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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언 칼럼] 스톡홀름의 경찰은 평범해서 특별하다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월호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영혼의 최후의 방어막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스톡홀름 형사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2021.01.07)
현대의 미스터리 시리즈 속 주인공은 대부분 형사, 변호사, 검사 등 형사 제도 내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다. 초창기 미스터리 소설 주인공들처럼 안락의자에 앉은 명탐정, 귀족 출신이거나 최소한 귀족적인 취향과 사고방식을 탑재한 우아한 탐정은 현대의 범죄를 다룰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현대의 범죄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폭력과 거대한 음모 사이에서 진실과 거짓말을 가려내고 부단히 헤쳐나가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 수많은 범죄의 파고를 견뎌내려면 그만큼 거대한 시스템이 받쳐줘야만 하고, 그렇기에 미스터리 소설이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선 그 시스템 내 구성원으로 주인공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다.
미스터리 소설사에서 그런 경향을 처음 만들어낸 이들이 바로 스웨덴의 작가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다. 기자 출신인 이 듀오는 1960년대 스웨덴 사회 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던 중,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틀을 통해 자신들의 관점을 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겠다는 포부를 안고 매일 밤 타자기 앞에 나란히 앉아 번갈아 한 챕터씩 써 내려갔다. 30챕터로 이루어진 이야기, 1년에 1권씩 총 10년 동안 10권의 시리즈(부제는 ‘범죄 이야기’였다)를 쓰겠다는 계획은 1965년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1권 『로재나』로 시작됐다. 이 시리즈에서 늘 감기와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형사 마르틴 베크와 더불어 시간 외 초과근무에 찌든 동료들은 짧으면 1주일 이내로, 길게는 몇 개월 동안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범인의 흐릿한 윤곽을 찾아 끈기 있게 탐문하고 낡은 서류들을 눈 빠지게 들여다보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경찰의 일은 현실주의, 정해진 절차, 집요함, 체계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다. (…) 번득이는 육감보다는 경험과 성실함이 더 많이 기여한다. 명석한 두뇌보다는 좋은 기억력과 건전한 상식이 더 귀한 자질이다.”(‘마르틴 베크’ 시리즈 7권, 『어느 끔찍한 남자』 중)
시리즈 4권에 해당하는 『웃는 경관』은 1권 『로재나』와 더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역(스웨덴 내부뿐 아니라 배를 타고 덴마크까지 건너간다)을 돌아다니는 형사들의 끈질긴 발걸음과 질문으로 촘촘하다. 『웃는 경관』의 사건은 1967년 11월 13일, 장대비가 쏟아지던 밤에 벌어진다. 운전사를 포함하여 버스 안의 사람들 9명이 몰살당한 채 발견된다(정확하게 말하면 그중 한 명은 숨이 붙은 채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망한다).
그날 밤 베트남 반전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찰들은 시위 진압에 동원되었고, 요령껏 거기서 빠져나온 경찰들은 일종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헐거워진 스톡홀름 시내 어딘가에서, 혼란스러운 불균형은 스웨덴 최초의 대량 살상 사건으로 알려진 이 버스 참사로 무참히 깨진다. 게다가 죽은 승객 중에는 경찰도 한 명 끼어 있었다. 범인은 버스 안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희생자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 심지어 그중에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사건의 해결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스톡홀름의 형사들은 동료를 잃은 슬픔을 견뎌내며 동기조차 오리무중인 이 막연한 사건의 디테일을 차근차근 캐내기 시작한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책이 출간되기 직전 해의 사회 현상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때문에(지금에 와서는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만 해도 미스터리 소설에 이처럼 동시대적 현실성을 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968년에 출간된 『웃는 경관』의 형사들은 노골적인 적개심으로 가득한 대중들의 시선 앞에 노출된다. 68혁명 즈음 반권위/반전 시위의 뜨거운 열기는 스웨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부터 베트남 반전 시위의 풍경은 빠른 템포로 신랄하게 서술된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면면부터, 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경찰들이 남았으며 그들이 시위 대원들을 어떤 식으로 차별적으로 대하는지 건조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묘사된다. 그런 경찰에 대한 시민 일반의 반응은 ‘당신들은 우리 편이 아니야’라는 노골적인 적개심과 조롱에 가깝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사회의 평화와 질서 유지에 이바지하는 이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보려 노력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체념하듯 묵인한다. 그럴수록 눈앞에 떨어진 끔찍한 사건의 의미에 대해 이해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을 믿고, 나 자신의 경험을 신뢰하고, 아직 정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사소한 의문을 그냥 넘겨버리지 않은 채 끈질기게 그 답의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직업인으로서의 경찰/형사. 영웅이 아니고(주인공 격인 마르틴 베크 경감조차도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으며, 가족과 대부분의 동료들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관찰자로서의 지위를 고수한다),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뇌하는 뒤틀린 내면도 부여되지 않은, 그저 맡은 바 책무를 다하고자 노력하는 이들.
만일 당신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처음 읽기 시작한다면,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소박하고 현실적인 범죄 수사의 디테일 앞에서 오히려 당황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물 형사들이라면 일단 지나치게 화려한 고뇌에 짓눌려 있다. 혹은 보는 이들의 속을 뒤 틀리게 하고 말겠다고 작심한 죽음의 디테일(신체 훼손에 대한 그 세세한 집착) 앞에서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 “이제부터 진짜 게임 시작이야”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내뱉거나, 수십 번 죽을 위기에서 불사조처럼 살아 돌아온다. 그러나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다르다. 『웃는 경관』의 마지막, 잃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차라리 대량 살상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은 필사적인 범죄자의 꼬리는 결국 잡히지만, 카타르시스가 폭발하는 쾌감 같은 건 거기 없다. 안도감 너머에는 쓰라린 현실 인식이 드리워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영혼의 최후의 방어막을 가까스로 유지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스톡홀름 형사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그들은 폭주하지 않는다. 대신 포기하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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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범죄소설』, 『문학소녀』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죽이는 책』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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