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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칼럼] 요점만 간단히

<월간 채널예스>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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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사람들이 어렵게 느낄 법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훌륭한 요약은 요약 대상보다 더 잘 읽힌다. (2020.09.04)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할 때가 많다. 참석자들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회의, 이른바 브레인스토밍 성격의 회의도 적지 않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자기 아이디어를 뭐라 뭐라 설명하긴 하는데, 그러면 그걸 제목·헤드라인으로 표현해달라 요청하면 우물쭈물한다. 그렇다면 셋 가운데 하나다. 설명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부실하거나 그것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알긴 좀 아는 데 막연하게 안다.

회의 때 다른 참석자들을 설득하려면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는 핵심을 정확하게 말하고, 자기 아이디어의 제목·헤드라인을 뽑아서 말하는 게 좋다.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회의 내내 종이에 끼적이면 된다. 종이는 가장 중요한 회의 참석(?) 물건이다. 나는 회의 내내 다른 참석자들 의견의 제목·헤드라인 뽑고 앉아있다. 그렇게 정리해주면 회의 진행이 빨라진다. 주최 측이 좋아하면서, 다른 회의에 또 불러주어 내가 돈 벌 기회가 더 생긴다.

이런 회의 얘기가 글쓰기와 무슨 상관일까? 글쓰기의 기본 가운데 하나가 요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쓰는 리포트가 대표적이다. 리포트 과제는 뭔가 새로운 것, 창의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정해진 주제에 관해 조사하고 요약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는 창의력이 아니라 요약력이다.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폭넓게 조사하고 깊이 이해한 사람만이 제대로 요약할 수 있다. 요약은 ‘지식의 예술성’이다.

HP 회장을 지낸 칼리 피오리나는 정보통신 업계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자로 자주 초청받았다. 업계 현황과 전망, 그리고 나아갈 방향을 분명하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실력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을까? 피오리나는 대학 학부 시절 역사학을 전공했다. 매주 수천 페이지의 역사서를 읽고 요약 정리해야 했다. 대학 때 기른 요약의 힘이 그를 빼어난 기조연설자로 만들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면 

첫째, 요약은 단순히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집약시키는 것, 그러니까 한데 모아서 요약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과감하게 덜어내도, 아니 덜어내야 좋지만 가급적 전체 내용을 균형 있게 줄여서 담아내는 게 좋다. 그러자면 요약해야 할 글이나 자료를 장(章)이나 문단 단위로 살펴야 한다. 장이나 문단을 먼저 요약하고 그걸 합쳐 연결 짓는 것이다.

둘째, 글이나 자료의 중요한 핵심 부분들은 그 부분 문장을 그대로 살려 싣는 게 좋다. ‘지식의 예술성’으로서의 요약의 가장 높은 수준은, 새로운 문장을 하나도 덧붙이지 않고 요약 대상의 문장들만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요약해야 할 글이나 자료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그런 방식으로 요약하기 쉽다. 요컨대 잘 쓴 글은 요약하기도 쉽다. 못 쓴 글일수록 그것을 요약하려 할 때 새로운 문장을 많이 덧붙여야 한다.

셋째, 읽는 사람들이 어렵게 느낄 법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느낄 수 있도록 고쳐야 한다. 훌륭한 요약은 요약 대상보다 더 잘 읽힌다. 좋은 요약은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그런데 줄이면서 더 잘 읽히도록 한다는 게 쉽지는 않다. 요약하다 보면 내용을 압축시키기 위해 자꾸 개념어를 쓴다거나 하여 글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기 쉬우니 주의해야 한다.

“요점만 간단히 말하겠다”라고 말해놓고서 요점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게, 그것도 길게 말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제대로 짜증이 난다. 그걸 자기도 알았는지 “제가 너무 길게 말해서 송구하지만”을 덧붙인다. 정말로 송구하다면 당장 입 닫아야 하지만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길게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말인데 넷째, 요약은 정말로 ‘요점만 간단히’ 쓰는 게 좋다.

바로 이 글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요약은 주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폭넓게 조사하고 깊이 이해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요약은 ‘지식의 예술성’이다. 요약은 첫째, 전체 내용을 균형 있게 줄여서 담는다. 둘째, 핵심 부분의 문장은 그대로 살려 싣는다. 셋째, 요약 대상보다 더 잘 읽히도록 쉽게 쓴다. 넷째, 요점만 간단히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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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표정훈(출판 칼럼니스트)

출판 칼럼니스트, 번역가, 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쓴 책으로는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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