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쿠스틱, 태고부터 현재의 대중음악까지
어쿠스틱(Acoustic)은 '청각의', '소리의', '음향학'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는다.
1950년대와 60년대 로큰롤의 열풍은 어쿠스틱의 미학을 추구하는 포크 음악 판도에도 변화를 주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은 통기타와 하모니카처럼 소박한 연주로 여백의 미를 지향하던 포크에 일렉트릭 기타를 접목한 포크록으로 당시로선 혁명에 가까운 음악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2020. 08. 21)
어쿠스틱(Acoustic)은 '청각의', '소리의', '음향학'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갖고 있으며 아카펠라는 중세 유럽의 교회 음악에서 유래한 말로 악기의 반주 없이 부르는 합창곡을 뜻한다. 현대음악에서 어쿠스틱은 악기 본래의 울림을 살린 자연적인 소리를 말하며 그래서 전자 악기와 상반되는 개념이다. 어쿠스틱 음악은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소리로 앰프, 드럼 머신, 시퀀스 같은 전자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음악을 뜻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음악은 서양 문화에 기반을 두지만 음악이라는 이 무형의 예술은 인간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고대인들이 잔치를 벌이는 이유를 신에 대한 모방이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자연이나 신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여서 집단적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은 신을 숭배하는 의식에서 시작됐고 그들이 느낀 감정을 재현하고 타인에게 그 감정을 전달하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고대부터 이런 음악의 형식은 어쿠스틱과 무반주 합창곡인 아카펠라였다.
20세기에 전기가 일반화되면서 음악도 전기의 힘에 의존했다. 이 말은 20세기 초반까지의 음악은 모두 어쿠스틱이라는 의미다. 록 음악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블루스는 노예 신분이었던 흑인들에 의해 탄생한 미국 흑인의 민요다. 값비싼 악기를 구할 수 없었던 흑인들이 그나마 손쉽게 연주할 수 있었던 악기는 통기타와 하모니카와 같은 어쿠스틱 약기였다. 이렇게 전기적인 장치 없이 자연의 소리로 연주한 블루스를 '컨트리 블루스'라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남부의 흑인들이 공장이 많은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같은 북부의 공업 도시로 이주하면서 컨트리 블루스는 전기적 장치를 장착한 일렉트릭 블루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블루스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비 킹, 머디 워터스 등이 바로 이 일렉트릭 블루스와 시카고 블루스의 명인들로 몸집이 커지고 소리가 높아진 블루스가 미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가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킨 것이 로큰롤, 바로 록 음악이다. 그래서 록 음악은 태생적으로 짜릿한 전기적 에너지를 소유한 이종교배의 결과물이다.
1950년대와 60년대 로큰롤의 열풍은 어쿠스틱의 미학을 추구하는 포크 음악 판도에도 변화를 주었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은 통기타와 하모니카처럼 소박한 연주로 여백의 미를 지향하던 포크에 일렉트릭 기타를 접목한 포크록으로 당시로선 혁명에 가까운 음악적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1965년에 발표한 'Like a rolling stone'이 그 출발점이었으며 그 뒤를 이어 사이먼 & 가펑클, 더 마마스 & 더 파파스 등이 포크록을 구사해 인기를 누렸다. 어쿠스틱 포크에서 일렉트릭 포크로의 전환이었으나 밥 딜런은 당시 포크 팬들로부터 순수한 포크를 더럽혔다며 가멸찬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은 고인 물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밥 딜런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수여했다.
1960년대에 등장한 신시사이저는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힌 일등공신이다. 이 악기 하나로 기타와 베이스, 드럼, 건반은 물론 여러 효과음과 지구상에 없는 소리도 창조해냄으로써 사운드의 신기원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를 빛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이 만들어낸 음악은 새로운 세계였고 신시사이저와 컴퓨터를 접목한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자임했다. 이 선각자들은 대중음악의 변화를 이끌어내며 1980년대 초반을 뉴웨이브/신스팝의 전성기로 세팅했다. 휴먼 리그와 유리드믹스 등 수많은 뉴웨이브 그룹들이 1980년대 초반에 인기를 얻으면서 세계 대중음악에 미래지향적인 전자음악의 저력을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두각을 나타낸 헤비메탈과 랩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록의 폭발성을 증명한 얼터너티브 록의 득세는 과거지향적인 어쿠스틱 음악의 입지가 좁아짐을 의미했다. 이젠 그 누구도 구닥다리처럼 느껴지는 어쿠스틱 사운드에 귀를 기울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과유불급,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이 말처럼 뉴웨이브/신스팝의 공급이 많아지면서 대중은 서서히 물려 했고 차가운 기계음에 대한 피로감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너무 기계적이라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 반대급부로 제시한 이유였고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포크 스타일의 어쿠스틱 음악이었다. 흑인 싱어송라이터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1990년대를 빛낸 사라 맥라클란이 1980년대 후반에 데뷔해서 1990년대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붐을 주도한 주역들이다.
또한 1990년대 초반 세계 대중음악을 집어삼킨 얼터너티브 록과 네오 펑크, 갱스터 랩 같은 과격한 음악에 대한 '거리 두기 현상'이 나타났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언플러그드(Unplugged)'라는 단어다. 플러그를 꼽지 않았다는 뜻의 이 언플러그드는 이때부터 전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어쿠스틱과 동의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머라이어 캐리와 에릭 클랩튼, 너바나까지 언플러그드 열풍에 가세하며 전 세계는 잔잔한 자연의 소리에 동화됐다. 언플러그드 현상은 1990년대 초중반 과격하게 흐르는 대중음악에 대한 조용한 반란이자 차분한 거부였다.
역사적으로 어쿠스틱 음악은 위기를 맞이한 적은 있어도 소멸된 적은 없다. 이것은 첫 부분에 언급한 음악의 기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에는 듀엣 해바라기와 조동진, 1990년대에는 김광석, 한동준, 장필순 그리고 2000년대에는 아이유, 십센치 등이 어쿠스틱의 뿌리를 이어왔다.
전기 기타의 전율하는 사운드가 록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처럼 자연의 소리로 우리 가슴에 스며드는 어쿠스틱의 울림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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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