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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 MD의 부캐 활용법

일만 하는 사람이 되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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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 MD의 업무 시간은 매일 비슷할 것이지만, 매일의 나는 조금씩 다르게 살기를 바란다. (2021.02.19)

pixabay

한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것 같았다. 해외 도서를 다루는 외국도서 MD의 업무란 매일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건만, 이 일들이 뭐 늘 그런 것처럼 별 생각 없이 넘기게 되는 내가 가끔 낯설다. 외국도서 MD에게 벌어지는 변수란 가령 이런 것들이다. 미국의 매서운 한파로 인해 일주일째 출고가 되지 않는다거나, 체리/달걀 등의 식품이 수입되느라 책은 출고 순위에서 밀려났다거나, 허리케인이 불어 이동이 어렵다거나, 마약 매입 등의 이슈로 인해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졌다거나,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발 물량이 늦어진다거나 등등.

게다가 코로나19가 해외에서는 더 심각해서, 담당자와의 연락이 쉽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일본, 싱가폴 등에 있는 담당자와 업무를 하다 보니 이 국가들의 상황을 대략이라도 알고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어휴, 그런 일도 있군’ 하고 넘기게 되는 건 꽤 오랜 시간 같은 업무를 해서이기도 하고, 매너리즘이 올 주기가 되어서이기도 한 것일 테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별일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시간은 잘 흘러간다. 그래서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때도 많다. 나의 쓸모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기도 하고, 나 더 재미있는 일 많이 벌일 수 있는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할 때쯤이 되면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그러면 또 그 재미있는 일은 내일로 미뤄진다. 언젠가의 내일에는 하겠지 뭐, 하고. 

그러나 이런 ‘회사원’으로만 남는 삶으로는 나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 매일 일에 지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 TV만 보다 자는 건 조금 슬픈 일이다. 회사는 언젠가 떠나게 될 테고, 이후에 돌아봤을 때 일에 지친 모습만 남아있다면 헛헛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 일하는 동안은 외국도서를 다루는 MD이지만, 퇴근 이후는 다른 자아의 스위치를 켜 두고 꽉 채워서 살려 한다. 일 말고도 집중할 곳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하는 자아에 힘을 더 실어주기도 하니까.

지금 나의 부캐는 ‘헬린이’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면서 되도록 매일 운동을 2시간가량 하고 있고, 식단을 조절하면서 몸에 대한 것 이외에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8kg가량 감량이 된 걸 보면 꽤나 뿌듯하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하는 것만큼 변화가 없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감도 꽤 채워지고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매일을 더 열심히 살게 된다. 막바지에 접어들면서는 아침 운동도 해야 해서, 아침형 인간이 죽어라 되지 못하던 내가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여유 있게 걸어서 출근하는 놀라운 일도 생겼다. 

하루를 꽉 채워 살다 보니 일할 때의 내 모습도 조금 더 채워서 살아도 좋겠다는 의지가 조금 생겨났다. 내일로 미루던 새로운 일을 오늘 기획해보고, 귀찮다는 이유로 조금 뒤로 두었던 일을 당겨서 해 보는 것만으로 부캐의 활용도는 충분한 것 같다. 부캐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나에 대한 만족감으로 본캐인 외서 MD로서의 업무에도 더 쏟을 힘이 난다고 믿는다.

작년 이맘때에는 시집 출간을 준비 중인 ‘시인’으로 부끄럽지만 내겐 아주 중요한 부캐가 있었다. 지난 5년간 써왔던 시조를 모아 출간하는 일은 처음 겪는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열심히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그걸로 족했다. 다만 힘들었던 건 학기가 시작되는 철의 외국도서 MD란 매일 쳐내야 할 데일리 업무가 산더미여서, 퇴근 후에는 더 쓸 힘을 내기가 많이 어려웠다는 거다.

그래서 시작한 게 체력관리를 위한 운동이었고, 식이도 조절했다. 그 일이 계속되다 보니 지금의 다른 부캐인 ‘헬린이’가 또 내게 온 것이다. 어차피 떼돈을 벌기 어려운 회사원의 삶이라면, 부캐라도 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러나 한 번 하고 말 역할은 하지 않기. 계속해서 끌고 갈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게 나의 부캐 활용법이다. 뭐든 꾸준히 하지 않으면 까먹기 마련이니까. 언제든지 쓸 수 있는 탄력적인 부캐들을 여러 개 두고, 때마다 골라 사용하는 다채로운 사람이 되려 한다.

외서 MD의 업무 시간은 매일 비슷할 것이지만, 매일의 나는 조금씩 다르게 살기를 바란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건 MD로서의 나만이 아니라 부캐로서의 나에게도 필요한 모습이다. 아, 덧붙이자면 ‘헬린이’ 부캐 활동 중 보게 된 넷플릭스 등의 각종 구독 서비스를 보면서 원서 기획전을 여러 개 오픈 했던 것 역시 부캐의 적절한 활용법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부캐는 여러모로 유용합니다요. 일만 하고 살기에는 슬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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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영(도서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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