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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청춘시대>, 이토록 다른 우리가 친구가 되기까지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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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섞이고 머리채를 잡다가도 위험에 처하면 기꺼이 달려 나가 서로를 구해주는 시간들 속에서 그렇게 여자들은 친구가 되어간다. (2020.09.16)


<권김현영의 여자들의 사회>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영화, 소설,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 나온

‘여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3주에 한 번 글을 씁니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장면


다섯 명의 이십 대 여성들이 셰어하우스에 함께 사는 이야기. 매우 전형적인 설정이었고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니까 관성적으로 틀어본 참이었다. 1, 2회를 연달아 보고 입을 딱 벌린 나는 의자를 바짝 땡겨앉았다. 드라마 <청춘시대> 얘기다.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때

드라마의 첫 회는 새로 하우스메이트가 된 유은재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서울 생활이 처음이고 오리엔테이션도 참가하지 못해 학교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은재가 처음 만난 사람은 ‘정여사’ 예은이다. 예은은 규칙을 어기고 남자 사람 애인을 셰어하우스에 데려온 게 들킬까 봐 은재에게 친절하게 대하다가 애인이 무사히 집 밖으로 나가자 바로 친절을 거두어간다. 매일매일 아르바이트와 학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윤선배’ 진명은 포스트잇 쪽지로 은재에게 불을 끄고 다니라는 잔소리를 한다. ‘강언니’ 이나는 은재가 사용하고 있는 화장실에 그냥 밀고 들어오고 샤워 후 타월 하나만 두른 채 집안을 돌아다닌다. 유은재는 자신에게 불필요한 시간도 감정도 조금도 쓰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이 행동하는 하우스메이트 사이에서 목구멍에 걸린 말을 하나도 뱉지 못한 채 숨 막혀간다. ‘쏭’ 송지원이 와서야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지원은 은재를 보자마자 맥주캔을 건네며 환영 인사를 하고는 넉살 좋게 물어본다 “오빠 있어? 삼촌은?” 이 장면은 입으로만 수컷과 섹스를 외치는 송지원의 캐릭터를 응축하는 동시에 이들이 아직 친하지 않다는 걸 드러낸다. 

여자들 사이의 관계성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멈출 때에야 제대로 드러난다.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만든 벡델테스트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있다. 테스트의 기준은 세 가지.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이 대화의 내용이 남자에 대한 것이 아닐 것. 벡델테스트는 영화 내의 성평등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자들이 겉도는 대화에서 나아가 서로 제대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방식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제인 오스틴의 시대까지 소설에 등장한 모든 위대한 여성들은 남성에 의해서만 그 존재가 드러날 뿐 아니라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형태를 갖는다고 하니 참 이상했습니다. 남성과의 관계란 여성의 삶에서 극히 작은 한 부분인데 말입니다.“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다른 여자들의 삶이 자신의 삶에 그만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청춘시대>의 핵심 서사는 원래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다섯 명의 주인공이 어느새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이름을 가진 여자들 다섯 명은 앞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학교와 세대와 성별의 공통점은 생각보다 느슨하고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첨예하다. 이토록 다른 이들이 언제 어떻게 해서 친구가 되어갈까. 


여자들 사이를 갈길이 찢어놓았던 

하우스메이트와 친구가 되는 건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경험상 좋은 하우스메이트의 조건은 적당한 눈치와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각자의 활동시간이 조금씩 달라야 한다. 그래야 공용공간을 쓸 때 여유롭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친구가 되지는 않는다. 

