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시대를 이끌 공감형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 최배근 저자
산업사회가 막을 내린 70년대부터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면서 인류 사회는 ‘연결의 세계’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2020. 08. 20)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경제학자로, 보수뿐 아니라 현 정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팩트 저격수’로 자리매김해온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YTN ‘변상욱의 뉴스가 있는 저녁’, KBS ‘최경영의 경제쇼’ ‘뉴스공장’, 팟캐스트 ‘다스뵈이다’ 등에 고정출연하며 예리하고 냉철한 분석으로 많은 청취자들에게 ‘핵사이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TV, 라디오, 인터넷방송, 정계활동, 저서, 그리고 연구 및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를 출간했다.
『호모 엠파티쿠스가 온다』는 IT 혁명 이후 거대한 분기점 앞에 선 인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최배근 교수의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모두를 위한 자유’, ‘모두를 위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가치로 공감과 호혜의 가치를 강조하며, 초연결 세계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형으로 ‘호모 엠파티쿠스’를 제시한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지식인 최배근 교수에게 대전환의 시대, 인류와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이 책을 집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현재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사회와 청년의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코로나19 같은 재난은 일상화될 것이고, 국가와 개인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국가나 개인 등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세상을 과거의 사고와 패러다임, 세계관 등으로 대응하는 한 자연 재난과 사회 재난 등은 계속될 것이고, 그 피해에서 자유로운 국가나 개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와 아이들의 희망 만들기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입니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 지혜 등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30년을 교단에 선 사람으로서 마지막 사회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재난,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과 같이 2000년 들어서 생겨난 대재앙들이 ‘연결’로 인해 발생한다고 하셨는데요, ‘연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산업사회가 막을 내린 70년대부터 세계화와 더불어 경제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면서 인류 사회는 ‘연결의 세계’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세상은 물론이고 인간 간, 인간과 사물 간 연결이 강화되며 모든 것이 언제, 어디서든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결이 강화되는 가운데 통합의 효과만 강조하고, 전염의 효과를 외면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이 동물의 생존 환경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연결이 강화될수록 전염의 효과도 비례적으로 커지므로, 전염 효과는 ‘재난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금융위기, 코로나19 재난, 기후위기형 재난 등은 모두 연결의 세계에서 전염의 효과로 인한 재난입니다.
K방역을 ‘연결’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사례로 드셨는데, K방역이 코로나19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K방역 성공의 주요인은 대외적 개방성과 대내적 연결성의 유지, 이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감염병 확산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 및 방역 당국의 감염병에 대한 통제와 투명한 관리로 정부에 대한 신뢰 확보,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 등이었다. 그런데 시민들의 높은 의식수준은 한국의 ‘눈치 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읽고 자신의 개성이나 개인주의적 행동을 자제할 줄 아는 한국인의 ‘눈치 문화’는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업그레이드되었습니다. ‘눈치’란 타인의 표정이나 생각 등을 읽는 능력입니다. 한때 한국인의 ‘눈치 문화’는 개성의 부족이나 열등감 등 사회 발전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5·18광주민주화운동’부터 ‘촛불시민혁명’까지 만들어낸 한국 민주주의가 비민주적인 풍토를 청산하고 국민과 국가의 자존감을 세우면서 ‘눈치 문화’를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눈치 문화’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자제 등 사회 전체의 단합을 위해 개인주의적 행동을 자제하는, 즉 공동체에 대한 자기 책임감을 실현하는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한국형 방역 모델, 즉 K방역은 K민주주의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책에서 대표적인 닷컴 기업으로 야후와 구글을 비교하셨는데, 이들의 운명이 뒤바뀐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시나요?
‘이익 공유’라는 새로운 가치와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초연결 시대가 도래하면서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 생태계와는 달리 ‘이익 공유’를 핵심 속성으로 하는 ‘디지털 생태계’가 열렸습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등과 같은 글로벌 선도기업들은 핵심 서비스를 무료로, 혹은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면서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구글은 사용자에게 이메일서비스, 검색엔진, 구글 어스, 유튜브, 구글 독스 등 오픈소스와 무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와 연결되는 매력적인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창업 초반 ‘인터넷 검색의 개척자’로 승승장구했던 야후는 이메일서비스의 유료화, 번잡한 광고, 일방적으로 제공된 문어발식 콘텐츠 등으로 매력을 잃고 점차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결국 야후가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는 데 실패하면서 구글과 야후의 운명이 뒤바뀌게 된 것입니다.
디지털 생태계의 특성을 설명하시면서 애플과 삼성전자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 제조업체입니다. 반면, 애플은 (적어도 스티브 잡스 시절까지는) 아이디어업종 혹은 플랫폼 사업모델입니다. 예를 들어, ‘모빌리티의 스마트화’의 첫 단계였던 스마트폰 사업은 연결을 통해 가치창출을 추구하는 사업입니다. 이동전화기를 스마트화시키려면 앱 생태계의 구축이 필수적이고, 애플은 앱 생태계를 구축하여 아이폰을 매력적인 스마트폰으로 만들기 위해 기업 밖에 존재하는 수십억 명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였습니다. 앱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아이디어의 산물이고, 사람과 아이디어는 기업 내부보다 외부에 더 많이 존재하기에 사람과 아이디어를 연결하기 위해 앱 판매 수입을 3(애플):7(개발자)로 나누는 이익공유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제조업체는 자신이 보유한 핵심자원으로 가치와 이익을 창출하는 폐쇄형 사업입니다. 삼성전자는 초기 인기 어플 개발자 수십명을 고용하여 앱 생태계 구축을 시도하였고,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디지털 생태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 것이죠. 삼성전자는 뼛속까지 제조업체임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기업인 GE이 2000년대 이후 쇠퇴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제조업 사업모델이 ‘연결’과 이익 공유 등을 특성으로 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초연결 시대의 인간형으로 ‘호모 엠파티쿠스’를 강조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형을 의미하나요?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란 공감하는 인간을 의미합니다. 20 세기와 다른 인간형이 필요한 이유는 IT 혁명으로 ‘연결의 세계’가 전개되면서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된 ‘소통’과 ‘협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감형 인간’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공감형 인간’은 연대와 이익 공유가 내재화된 인간입니다. 반면, 산업사회의 인간형은 개인주의 성향의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였습니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기만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형입니다. 연결의 세계에서는 부적합한 인간형입니다.
끝으로 경제학자로서 꿈꾸는 이상향이 궁금합니다. 우리나라가 더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결과적으로 어떤 사회가 되길 바라시는지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의 미래도 담보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회의 20년 후 미래를 보려면 그 사회의 대학생을 보면 보인다는 말이 있는 이유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야만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 사회가 될 수 있고, 그래야만 사회에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혁신이 활성화되고, 국가는 ‘착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이 발휘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그들이 만들고 창조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기회를 사회와 정부가 보장해주면 됩니다. 기업과 정부가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공급해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 자신들이 하고 싶고, 만들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자유와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사회와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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