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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픽사, 재미와 감동을 넘어 이제 영혼까지 충만하게

픽사, 새로운 인생작으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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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기 힘든 영혼의 개념도 픽사의 손과 마음을 타면 재미로 문턱이 낮아지고 감동으로 깊이가 생겨난다. (2021.01.07)

영화 <소울>의 한 장면

‘영혼’의 뜻을 가진 제목의 <소울>이다. 발표 족족 누군가의 인생작 리스트를 갱신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의 제목이 이렇게 관념적이었던 경우가 있었나. <토이 스토리>처럼 극 중 장난감의 세계를 쉽게 설명하거나 <인사이드 아웃>처럼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설정이 상상력을 부추겼고 <월·ⓔ>처럼 첨단이긴 해도 동그란 발음과 귀여운 뉘앙스로 친근함을 더했다. <소울>은 대명사 격의 딱딱한 제목에 별반 호감이 가지 않고 사전정보가 없으면 영화가 다루는 세계가 어떤 형태인지, 어떤 설정으로 영혼의 개념을 설명할지, 딱히 감도 오지 않는다. 

조(제이미 폭스 목소리 출연)는 비정규직 음악 선생님으로 근무하다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이제 더는 불안한 입지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돼 얼굴 주름이 쫙 펼 것 같지만, 조의 반응은 예상외로 시큰둥하다. 진정 원하는 재즈 뮤지션의 삶이 정규직 선생님의 직업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서다. 정규직으로 전환한 당일, 조는 존경하는 색소폰 연주자와 함께 공연하는 기회를 얻는다. 사회가 인정하는 정규직 선생님 따위(?) 내가 원하던 재즈 뮤지션의 만족에 비할쏘냐. 

기쁨에 취해 한눈을 팔다 맨홀에 빠진 조는 정신을 잃는다. 아니다. 목숨을 잃는다. 눈을 떠보니 사후 세계(Great Beyond)다. 조는 투명한 형태의 영혼만 남았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평생 바라던 재즈 뮤지션의 정식 공연을 앞두고 이럴 수는 없어, 죽음을 거부하고 돌아간 세계는 이승… 아니고 ‘위대한 시작 Great Before’으로 불리는 생전 세계다. 생전 세계는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관심사를 발견하면 지구 통행증을 받는 곳이다. 조는 관심사도 없고 지구에 가고 싶지도 않은 영혼 ’22’의 멘토가 되어 22의 대신이라도 다시 태어날 생각이다. 

<소울>의 생전 세계에서 참이슬(?) 방울같이 생긴 순수의 형체에 영혼을 부여하는 건 ‘불꽃’이다. 실제 불꽃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인식이다. 살아있음은 재능과 맥락이 닿아 있어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어 하는 것, 관심이 가는 것이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부여받은 재능을 삶의 원동력, 즉 불꽃으로 삼아 일생을 살고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조에게 있어 영혼은, 재능은, 불꽃은 재즈 연주이다. 단순히 연주하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뛰어난 이와 함께하며 재즈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조가 공연 기회를 얻으려고 참석한 오디션에서 준비한 곡은 없다. 조는 색소폰 연주자의 리드에 맞춰 그에 조화를 이루는 피아노 연주를 해 보인다. 재즈의 즉흥 연주가 갖는 매력이자 정수다. 인생으로 치면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기쁨이다. 그것이 일시적이라도 계속해서 쌓이게 되면 삶의 행복은 지속성을 갖고 커지기 마련이다. 조는 재즈를 좋아하면서도 연주 자체로 만족하지 못했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 재즈 뮤지션 외의 선생님이라는 삶의 조건을 제약이라 옭아매어 제 것인 운명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했다. 

재단사(tailor)로 삶을 영위하고 정체성을 확립한 조의 엄마는 재즈 뮤지션의 목표에만 집착하는 아들이 꽉 낀 수트를 입은 것처럼 안쓰럽다. 조에게 정규직 선생님의 직업을 놓치지 말라 한 건 사회적 안정도 물론이면서 재즈 뮤지션의 삶도 병행할 수 있는 삶의 유연한 태도를 갖기 바란 인생 선배의 안목이었다. 인생의 즐거움은 재즈 뮤지션의 성공 말고도 바다의 품처럼 넓어 한 입 베어 문 조각 피자의 끝내주는 치즈 맛에서, 스치는 바람에 빙글빙글 회전을 그리며 손바닥 위에 떨어진 한 장 낙엽의 아름다움에서도, 정규직이 주는 안정에서도 삶의 신비를 경험한다. 

사후 세계에 가서야 거리를 두고 삶을 바라보니 조는 품이 넉넉한 옷을 맞춤한 것마냥 인생을 관조하게 된다. 조는 지금껏 한 번에 확 타올라 언제 꺼질지 모르는 화염의 삶을 살았다. 그 또한 의미 있어도 목표한 삶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그러기에 인생은 길고 음미할 게 널렸다. 강렬하게 불타오르지 못하더라도 실패와 좌절의 거친 바람에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촛불 같은 삶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걸 깨닫고 나니 재즈 뮤지션 하나에만 목매지 않을뿐더러 나에게만 중심을 맞췄던 삶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하게 된다. 


영화 <소울> 공식 포스터

재즈 뮤지션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조와 관심사가 없다고 미리 단정해 삶의 가능성에 손 놓은 22는 양극단에 서 있는 동류(同類)다. 그사이에 놓인 무수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건 얼마나 슬픈가. 영혼은 티끌의 기쁨과 깨알의 즐거움이 긴 시간 태산으로 쌓여 충만해지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소울>의 제목만큼 간결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쉽게 표현하기 힘든 영혼의 개념도 픽사의 손과 마음을 타면 재미로 문턱이 낮아지고 감동으로 깊이가 생겨난다. 픽사의 끝은 어디인가. 연초부터 올해의 영화, 아니 인생작을 만난 기분에 영혼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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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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