극 중에서 이들이 진짜 친구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의 이름은 다름 아닌 ‘창녀와 성녀의 이분법’이었다. 좀 놀랍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매우 중요한 설정이 아닐 수 없는데, ‘창녀’나 ‘걸레’라는 말은 늘 여자에게만 달라붙어 여자들의 관계를 갈갈이 찢어놓는 힘을 발휘해오지 않았던가. 중학생 시절 지독한 소문에 시달렸던 A는 자기가 등장할 때마다 조용해지는 순간이 끔찍하게 싫었다고 했다. “눈으로는 나를 보면서 입을 가리고 옆에 사람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는데 눈깔을 뽑던지 혀를 뽑던지 둘 중 하나는 내가 하고 만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벌써 몇십 년 전의 얘기였는데도 감정의 격동이 전해졌다. 그때 다친 마음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성과 관련된 경험은 아주 높은 빈도로 귓속말의 내용으로 유통되었고, 그런 소문의 당사자가 된 여자들과 그렇지 않은 여자들은 서로를 경멸하거나 무시했다. 내 남자친구를 뺏어갈 수도 있다고 불안해하거나, 같은 부류로 취급당할까 봐 불쾌해하거나, 나라면 저렇게 안 살 거라며 불쌍해하거나 서로를 깔보는 감정들이 그사이에 제대로 된 출처 없이 놓이곤 했다. <청춘시대>의 주인공들의 우정 서사는 바로 이 익숙하고 오래된 여자들 사이의 적대에서 출발하여 다른 경로로 전개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며칠 동안 집 앞에 꽃을 들고 온 남자가 기다리던 사람은 역시 강이나였다. 택시에서 내린 이나는 그를 보고 얼굴을 찌뿌린다. “한 번만 더 이러면 진짜 경찰 부를 줄 알아?” 집안에서 추이를 지켜보던 하메들은 그 소리를 듣고 우르르 나온다. 송지원이 외친다. “괜찮아?” 그때 남자가 말한다. “지금 이나 씨가 하고 있는건 매춘입니다. 그 남자들 이나 씨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거 아니예요. 그 남자들 이나 씨 돈으로 사는 거예요. 이나 씨같이 아름다운 사람이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이나 씨 소중한 사람입니다. 내가 도와줄게요. 이나 씨 과거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구해줄게요.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 

하메들을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이 ‘매춘’이라는 표현에 놀라 눈썹이 올라갔다면, 정작 당사자인 이나는 잠깐 움찔했을 뿐 전혀 굴하지 않는다. 강이나를 열받게 한 건 그 단어가 아니다. 자기가 구해준다니, 니까짓게 뭐라고. 이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몸을 판다고 만천하에 선언해버리며 아마도 그 남자가 의도했을 망신을 무화시켜버린다. “야 이 새끼야. 니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내 몸 팔아 내가 사는데 니가 왜 지랄이야.” 조금도 기세가 꺽이지 않고 누가 뭐래든 내 맘대로 산다고 소리치던 이나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눈빛이 흔들린 건 종일 알바를 하고 돌아온 윤진명과 눈이 마주쳐서다. 남자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주기를 하면서 이나의 구원자를 자처하려고 하는 질 나쁜 스토커일지도 모르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몰라서 상대에게 큰 민폐를 끼치게 된 요령 없고 눈치 없는 서툰 사람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건 상관없다. 이 남자는 이나의 정체를 하메들에게 알리는 기능적인 역할만을 하고 이후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한 채 극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카메라는 단호하게 남자와 동네사람들에게서 관심을 끊고 이들의 감정과 관계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온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장면


“창녀와 같이 살 순 없어” 

다시 장면이 바뀌고 거실에 지원, 예은, 은재가 앉아있다. 지원이 말을 꺼낸다. “매춘이라고 했지?” 예은이 얼른 말을 받는다. “응. 남자들이 강언니를 돈으로 사는 거라고” 예은은 강력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럼 집이 부자라는 것도 거짓말인가 봐. 집이 부잔데 왜 그런 짓을 해?” 진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 쉬며 “남자들에게 용돈 받는 여자들 꽤 있어”라고 말하자 예은은 “남자들이 공짜로 가 방사주고 용돈 주고 그래? 주고 받는 거지. 매춘이 뭐 별거야. 돈 받고 섹스 하는 거 그게 창녀야.” 지원과 은재가 우물쭈물하자 예은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너네 정말 관대하다. 아주 포용력이 넘쳐나.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매춘에 관대했대? 강이나 창녀야. 몸 파는 여자. 그런 여자랑 한집에서 사는 거야. 그게 괜찮아?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남자가 쳐들어올지, 본부인이 쳐들어와 깽판을 놓을지. 그리고 당장 니네 부모님이 알아봐. 가만있겠어?” 

