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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일, 어둠 속에서의 날카로운 시선

조광일 <암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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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의 날카로운 시선, 용감한 포효가 안이한 현실의 정중앙을 관통한다. (2020.11.11)


어둠 속에서 더욱 또렷이 보인다. '곡예사'로 2020년 한국 힙합 신의 모든 이들을 입 열게 만들었던 조광일은 깊은 심연 속에서 시장의 타락과 재물 숭앙 행태를 목격하며 분노를 씹어왔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폐관수련 도중 'BB 바른 어떤 래퍼'의 충고를 트리거 삼아 큰 한 판으로 경종을 울린 그는 이제 도전적인 앨범 단위의 결과물을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더 많은 이들의 입에 올리고자 한다.

시작부터 '내가 성장하기 위해 평가해줘 이 앨범'('피드백')이라 호기롭게 선언하는 조광일은 사회가 낙인찍은 패배의 프레임을 뒤집고자 한다.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나쁘단 게 아니야/적어도 걸음마는 떼고 뛰는 것이 맞지 않냐?'('암순응')라는 원칙이 통하지 않고 '진짜로 영감이 들어올 자리가 없고 다 감으로 만들어'('한국') 버리는 랩이 통하는 시장에서 그는 실패한 '언더그라운드 락스타'다. 처절한 '회상록'의 고해성사처럼 랩보다 인맥, 냉철한 평가보다 합리화를 중시해야 하는 시장에 '아주 신물이 나버린' 그는 가감 없이 본인을 각인하고자 파열음 가득한 거칠고 빠른 랩, 악에 받친 목소리를 택했다.

'곡예사'의 성공이 그에게 '속사포 래퍼'라는 타이틀을 가져다줬지만 실제로 그의 랩은 테크닉과 속도의 쾌감보다는 억눌린 울분의 분출과 메시지에 가깝다. '피드백'이나 '자소서'처럼 스토리텔링에 중심을 두는 곡의 경우 완급 조절을 통해 서사를 구성하는 반면 '언더그라운드 락스타', '한국'처럼 쉴 새 없이 압박을 가하는 곡에선 피치를 끌어올리는 식이다. 'DNA' 뮤직비디오가 연상되는 '한국'에서 보듯 그는 버스타 라임스, 아웃사이더보다 켄드릭 라마와 닮고자 한다. 이것이 '곡예사 Remix'에서 속도전에 치중하는 몇 래퍼들과 그를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우리는 쏟아지는 문장과 단어 아래 조광일의 의도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바로 반골 기질이다. <암순응>은 의도적으로 트렌드를 거부하며 잊혔던 요소를 대거 활용한다. 스페이스 원, 늘보, 마인드182, AHWU 등 프로듀서들이 만든 리얼 세션 기반의 블루스 및 붐뱁이 앨범 뼈대를 이루고 영어 가사도 드물다. 트랩 비트 위 '암순응'에서는 훅을 없애고 내용의 폭격을 가하며 '회상록'에서는 공격적인 베이스와 쓸쓸한 기타 리프에 이어 스트링 세션을 가미해 극적인 연출을 지향한다. 7분 30초에 달하는 '곡예사 Remix' 역시 최근 한국 힙합 신의 단체곡보다는 2000년대 중반의 아우라와 닮았다.

신인의 패기로 꽉 찬 앨범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빈틈없이 쏟아내는 언어와 강성 기조로 일견 피로하게 들릴 위험을 품고 있다. 화자 역시 이를 감안해 '88', '이유'처럼 차분히 가라앉는 순간을 만들어두었으나 작품 초반부 강렬한 인상과 전체적으로 드리운 긴장감에 쉬이 마음을 놓기가 어렵다. 하지만 할 말 많은 신인에겐 유려한 운영보다 약간 미숙하더라도 가차 없이 달려드는 태도가 더욱 어울린다. 오히려 앨범을 들으며 모처럼 드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작금의 음악 시장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거세당해 온순해졌다는 사실을 넌지시 암시하기도 한다.

결국 조광일은 드라마틱하고 탄탄한 정규 앨범으로 빠른 시일 내에 '내가 보여준 게 없다 말해'('암순응')라는 의문에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이 길들여지지 않은 곡예사의 춤사위는 우리에게 하여금 많은 것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화려한 조명과 쏟아지는 지폐 아래 잊고 있던, 혹은 알고 있어도 '큰돈 벌어야' 하기에 모른 척하고 있던, 잘 만든 음악과 바람직한 예술가의 태도다. 어둠 속에서의 날카로운 시선, 용감한 포효가 안이한 현실의 정중앙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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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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