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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영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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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뀐다면 역사 인식도 함께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역사 인식은 열린 민족주의와 상대 국가 혹은 민족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2020.09.11)


온갖 역사 왜곡이 난무하는 지금, ‘제대로 된 역사’란 무엇일까?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의 저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는 무수한 발굴 현장을 직접 발로 뛴 한국사 권위자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 출연해 고대사의 가치와 매력을 대중에게 알리면서 주목받았다. 유물과 유적, 고분과 인골을 통해 반전이 거듭되는 역사의 순간들과 세계로 뻗어 나가는 한국사의 역동적인 여정을 보여준 저자에게 '제대로 된 역사'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고대사, 특히 삼국시대에 주목한 책을 쓰시게 되셨어요.

어린 시절 우연히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 전집을 접하고 고대사 연구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요, 연구를 하다 보니 밖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딱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고대사의 매력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고대사, 그중에서도 고조선 시대를 다루는 상고사는 정말 남겨진 사료가 많지 않아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는 비교적 사료도 많고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대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다시 말해 밝혀질 부분이 매우 많다는 뜻이에요. 1년에 1,000여 건이 넘는 발굴조사가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조사마다 기존의 학설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기도 합니다. 매우 극적인 순간들의 반복이지요. 이렇게 역동적인 역사의 순간들을 많은 분께 알리면서 역사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그런 의도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남아 있는 삼국시대의 흔적이 비교적 많다고는 했지만, 절대적인 사료가 부족한 현실입니다. 삼국시대를 다루는 두 문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마음먹고 읽으면 하루 만에 독파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많지 않아요. 문헌만으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고고학을 같이 연구하면서 발굴 현장을 직접 뛰게 됐습니다.

이 책에는 그런 발굴 현장의 흔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 유물과 유적, 인골과 왕성이나 왕궁 같은 수도 유적의 발굴 사례를 통해 역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들을 소개했습니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세계로 뻗어 나갔던 고대 한국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역사의 진실’이라고 하셨는데, 진실이 드러난 구체적인 유물이나 유적이 있을까요?

역사의 진실이 밝혀진 대표적인 사례라면 하남 위례성이 있습니다. 백제의 세 수도 중 첫 번째 수도였던 한성의 왕성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고려시대 때부터 풀지 못했던 학계의 수수께끼였습니다. 천 년의 수수께끼를 푼 건 바로 젊은 고고학자들입니다. 오랜 시간 학문의 역량이 축적된 덕분이죠.

송파구 몽촌토성설과 하남 이성산성설의 양파전을 종결지은 건 다름 아닌 풍납토성이었는데요, 그전부터 파괴되었다고 전해지는 터라 주목받지 못했었는데, 아파트를 짓기 위한 터파기 작업 중에 우연히 백제 초기 유적이 발견됐습니다. 특히 경당지구에서 일반인들이 살던 움집의 형태가 아니라 지배층이나 왕실에서나 지냈을 법한 특수한 구조물들이 발견됐어요. 그렇게 천 년의 역사가 풀지 못했던 비밀이 밝혀진 것이 30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역사의 진실은 이렇게 우연히 극적으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런 극적인 발견이 한반도에서만 이루어지는 건가요?

우선 국내 학자들도 더 먼 곳으로 가기 전에 남북한 교류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고려의 왕성, 왕궁이 있는 개성 지역은 남북한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조사했었는데요, 큰 성과도 올리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힘썼는데 아쉽게도 남북 관계가 틀어지면서 공동 조사가 중지돼 버렸습니다. 고려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마찬가지고,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지요.

삼국시대의 교류라고 하면 중국과 일본에 한정된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동북아시아를 넘어 동남아시아, 서아시아까지 교류했다는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베트남 옥 에오에서 백제의 것과 유사한 유리구슬을 발견했었고, 그전에는 경주 황남대총에서 로만 글라스라고 하는 로마풍의 유리병이 출토됐었습니다. 지금의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까지 교류가 이어졌다는 방증이자, 한국사 연구의 범주를 한반도에서 더 넓은 곳까지 넓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중에 일부러 발굴하지 않고 있는 것도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경주평야에 있는 무덤만 해도 수천 기에 이르고 왕릉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거대한 봉분만 해도 약 200기 정도 됩니다. 고분이 경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즉 모든 유적지를 조사하고 있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료가 많은데 왜 조사를 하지 않느냐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발굴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발굴은 파괴를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1970년대에 황남대총에서 말을 탈 때 쓰는 안장이 발견됐습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최상의 공예품인데요, 보존처리가 완벽하지 않아 현재까지도 원본은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있습니다. 많은 유물들을 지금 우리의 기술로는 완벽하게 보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라 왕릉을 파보자!’하는 것은 과욕이죠. 우리가 발굴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대한 발굴하되, 조상들에게 받은 유산들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도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훨씬 더 좋은 기술을 갖고 있을 때 발굴한다면 유물의 가치는 더 높아지지 않을까요? 

역사학자이자 역사교육자로서, ‘제대로 된 역사’란 무엇이며 일반인들에게도 올바른 역사의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1세기에는 21세기에 맞는 역사의식이 필요합니다. 구시대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을 경멸하거나 무차별적인 인종차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겠죠. 시대가 바뀐다면 역사 인식도 함께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역사 인식은 열린 민족주의와 상대 국가 혹은 민족에 대한 배려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다문화 시대가 된 지금, 나치즘처럼 과격한 역사의식이나 지나친 우월감은 독입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명확한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이 일제강점기라면 우리 민족의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겠죠, 그럴 때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며 널리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의 해석은 시대와 학자마다 다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역사를 공부하거나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만 해주신다면?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역사를 더욱 자유롭게 바라봤으면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의 해석은 시대와 역사가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지거든요. 하나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다른 것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의 논리, 하나의 해석, 하나의 틀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이미 사실로 드러난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공주의 무령왕릉이 가짜라고 주장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진실이거든요. 사실을 부정한 주장은 곧 무차별적인 음모론에 빠지게 됩니다. 음모론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열등감 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면서 비판적인 사고로 자유롭게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권오영 저
21세기북스



*권오영(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대 국가의 형성과 사회 구조, 외부와의 교류사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역사학과 고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현장을 지휘하면서 한성 백제 시대의 숨겨진 역사를 밝혀냈으며, 천안 청당동 유적, 순천 대곡리 유적 등 중요 유적을 발굴했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몽골, 러시아, 베트남 등 해외 유적의 발굴 조사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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