그래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하메들에게 예은은 재차 강조한다. “중요한 건 거짓말 했다는 거야.” 사실 예은도 알고 있다. 중요한 건 거짓말한 게 아니라 ‘창녀’라고 공표되었다는 데 있다는 걸. 이나는 바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저간의 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길 물어볼 때도 학생~그러잖아요. 내 나이 또래는 다 학생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학생 아니라고 하면 그때부터 좀 복잡해져요. 뭐 하냐. 왜 학교 안 갔냐. 그래서 그냥 학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그짓 말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간단하죠?” 이나는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역시 편의대로 행동한 것일 뿐이라며 늘 주류의 잣대로 멋대로 판단당하는 비주류 삶의 리빙포인트를 전한다. 정작 강이나가 신경 쓰는 건 대놓고 독한 소리를 하는 예은이 아니라 진명이다. 그래서 누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관없다는 태도로 사는 이나가 진명에게  “윤선배는 내가 싫지?”라고 물을 때 시청자들은 이 질문이 당신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이나의 고백이라는 걸 안다. 진명은 이나에게 되묻는다. “그러는 넌? 넌 내가 왜 싫은거냐? 넌 내가 싫은 거냐. 내 가난이 싫은 거냐” 이나와 진명에게 서로의 삶은 자신의 초라함과 약점과 욕망을 남김없이 비추는 거울이다. 진명의 뒷모습을 보는 이나의 나레이션이 화면 바깥에 흐른다. “부러워서 싫어. 가난하고 괴팍하고 깡마르고. 볼품도 없으면서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서 싫어. 질투나게 만들어서 싫어. 너처럼 되고 싶은데 너처럼 될 수 없으니까. 미워하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냄새가 나는 거야. 내 질투에선 썩은 냄새가 나” 진명은 은밀하지만 분명하게 성적 봉사를 요구하는 직장 상사의 접근이 유달리 노골적이었던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자고 있는 이나를 보며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을 한다. “(택시 안에서 허벅지를 손을 턱 올리던)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난 널 경멸했다. 내가 너보다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니었어. 그저 나에겐 너만큼의 유혹이 없었던 것뿐이야.” 


드라마 <청춘시대>의 한 장면


그런데 누가 창녀지?

“창녀와 같이 살 순 없다”고 예은은 소리쳤지만, 과연 누가 창녀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누가 창녀가 안 될 수 있지? 드라마는 에둘러가지 않고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파고 들어간다. 남자 사람 애인의 학벌 콤플렉스를 감히 자극했다는 이유로 바닥에 내팽겨져친 예은은 드디어 자존감 도둑이자 본인 스스로 인정한 ‘나쁜 남자’ 고두영과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예은은 분노한다. “만날 때마다 섹스 섹스 내가 지 전용 창녀야?” 그리고 예은은 클럽에 가서 만난 남자들과 술을 마시며 원나잇을 하려고 한다. 같은 업계 친구에게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나는 예은이 걱정되어 클럽에 간다. 그때 이나가 예은에게 하는 말(이게 공짜술인줄 알아? 얘네들이 미쳤다고 술 사주는 줄 알아?)은, 예은이 이나에 대해 비난하며 하메들에게 했던 말과 완전히 똑같다. 원나잇 나도 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는 예은에게 이나는 충고한다. 이건 문란의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에 니 동영상이 떠도는 문제야. 그 남자들은 아마 업계에서도 꽤나 악질적인 모양인데 약물강간과 불법촬영으로 입건되었다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다시 나와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상습 성범죄자들이다. (놀랄 만큼 현실적인 설정값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예은은 “뭔 상관이야. 이미 다 망가졌는데”라며 고집을 부린다. 이나는 “넌 기스도 안났어 이년아”라고 응수한다. 

원나잇과 같은 캐쥬얼 섹스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금기가 아닌 것처럼 간주되는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여전히 사적인 제재를 받고 위반의 댓가는 종종 참혹하기까지하다. 이런 사회에서 창녀와 성녀의 이분법은 나도 모르게 창녀가 될지 모른다는 여자들의 불안을 동력으로 여자들 사이를 갈라놓으면서 작동한다. 이 이분법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은 정해진 자리에 대해 질문할 때이다. 예은과 진명은 사람들이 정해준 분류에 의문을 가지고 자신이 이나와 정말 다른 곳에 있는지를 스스로 곱씹고 되묻는다. 그리고 타인의 기준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틈을 조금씩 메워가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소문이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공표하고 직면하며 서로 섞이고 머리채를 잡다가도 위험에 처하면 기꺼이 달려 나가 서로를 구해주는 시간들 속에서 당장 내가 완전히 납득할 수 없어도 기다려주고, 작은 변화가 큰 도약임을 알아봐 주며, 결핍으로 비워진 자리만큼을 다르게 채워가며, 그렇게 이들은 친구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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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권김현영(여성학자)

여성학 연구자. 언제나 여자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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