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인사를 못한 건 말예요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시간
해마다 나누던 새해 인사가 올해는 잠잠했다. 잘 있냐고 물어보는 것도 혹여 실례일까 싶어서기도 하고, 먼저 연락 할 에너지가 나지 않기도 하고. 침묵으로 대신한 새해 인사에 대해. (2021.01.08)
“새해 복 많이 받아! 올 한 해도 수고했어!”
당연하게 주고받던 새해 인사가 올해는 왜인지 당연하게 나오지 않았다. 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을 마음의 여유도 나지 않았다. 집에 있는 시간은 많지만,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는 건 정말 특별하고 가까운 사이가 아닌 이상 선뜻 열어보기 어려웠다. 대답해야 할 것들은 쌓여가는데, 멍하니 TV만 보게 되었고, 이내 잠이 들곤 했다.
일상에서 제한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활의 균형도 어긋났다.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워지면서 유일한 낙이었던 운동을 혼자 해야 했고, 밖을 나다니는 것도 불안했다. 외식을 한 지 꽤 오래됐다는 사실도 깜빡하고 산 것 같다. 한 번 깨진 균형은 제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이따금씩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은 잠까지 잡아먹는 것인지 새벽이면 깨서 다시 잠을 청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계획된 일들을 해내긴커녕 미루기만 하는 날도 있었다. 이렇게 사는 내 모습이 싫은데, 시정할 힘을 내야지 하는 생각도 어느 순간 들지 않았다. 무서운 건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일을 겪고 있다는 것. 잠시 쉰다고 여기기엔 기약이 없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모르겠다고 서로 토로한다.
나 하나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고 나니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서로 힘겨운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뻔한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어떤 말을 꺼내야 좋을지 생각하는 것도 버거운 우리들은 안부를 물어볼 힘도 내지 못하고 있나 보다. 새해 계획은 무엇인지, 무얼 하며 살면 좋을지 이야기하는 것도 갑갑한 지금은 현실도피형 인간이 되기 딱 알맞은 때다. 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나태함을 다독이며 버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이 더 힘 내기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괜한 연락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힘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거야”라는 것뿐이니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감정은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감히 힘내라는 말을 ‘영혼 없이’ 건넸다가 외려 더 힘이 빠질까 상투적인 말을 건네기가 어렵다.
내 귀가 열릴 때에, 내 힘이 닿을 때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진심을 열어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같이 생각할 일이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함께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닌 것 같아. 조금만 더 각자 버티고 있다가 만나요, 우리. 그러니 새해 인사, 안부 연락을 건네지 못해서 섭섭한 사람이 있다면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주기로 해요. 내 자리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도 버거운 때라고 이해하자.
올해의 소원을 묻는 내게 “너가 행복해지는 거”라고 말해주는 애인의 말에 그래서 더 찡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냥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행복해지는 것뿐인데. 내 자리에서 누리던 것들을 되찾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데. 이 단순한 것을 소원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찡했다. 거창한 버킷리스트가 아닌 서로의 행복을 올해 소원이라고 말해주는 잠시 동안은 매일 있던 방구석일지라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물질적인 것보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행복이 내 삶을 더 피어나게 만든다는 걸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지금의 무기력에 빠지기 전의 나는 매일 한 가지라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퇴근 후 운동하고 저녁을 먹는 이 규칙적인 일상이, 내 돈을 벌어서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것이,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행복하다고. 이 모든 감정들은 내 일상이 균형적으로 돌아갈 때에 느꼈던 것들이다. 지금이 있어 그래도 제자리를 찾았을 때 이 자리가 당연한 행복이 아님을 알고 제대로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머지않아 다시 작은 것부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이 나기를, 먼저 연락할 에너지를 낼 수 있기를. 상투적인 대화가 아닌 진심으로 들어줄 귀를 내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자리에 우리가 있을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물론 우린 잘살아갈 테지만,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알게 된 우리가 서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잘살고 있다고 다독여줄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새해 인사를 침묵으로 대신하게 된 걸 이해하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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