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0월 우수상 - 고양이에게 배운 인간 사귀는 법
나만의 인간관계 노하우
고양이와의 시간은 ‘내’가 행복한 관계가 좋은 관계이고, 상대의 숫자가 적고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한다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2020.10.08)
인간관계도 하나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시대이다. 수많은 책과 강의가 인간관계의 노하우를 역설한다. 그만큼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면서도 어떻게든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가보다. 나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가족, 직장 등 여러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이런 어려움을 덜어준 존재는 지금 기르고 있는 고양이였다. 인간관계에 있어 조금 편해진 부분이 있다고 해야 할까. 이 작고 묘한 생명이 낯선 사람인 나를 만나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서, 나의 인간관계 맺는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기 고양이를 처음 데려오던 날, 어미를 기르던 전 주인의 당부가 있었다. 먼저 다가오기 전까지는 절대 관심을 보이지 마세요. 이후 집안의 구석진 모든 곳에서 커다랗고 노란 두 개의 눈동자가 나를 관찰했다. 충고대로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꼭 필요한 사료와 물, 화장실 청소 만을 제공한 지 꼬박 일주일 만에, 아기 고양이는 제 발로 구석에서 나와 소파에 앉아 있던 내 옆으로 먼저 다가와 앉았다.
일단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상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나를 충분히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나의 의도를 파악하여 안전을 확보하고 관계를 맺을 준비를 했다. 물론 고양이처럼 타인에게 다가가는 데 오래 걸리는 사람은, 속도가 중요한 요즘 세상에서 좋은 평가를 얻기 힘들다.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은 충분한 ‘시간’과 상대에 대한 ‘관심’이다. 상대의 존재보다 관계 자체에 더 치중하게 되면 이를 가볍게 여기게 된다. 그렇게 급하게 다가간 관계의 끝에서는, 흔히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는 불평이 나온다. 서두르지 않고 상대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질수록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관계를 가려내어 나를 지킬 수 있었고, 또 그 관계를 위협하는 오해와 실수도 줄어들었다.
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아기 고양이가 아닌 이 고양이는 이미 어엿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함께 지내면서 숱한 충돌이 있었다. 소문대로 고양이는 자기중심적인 동물이었다. 사료가 얼마나 비싸든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일체 입도 대지 않았고, 자신의 영역으로 삼기로 결정한 장소에는 어떤 방해 공작이 있든지 기어코 뚫고 들어가고 말았다. 화도 내고 훈육도 시도해 보았지만, 모든 ‘집사’들이 그러하듯, 결국 고양이가 만족할 만한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자기표현이 확실해야 더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남에게 맞춰 주는 것이 이타심 같지만, 사실은 타인의 평가에 노출되는 불안감보다는, 차라리 나를 숨기는 것이 더 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결국 계속 양보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 관계들은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에 고양이와 살다 보면 신기한 점은 두 존재 사이의 일종의 균형점에 도달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양보하지 않는 관계 속에서 서로 영역과 시간을 존중해 주다 보면 생활에 있어 묘한 일관성 같은 것이 생긴다.
인간관계를 ‘잘’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떤 관계가 ‘좋은’ 인간관계일까? 고양이 같은 태도는 요즘의 잣대로 보기에는 너무 소극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친밀하게 다가가고 소위 마당발처럼 어디에나 폭넓게 지인들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각광받는 모습이 아닌가. 이런 관계를 능수능란하게 꾸려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배울 것이 없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고양이와의 시간은 ‘내’가 행복한 관계가 좋은 관계이고, 상대의 숫자가 적고 오래 걸리더라도 그런 관계를 만드는 것이 인간관계를 잘한다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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