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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미 에세이] 우리의 발언도 소중해서
박솔미의 오래 머금고 뱉는 말 (1)
기억 저편에는 분명 명발언과 불발언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다시 돌아와 손뼉 치고 안아주기를 기다리면서요.(2021.02.19)
스스로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것을 말할 수 없다.
- 버지니아 울프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느냐로 판단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쉬는 시간에는 쉬어야죠.
-박솔미
응?
이름난 사람들이 한 말은 주목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곱씹고, 누군가는 분석하고, 누군가는 기억하죠.
그에 비해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하는 말은 외로운 편입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 말하고, 울부짖어도 상대에게 스미지 않고 공중에 흩어질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나조차도 내 말을 무시해요. 겨우 용기 내 했던 말을 돌아보며 부끄러워하고, 당장 뱉어야 하는 말은 꿀꺽 삼키기도 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한 편의 영화라 생각해봅니다. 대박 난 영화도, 굴지의 명작도 아니지만 어찌 됐든 저는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명장면과 명대사를 남기기 마련이고요. 저 역시 30년 넘게 살아오며 제법 다양한 장면과 대사를 남겼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속삭인 적도 있고, 서슬 퍼런 욕설을 지껄이기도 했어요.
어떤 이유로든 뜨거워진 마음이 폭발할 때 함께 터져 나온 나의 발언들은 ‘명발언’이라고 이름 붙여 줬어요. 명발언들이 탄생했던 장소와 시간을 향해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내뱉은 사람마저 잊고 사는 추억의 자리에서, 발언은 홀로 남아 이야깃거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나의 명발언을 하나둘 헤아리며 스스로 많이도 놀랐습니다. 보통의 삶을 둥글게 둥글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삶의 중요한 대목에서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고, 분노하고, 애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나의 명발언에게 열렬히 박수쳐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보통의 삶에서나마 이토록 열연한 자신에게 보내는 박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게 명발언의 역사만 있는 건 아닙니다. 끝내 하지 못한 말들도 많아요.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하는데…’ 하며 후회하는 일들이 기억 속 한 뭉텅이입니다. 이들은 ‘불발언’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불발해버린 말과 마음이 머무르고 있는 추억 속으로도 가보았어요.
‘왜 똑똑히 말하지 못 했을까?’ 하며 옅게 원망하던 순간들. 천천히 살펴보니 그때의 저에겐 말 못할 사정이 있었어요. 주로 무언가에 짓눌렸기 때문이었어요. 상대의 권력, 스스로 짊어진 의무감, 은밀하게 학습된 태도에 눌려 할 말을 못 했던 거죠. 각기 다른 불발언의 사정은 제가 살아오며 문득 피로하고, 슬프고, 서러웠던 까닭과도 일치했습니다.
불발언들을 향해 자책하던 마음은 거두기로 했습니다. 대신 꽉 끌어안아 주기로 했어요. 그때 말 못한 내 사정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이제 제대로 알았으니까요.
저의 명발언과 불발언 꺼내보려고 합니다. 친구와, 연인과, 부모와. 면접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매일 같이 겪는 상황이자 날벼락 같은 순간에 제가 날린 명발언과 삼켜버린 불발언들. 여러분이 지나온 날들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기억 저편에는 분명 명발언과 불발언이 있을 거예요. 여러분이 다시 돌아와 손뼉 치고 안아주기를 기다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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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글이 좋았다. 애틋한 마음은 말보다는 글로 전해야 덜 부끄러웠고, 억울한 일도 말보다는 글로 풀어야 더 속 시원했다. 그렇게 글과 친하게 지내다 2006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2011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에세이 <오후를 찾아요>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