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를 읽으며 기준에 추가되었습니다.
안 좋은 글도 좋은 글과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좋은 글의 반대가 안 좋은 글이라고 여길 수도 없을 것입니다. 여운이 오랫동안 남지 않은 글, 생각의 프레임을 깨트리지 않는 글이 제게는 안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쓰는 사람으로서 지양하고자 하는 글은 있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글,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글입니다. 저도 모르게 이런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나, 최대한 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하기보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작가님만의 특별 글쓰기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요?
저도 글쓰기 습관이 어느 정도 잡히기 전까지 말하기보다 글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이 겪는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한 데는 타인의 시선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글을 쓰는데 버석거림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혼자만 볼 일기를 쓸 때 어떠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읽는 대상이 존재해야 글쓰기에서 일련의 벽을 만납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글은 대부분 타인의 평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가끔은 점수라는 험난한 장애물도 있죠. 그 순간들이 긍정에 가까운 감정을 유발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지난하게 이어지다 보면 우리의 글 씀을 스스로 만든 한 평짜리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글을 쓴다는 것은 모순에 가깝습니다. 사회라는 세상에서 글을 쓰고 싶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모순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유의 크기와 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명도의 차이가 글 씀을 이어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니까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모순을 만나기도 합니다. 쓰는 이유를 단기간에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꾸준하게 글을 쓰려면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합니다. 먼저, 일단 써 내려가야 합니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면 오늘의 기분을 다섯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부터 연습해보시면 좋습니다. 흔히 말하는 감정을 사유화하는 첫 단계입니다. 다음으로 주위를 바라봐야 합니다. 쓰다 보면 소재 고갈이란 벽을 만납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주위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 등이 글에 풍성함을 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의 변화를 스스로 목격해야 합니다. 앞선 두 단계를 거치다 보면 글에서 마주하는 일련의 변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을 차분하게 만끽하면 좋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는 글쓰기의 꽃이라 불리는 퇴고가 필수입니다. 퇴고는 쓰는 사람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퇴고하지 않은 글은 변화의 초입에서 머무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작가님께선 무려 4권의 책을 출간하셨는데요. 이번 책은 특히나 다른 책들보다 진지함이 많이 묻어나 있는 것 같아요. 책이 나왔을 때의 심정은 어떠셨나요?
많이 진지했을까요?(웃음) 초고는 책보다 몇 배 이상으로 더 진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책의 1장인 ‘글을 마주한 순간’은 마치 늪지대 같았습니다. 출판사에서 1장 분량을 반으로 줄여달라는 이유였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그러한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제가 글을 마주하게 된 순간을 세상에 처음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그 순간을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수백 번 고민했던 내용입니다. 다음은 글쓰기를 소재로 두어서입니다. 쓰는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저 또한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글쓰기 책을 쓰리라 다짐할 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책보다 독자의 평가가 더욱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글이란 길을 찾는 여정을 담아서입니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진지함이 조금은 진하게 묻었던 것 같습니다.
책의 실물을 손에 쥐던 날, 밤을 새우며 글을 읽었습니다. 이전 책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책은 부디 오탈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글에서 ‘진중함은 유지하되 조금 더 유머러스하게 적었으면 더 괜찮은 글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욕심을 끝없이 갈구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거나, 꽤 긴 시간이 흐른 후 드러났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작가분이 제게 “써야 할 때 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제가 지향하는 바를 이번 책에 다 담기에는 필력이 부족했으나, 써야 할 때 써 내려갔음에 나름의 만족을 표합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 또는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지난가을 『우리가 글을 쓴다면』 탈고 후 앞서 잠시 언급한 불안을 소재로 한 글을 집필 중입니다. 에세이 형태이며, 초고는 목표치의 절반가량 적었습니다. 이번에 출간한 책이 우리가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을 여러 갈래로 담았다면, 다음 원고는 글을 쓰며 마주한 삶에 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 중입니다. 그런데 원하는 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잠시 방황하던 중에 독서모임을 소재로 기획서 한 편을 완성 후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A4 40페이지 분량을 완성했습니다. 둘 중 어느 원고가 책으로 태어날지 모르겠으나, 올해 안에 매장에 실물이 진열되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이 있습니다.
이 두 원고를 쓰고 나면 별도의 원고 의뢰를 받지 않는 한 소설을 쓰지 않을까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쯤 멋모르고 작성해놓은 중장편 초고가 있으나, 단편 소설로 방향을 옮길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대부분 글이 에세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꽤 큰 도전입니다. 에세이와 소설은 엄연히 써 내려가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려는 데는 19살에 글을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의 감정을 다시 한번 손에 쥐고 싶어서입니다. 소설 기획은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라도 세상에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을 읽고 좋은 글을 쓰실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출간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를 넘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만의 이유로 글을 쓰지 않으며 책을 출간하지 않습니다. 글쓰기는 쉬울지언정 글쓰기를 지속하기란 여간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글쓰기는 꽤 고단한 행위입니다. 그동안 글을 쓰며 마주한 진심 어린 한 문장입니다. 그럼에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을 직간접으로 마주한 사람은 글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글을 쓴다면』을 완독해도 어떠한 극적인 변화를 마주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저자로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변화의 초입에 발을 내디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변화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으나 부디 긍정적인 쪽이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이 많이 판매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버린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많은 분이 봤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명백한 모순이나, 평범한 한 사람의 마음으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로나 시대가 저물어 마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김성환 431일간의 여행 이후 읽고 쓰는 삶을 선택했다. 들어본 적도, 경험해본 적도 없는 길이기에 수없이 넘어지고 있지만,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열심히 걸어가는 중이다. 부산에서 북텐츠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시집 『그들의 사랑은 흔적이 되고…』, 에세이 『답은 ‘나’였다』, 『직장은 없지만 밥은 먹고삽니다』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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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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