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의도하지 않았으나 ‘땡땡의 땡땡’ 특집이 되었습니다
책읽아웃 - 김하나의 측면돌파 (173회) 『필요의 탄생』, 『진리의 발견』, 『이완의 자세』
시작은 책이었으나 끝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코너, 삼천포책방입니다. (2021.02.04)
냉장고의 역사가 담긴 『필요의 탄생』, 첫 장에 매혹되어 끝 장까지 읽게 되는 『진리의 발견』, 여성과 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완의 자세』를 준비했습니다.
헬렌 피빗 저/서종기 역 | 푸른숲
부제로 ‘냉장고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이라고 적혀있는 『필요의 탄생』입니다. 원제목은 『Refrigerator』예요. 냉장고의 역사에 대한 미시사 같은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냉장고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필요 없었던 것들을 지금처럼 모든 집에 다 있어야만 하는 물건으로 어떻게 바꿨는지를, 마케팅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화려한 영업사원들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표지에 “필요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 나와 있고요. 그 질문에 대해서 ‘기술의 진보일까’, ‘시대의 흐름일까’, ‘마케팅의 집념일까’라고 세 가지가 나와 있는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세 가지 다예요.
유럽에서 가정용 냉장고가 꼭 필요하다고 받아들인 게 50년 정도밖에 안 됐대요. 1970년대 정도부터 필수적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거고, 미국도 1940년대 정도라고 해요. 냉장고가 없었을 때는 가정용 아이스박스를 주로 썼다고 해요. 얼음 산업에서 파생된 상품인 건데요. 점점 사람들이 얼음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얼음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해요.
당시에 냉장 기술이 있기는 했대요. 과학적으로는 이미 기술이 있었는데 기술자들은 관심이 없었던 거죠. 기술자와 과학자가 만나게 된 계기가 박람회였습니다. 거기에서 제빙기 산업이 활발해졌어요. 그리고 제빙기 기술에서 냉각 설비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개발된 건 가정용이 아니었고 냉동 화물선이었어요. 먼 나라에서 고기를 수입해 온다고 하면, 예전에는 산 채로 들여왔는데 이제 얼려서 가지고 올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음식을 소비하는 단위나 방법이 비약적으로 달라진 거죠. 그 이후에야 가정용 냉장고가 선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냉장고를 안 썼어요. 오랜 시간 얼음을 써왔으니까 쓸 이유가 없는 거예요. 미국과 영국에서는 1950년대가 훌쩍 넘어서까지 얼음 장수들이 주기적으로 방문을 다녔다고 해요. 그리고 (초창기에는) 냉장고가 멀쩡하게 작동하지 않았고, 소음도 너무 크고, 자동차보다 2배 정도 비싼 가격이었대요. 기업들은 판매를 해야 되니까 사치품으로 마케팅을 시작했어요. 냉장고가 크게 부흥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전까지는 냉장고를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비쌌어요. 그런데 제너럴 모터스가 냉장고 만들던 회사를 인수하면서 대량 생산을 시작해요.
저자는 런던과학박물관의 큐레이터예요. 냉장고의 과학 기술에 대한 지점도 이야기하고요. 박물관과 제휴해서 박물관에 있는 사진들과 삽화들을 책에 실었습니다.
마리아 포포바 저/지여울 역 | 다른
제가 2월 중에 『사이보그가 되다』의 김초엽 작가님, 김원영 작가님과 북토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예스TV에서 할 거니까 많이 시청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것의 대비로 황선우 작가가 진행하는 김초엽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어요. 현장에서 김초엽 작가님이 추천해주신 책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가지고 온 『진리의 발견』입니다.
마리아 포포바는 불가리아에서 태어났고 음악과 수학을 아주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하고요. 지금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고 있고 직업은 블로거입니다. 브레인피킹스(BrainPickings.org)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책에는 “독자로서 그리고 문예비평가로서 웹사이트 브레인피킹스를 운영하며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쓴다. 이 웹사이트는 문화적으로 가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놓은 미국 의회도서관의 영구적인 디지털 기록보관소 명단에 올라있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요하네스 케플러로 시작합니다. 요하네스 케플러는 과학자이고 천문학자인데 독일 사람이고요. 그 당시에 여러 엄청난 발견들을 많이 했고, 이 사람의 삶을 정말 드라마틱하게 써놓은 게 첫 장이에요. 천동설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서 지동설의 확실한 증거가 되고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아주 강력한 뭔가를 발견해낸다거나 가설을 제시한다거나 그걸 증명해낸다거나 하는 작업들이 굉장히 뛰어난데, 그로 인해 케플러의 어머니인 카타리나 케플러는 독일의 조그만 마을에서 마녀로 몰립니다. 케플러는 ‘이 복잡한 과학적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본격 SF 소설 같은 걸 썼어요. 이야기 주인공의 엄마를 마법적인 힘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했는데, 그것이 증거가 되어서 케플러의 엄마가 마녀로 몰리게 된 거죠. 케플러의 첫 챕터를 읽고 나면 830페이지까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마리아 미첼, 마거릿 풀러,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해리엇 호스머,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 등등이고요. 다 여성들을 이야기했고요. 사이사이에 허먼 멜빌, 찰스 다윈 같은 사람들도 나오는데 마리아 포포바가 가장 공들여 쓴 두 인물은 마거릿 풀러와 에밀리 디킨슨입니다. 마거릿 풀러는 1800년대에 여성들의 교육과 과학적 지식과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배움을 확장시키기 위한 모임 같은 것도 많이 하고 그것을 글로 써서 아주 많이 의식을 고취시킨 사람이에요.
김유담 저 | 창비
김유담 작가는 소설집 『탬버린』으로 2020년에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어요. 이후에 나온 장편소설인 『이완의 자세』는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개작한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라’라는 여성이에요. 그녀와 어머니 ‘오혜자’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오혜자는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고 딸과 둘이 남겨져요. 보상금으로 피부관리실을 차리는데 사기를 당해서 하루아침에 돈을 다 잃어요. 그때 유라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찾아와서 돈을 조금 주고 가는데, 이 돈으로 딸과 같이 살 집을 얻는 게 아니라 목욕탕의 세신사 자리를 삽니다. 그래서 유라는 목욕탕에서 사는 아이가 돼요. 탈의실에서 엄마랑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거예요.
목욕탕에 온 손님 중에 고전무용학원 원장이 있었는데, 유라한테 끼가 보인다면서 무용을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해요. 그래서 유라는 무용을 하게 됩니다. 유라에게 재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훌륭한 무용수로 성장하기까지의 걸림돌이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처음에 엄마 오혜자가 세신사 일을 시작할 때 밤마다 유라를 때밀이 침대 위에 올려놓고 때 미는 연습을 했거든요. 유라는 아프고 수치스러워서 싫었어요. 그래서 몸을 비틀기도 하고 싫은 티도 내고 했는데, 엄마도 자신이 너무 힘든 시기이다 보니까 말과 행동이 곱게 안 나가는 거죠. 그러면서 아이를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이 유라에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거예요. 유라에게는 몸이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대상이에요. 무용수로서 몸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야 하지만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닌 거죠.
대학에 들어간 후에 유라는 ‘재능이 없고 이 벽을 돌파할 강력한 의지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 진로를 변경하려고 해요. 그런데 엄마에게는 자신이 유일한 희망인 거죠. 그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지만, 그래도 이 길은 갈 수 없는 것 같은 거예요.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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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